<거룩한 굴복>
나는 변하지 않으면서 너를 바꾸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화도 내시고,
독자의 자식들이라 책망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화가 난 이유는 나는 변하지 않고 상대를 바꾸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위대함은 다른 사람의 상태를 바꾸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변화 정도보다 나 자신이 변하는 정도의 깊이가 커야 합니다.
일상을 살아갈 때 우리의 갈등은 내가 원하는 것 만큼 상대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것은 당연합니다.
이 세상의 법칙은 내가 변하지 않고 너를 바꾸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목적을 위해 너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변화의 원칙은 내가 변한 것 만큼 상대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먼저 나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생명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이고
그들이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는 것이며
그들을 용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용사가 되어야 하고
그들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기도의 용사가 되어야 하는
<선변화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고 경력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오류는
자신은 변하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입니다.
그 상대방을 향한 배려도,
이해도,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공감도 없으면서
그들을 바꾸려고만 하는 고집과 아집이 더더욱 상대를 경직하게 하고
더 멀리 도망가게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복음의 예의는 상대를 굴복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복음으로 굴복 당하는 것입니다.
<야곱> 의 위대함은 하나님을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이길 수 없어서 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거룩한 굴복> 으로 그를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굴복을 경험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 이라 합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거룩한 굴복> 의 얼굴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굴복 당함으로
야곱은 형 에서에게 거룩한 굴복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안아주는> 것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는 <거룩한 굴복>입니다.
즉, <안아주심> 입니다.
내가 거룩한 굴복의 경험,
내가 먼저 변한 모습으로 서야 그를 바꿀 수 있습니다.
거룩한 굴복을 경험하지 않으니 우리는 늘 이기려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굴복의 얼굴입니다.
우리를 위해 져주시고 안아주신 하나님의 복음으로 서야 하지만,
우리는 거룩한 굴복이 아니라
저들에게 <비참한 굴복>을 원합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내가 먼저 거룩한 굴복의 얼굴인 하나님을 만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그렇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내가 먼저 거룩한 굴복의 용서를 경험하고 그 용서를 베푼 자만이 거룩한 굴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변한 것 만큼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거룩한 굴복, 거룩한 패배는
이길 수 있는 자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음에도 살리기 위해 져주는 패배를 말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패배를 경험한 자,
이기고 버리고 포기할 수 있지만
거룩한 패배로 다시 세상을 향하여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져주시는 거룩한 패배의 진정한 의미와 사랑을 아는 자만이
세상을 향하여 이 거룩한 패배를 선포하고
삶으로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변한만큼 상대가 변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거룩한 패배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복음의 일은 내가 경험한 이 거룩한 굴복을
다시 상대방에게 삶으로 보여줄 때,
우리는 더 깊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부터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굴복> 거룩한 패배를 통해 세상을 살리셨습니다.
왜 거룩한 굴복의 길을 가지 않고
우리는 비참한 굴복으로 이기려 하십니까?
우리가 나아갈 길,
이겨서 변화시키지 않고
내가 경험한 <거룩한 굴복> 으로 세상을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살리는 것>이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