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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함> (시편 26편)

<완전함> (시편 26편)

 

 

 

 

 

 

 

 

<완전함> (시편 26편)

 

 오늘은 다윗이 당당합니다.

스스로 완전함에 행하였다고 번이나 이야기합니다.

1절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마지막 k에서도 스스로 완전함에 행하고 행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26: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26:11)

 

다윗은 하나님 앞에 당당합니다.

당당함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기도는 힘이 있고, 하나님이 그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당당함이 있습니다.

당당함의 근거는 완전함입니다.

 

목사의 당당함은 무엇입니까?

정직입니다.

목사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당당할 없습니다.

그러나 목사의 당당함은 정직입니다.

정직함, 거짓 없음이 목사의 당당함입니다.

 

다윗이 말한 완전함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완전함이 무엇이기에 그의 기도는 힘이 있고 찬양은 아름답습니까?

 

첫째, 완전함의 반대는 세상과 타협입니다.

 

다윗이 어떤 자신의 삶이 완전한지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지 않는 삶을 가지 이야기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 허망한 사람(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자신의 완전함을 설명하면서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허망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원어적으로 황폐하다라는 의미로 거짓말을 하고, 헛된 것을 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헛된 것의 결과는 허망함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거짓의 목적은 나의 욕심을 채우려는 의도입니다.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헛된 것을 따르고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 타협하게 됩니다.

 

  • 간사한 (4)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4)

 

간사한의 원어적 의미는 숨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감추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감추고 뜻을 이루기 위해 속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악한 것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의도를 가지는 것이 악한 것입니다.

자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말하는 ,

자신의 마음과 말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이들과 동행 하는 것이 완전함의 반대입니다.

 

  • 행악자(5)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5)

 

행악자의 의미는 깨뜨리고 상하게 하는 자를 말합니다.

어떤 공동체나 사람을 상하게 하고 깨뜨리며 손해를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그런 집회 모임 중에 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상하게 하고 깨뜨리는 모임에 있습니다.

다윗은 그런 모임에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모임을 미워한다고 말합니다.

 

  • 악한 (5)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5)

 

악한 자는 시편 1편에서 나오는 악인과 같은 단어입니다.

악한 꾀를 내고 악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바람의 나는 겨와 같은 인생입니다. 기준이 없는 인생입니다.

복있는 자는 기준이 말씀입니다. 주야로 말씀이 기준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필요를 위해 어떤 길이든 어떤 악이든 행하는 자들은 기준이 자신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악인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기준> 되는 인생을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완전함에 반하는 종류의 사람들을 설명합니다.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변증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입니다.

 

타협의 목적과 이유는 <자신의 잘됨>입니다.

 

좀더 나은 ,

좀더 좋은 ,

좀더 편한 ,

좀더 높아지는 길을 위해

때로는 거짓말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뜻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서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웃으면서 동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을 깨뜨리고 상하게 하기 위해 모여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모략과 허물을 말하며 그들의 약함을 말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때로는 악한 자가 되어 자신이 기준을 삼고 사는 인생입니다.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평가하고 제단하고 욕하는 인생입니다.

 

다윗은 오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거짓말 하지 않았고,

자신은 목적을 위해 숨기고 살지 않았으며

누군가를 모략하고 허물을 말하지 않았고

인생의 삶의 기준이 나의 감정과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늘 그런 삶이 완전한 삶이라고 기록합니다.

다윗은 오늘 <관계적 측면>에서 완전함을 설명합니다.

관계적 측면의 평가로 신앙적 측면의 평가로 연결합니다.

 

오늘 시편을 묵상하면서 일을 고민한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스스로 완전하다고 말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늘 스스로 완전함에 행하고

완전함에 행하겠다고 번을 이야기 합니다.

 

완전함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였습니다.

답은 관계적 측면의 완전함입니다.

 

다윗은 사울과의 관계에서 철저히 자신이 기준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스스로 기준삼고 스스로 심판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숨기고 거짓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다윗을 완전함으로 이끌어 줍니다.

일시적으로 밧세바의 일로 속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그것이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죄를 지을 수는 있으나 정직함으로 반응하는 !

그것이 다윗이 말하는 관계적 측면의 완전함입니다.

 

다윗은 그들은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는 뇌물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10)

 

사악함과 뇌물의 목적은 자신의 이익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는 인생이 완전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적 측면에서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는 인생이 완전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성경에는 완전함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노아를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완전하라고 말합니다.

제사장에게 완전하라고 요구합니다.

