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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한 가지> (시편 27편)

<바라는 한 가지> (시편 27편)

 

 

 

 

 

 

 

 

 

 

 

 

 

<바라는 가지> (시편 27편)

 

다윗이 평생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던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생명입니다. <생명의 위협>입니다.

 

하나님만 찾고 하나님만 부르고 하나님께만 기도한 이유는 바로 <생명의 절박성> 때문입니다.

모든 기도와 모든 간구와 모든 찬양과 모든 간절함의 이유는 생명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먹을 것을 먹고 먹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좀더 편하고 편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식이 좀더 되고 내가 좀더 좋은 집에 살고 좀더 나은 직장을 구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다윗이 평생 고민하고 기도하고 씨름한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의 찬양이 간절하고 그의 기도가 절박하며 그의 삶이 정직하고 순수한 이유입니다.

생명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평생을 목마름으로 살았던 그의 노래가 시편입니다.

 

오늘 시편도 그렇게 시작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다.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1)

 

 

생명의 절박함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구원을 한가로운 취사선택할 있는 중에 하나입니다.

다윗의 모든 시편에서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구원과 빛이 연결되어 있고

두려움과 소망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죽음과 생명을 이야기 하고 어둠과 빛을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는 생명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능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원어적으로 능력은 '마오즈' <피난처> 말합니다.

'여호와는 생명의 피난처'라는 말입니다.

 

 

첫째, 다윗의 하나님은 생명을 기초로한 하나님입니다.

 

1절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피하게 하신 생명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자신의 살을 먹으려고 왔다고 고백합니다.

생명과 관련된 전쟁을 이야기 합니다.

환난 날에 초막 속에서 비밀히 지키고 은밀하게 나를 숨기신 바위,

그리고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버린 이야기까지 하면서

다윗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하나님으로 채워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초는 <생명>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생명을 한순간도 없었음을 절박한 가운데 경험해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환경이 편한 곳에서,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생명에 대한 위협이 사라진 곳에서 살면서 그들이 잊은 것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나은 환경을 위해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고 그를 그렇게 사랑하시지만

그를 인도한 곳은 광야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골짜기로 보낸 것입니다.

 

이게 사랑입니까?

죽음의 위협, 하나님이 순간도 지키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상황이 사랑입니까?

그것이 사랑입니다.

 

만약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죽음의 위협의 골짜기를 지나지 않았다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생이 되는 기초는

생명이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시면 순간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절박한 현실>입니다.

 

둘째, 1 세대 2 세대의 차이

 

그렇습니다. 믿음의 1세대는 신앙이 좋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생명을 보장 받을 없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언제 덮칠지 모르는 폭풍과 가뭄의 위협속에서

더구나 나를 위협하는 원수들의 고함소리와 핍박에 하나님만 붙드는 신앙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1세대의 죽음을 신앙생활로 환경이 나아지면서

믿음의 2세대와 후의 세대들은 좋은 환경을 맞이 하게 됩니다.

, 생명의 위협이 사라진 믿음의 환경 가운데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만이 생명을 지키신다는 믿음의 기초를 경험하고 인지하고

그런 환경에 노출되지 않음으로 오는 신앙의 집중력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원수를 하나씩 이기는 신앙의 야성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이 사라진 세대의 특징은 자기 소견에 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이 사라지면 자신의 취미가 자신의 비전이 됩니다.

생명의 위협이 사라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은 자신의 비전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

내가 기뻐하는 ,

내가 사랑하는 것…

그래서 말세의 특징은 자신을 사랑하며 입니다.

 

모든 신앙의 본질은 죽음의 위협,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나옵니다.

신앙의 여정은 결국 <생명의 근원> 깨달음입니다.

 

땅이 저주를 받은 ,

땅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의 본질은 죽음의 위협입니다.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고백이 우리를 살립니다.

 

다윗은 오늘 믿음의 정수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셋째, 생명을 보장 받은 인생의 당당함입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14)

 

다윗은 원수의 위협뿐 아니라 자신의 부모도 자신을 버렸다는 생명의 위협을 생각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10)

 

세상 어떤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는 절박함이 다윗을 다윗으로 만들어갑니다.

하나님만이 소망이고 구원이며 생명의 피난처라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능력> <피난처>입니다.

 

다윗이 생각한 것은 오직 생명입니다.

그에게 능력은 피난처입니다.

생명을 피할 있느냐 없느냐,

생명을 보존할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좀더 먹고 좀더 누리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 그의 마지막 소원!

 

다윗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사는 인생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오직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윗은 오직 한가지 바라는 일을 구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집에 사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4)

 

평생 바라는 소원 가지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명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이 그의 소원입니다.

 

그가 바라는 것이 오직 가지 소원입니까?

생명의 위협으로 평생을 살아서 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사는 인생에게 가장 소중한 한가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

오직 그것입니다.

 

생명의 위협이 사라지고 환경이 좋아지고 편해지면 나타나는 가지는

불필요 것을 너무 많이 바라고 산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집과 차와 환경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시대로 만들어 갑니다.

 

아픈 아이가 생기면 소원은 오직 한가지 입니다.

그냥 낫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게 소원은 오직 한가지 입니다.

살려만 주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차라리 우리에게 축복을 줍니다.

복음의 역사적으로 사탄이 고통을 주는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지금 시대의 전략은 사단은 축복을 줍니다.

소위 복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주십니다.

눈물을 주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고난이며 눈물이며 생명의 위협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절박함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꾀에 넘어간 때는 가장 편안한 시절,

한가로이 정원을 거닐던 시절입니다.

 

무엇이 축복입니까?

다들 편안함을 추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외칩니다.

사단의 길을 하나님의 길이라고 외치는 시대가 자꾸 길을 잃어갑니다.

 

스스로 고난의 길로,

스스로 불편한 길로,

스스로 자발적 고난을 감수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단이 주는 축복의 늪에서 길을 잃게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지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것입니까?

생명의 위협을 경험하고

병과 고난의 길에 서보면 소원이 선명해 집니다.

다윗은 필요 없고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가지를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생명의 위협 가운데 살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구원 받아본 경험이 있는 자는

다시 믿음으로 강하게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서 생명을 구원하신 되신 주님을 경험한 사람은

다윗의 마지막 고백을 있습니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13-14)

 

'확실히 믿었도다'

'여호와를 기다리고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이것이 생명 가운데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의 믿음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고백 위해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습니다.

생명을 구원받아본 경험이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기대합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선명한 고난 가운데 사십니까?

그런 고백으로 사십니까?

주께서 평생에 동행하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릴적부터 기름을 부은 다윗을 형통의 길로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세상적인 형통이 저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

하나님이 아니면 답이 없는 인생 길에 생명의 목마름은

오직 하나님만 구하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의 합당한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강하고 담대하게 기다리십시오.

하나님만이 생명이라고 고백하는 인생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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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을 잃어본 성도들입니다.

자신의 목자를 잃어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감사는 깊고 거룩합니다.

그들의 찬양은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생명을 잃고 길을 잃은 자들의 목마름은 깊습니다.

 

선물을 준비하고 그들의 목자를 감사하면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은 천국의 모습입니다.

생명을 지키신 하나님,

자신들을 지키시고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교회를 지키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의 감사를 표현하는 삶은 너무나 아름다운 삶입니다.

가운데 선물을 놓고 함께 감사를 표하는 교인들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지난 그들에게 생명은 하나님의 구원이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찬양의 근거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좀더 나은 ,

좀더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주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주님과 동행하는 한가지 소원으로 살게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실체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