다윗이 스스로 여러 곳에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도 바울은 우리가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1:28]

 

결국 다윗의 완전은 우리에게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죄가 향하는

그런데 완전이라는 것이 결국 관계적인 측면,

사람을 이용한 자신의 높아짐과 이익을 누리려는 것에 대하여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평생 자신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하나님이 보장하신 왕이 되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의 꿈과 비전,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그것이 이루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과 나라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함을 모임 중에 이야기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기준의 잣대로 모든 것을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많으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마음을 지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완전함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둘째, 다윗의 완전함은 손해를 감수한 인생입니다.

 

인간적으로 악인들이 사는 방법

마음을 감추고 겉으로 거짓을 말하고 사람들과 모여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고 공동체의 약함을 말해서 깨뜨리고

자신의 기준으로 전쟁과 사람을 제단하며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삶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손해 보는 길을 택합니다.

, 한마디로 세상적으로 철저히 손해 보는 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은 길은 이익을 가져다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손해를 감수한 인생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길은 손해 보는 길입니다.

한마디로 길은 느린 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을 죽이면 왕이 빨리 됩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빨리 갑니다.

하지만 다윗은 느린 ,

빠른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다윗을 완전함의 자리에 앉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인정 받는 길은 다른 사람보다 빨리 가는 길입니다.

빨리 높은 자리에 오르고

빨리 인정 받는 자리에 오르는 길에 환호합니다.

그러나 길은 완전하지 않은 길입니다.

 

하나님의 완전은 느린 길입니다.

아브라함의 길은 다른 사람보다 느린 길이었습니다.

모세의 길은 포기한 시간에 찾아온 기회였습니다.

요셉은 느리고 느린 길을 택했고

다윗은 결코 길이 없어 보이는 길을 택했고 자신의 목숨이 다시 위협을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그것이 완전의 길입니다.

 

셋째, 어떻게 완전의 길을 있습니까?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3)

 

하나님의 인자가 무엇입니까?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세상의 길을 포기하고 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가 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타협하지 않는 ,

느린 ,

손해 보는 길을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목전에 있기 때문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고난을 통해 찾아옵니다.

헤세드,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는 좋은 환경과 여건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평생 따라다닌 고난을 통해서 찾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신앙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 자비는 우리 인생이 보는 시각에서

고난으로 위장되어 찾아옵니다.

 

고난이 온다고 아파하지 마십시오.

곰곰해 생각해 보십시오.

고난이 ,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아픔이 찾아올 슬퍼합니까?

남들보다 빨지 가지 못할까봐

남들보다 인생이 손해 볼까봐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인생이 못될까봐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헤세드는

다윗이 고백한 헤세드가 찾아오는 길은 고난이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손해보는 인생,

남들이 말하는 느린 인생,

남들이 말하는 눈물 흘리는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헤세드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헤세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헤세드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찾아간 인생은

남들보다 손해본 인생들,

세상적으로 낙오한 인생들,

세상적으로 병들고 외로운 인생들,

외면하고 눈물 흘리는 고난의 인생들을 찾아가신 예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그렇게 고난이라는 통로를 통해 하늘의 빛이 비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고백한 완전의 비밀,

하나님의 헤세드의 비밀은 바로 고난이었습니다.

완전함의 행함의 비밀은 바로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완전함의 반대 말은 타협이지만

완전함과 같은 말은 고난입니다.

완전함이 찾아오는 길은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화려하고 잘되는 길이 아니라

눈물과 고난의 골짜기를 통해서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명분으로 너무 되는 것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완전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함은 헤세드,

우리 인생의 고난의 길을 통해서 찾아 옵니다.

 

지금 길을 걷고 있습니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지금 우리는 헤세드의 길을 걷고 있고

완전함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고 찬양의 이유이며

은혜의 본체이며

생명을 누리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 비어있는 목욕통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어야합니다.

가장 비참하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교회입니다.

사역자의 순교로 교인들이 흩어질 위기를 맞았습니다.

 

개척 초기부터 저를 통해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은 교인들이지만

그들의 목자로 파니 전도사를 세워 따르게 했습니다.

하지만 순교를 당하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눈물이 시간을 지나보니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헤세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개척한 16개의 교회 중에 가장 영적으로 섬기고 복음으로 무장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가장 힘들 같이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통같이 보였지만

가장 많은 것으로 채우는 교회가 것입니다.

 

지금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결산을 하십니다.

우리의 오늘이 비록 눈물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눈물을 뿌려야 기쁨으로 열매를 맺는 날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헤세드를 통한 완전함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길로 세우심을 보며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