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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소원과 계획> (시편 20편)

<내 마음의 소원과 계획> (시편 20편)

<내 마음의 소원과 계획> (시편 20편)

 

 

 

 

 

 

 

 

<내 마음의 소원과 계획> (시편 20편)

 

당신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평생에 이루고자 하는 일과 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계획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이 무엇일까요?

 

첫째, 남들 보다 좀더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20:7)

 

오늘 시편은 전쟁이나 일을 앞둔 가운데 드리는 기도입니다.

특히 전쟁을 앞둔 왕이 제사를 드리면서 드리는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를

백성들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기도하는 내용 중에 세상이 의지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번째가 병거와 말입니다.

세상은 자신에게 힘이 되는 어떤 것을 가지기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좀더 힘이 세기 위해 살아갑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해서 힘이 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나라는 국방력을 가지기 위해 경제를 부흥하고

사람들은 나은 집과 차와 학력과 능력을 가지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남들 보다 < 가진 >으로 증명합니다.

좀더 의지 있는 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흘리고 수고 하고 일하고 공부하는 목적이 남들보다 가지지 위해서 입니까?

인정 받고, 누리기 위해서 입니까?

 

둘째, 자신의 이름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20:7)

 

세상 사람들은 남들 보다 가져서 무엇을 합니까?

결국 자기 이름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입니다.

세상이 사는 목적은 오직 하나 입니다. 자기 이름을 자랑 하기 위해 자신이 의지할 것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이 사는 길의 마지막은 결국 하나로 통합니다.

자기 자랑입니다.

다른 사람을 욕합니까?

자기가 드러나고 자기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고 하고 공부하고 흘립니다.

자기 이름입니다.

그래서 <복음> 반대는 <자기 이름>입니다.

 

자신이 의지할 어떤 것을 가진 사람은 자기 이름을 세웁니다.

학력이 좋은 사람은 학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공부를 잘하면 공부로, 자식이 똑똑하면 자식으로 자신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증명할 있는 어떤 것이 있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 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믿을 것이 있고 의지할 것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언제 하나님을 만납니까?

내가 의지할 것이 없을 때입니다.

모든 소망이 사라지고 세상이 어둠으로 캄캄해지면 그때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까?

자신이 믿을 , 자신이 의지하는 것이 아직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은 전쟁을 치르러 나가기 전에 드리는 백성의 기도입니다.

왕을 위한 기도입니다.

왕은 전쟁에 앞장서는 자입니다.

왕을 위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목적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좀더 살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결국 영적인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기도와 찬양의 이유입니다.

전쟁에 임하기 전에 백성은 왕이 승리 하기를 기도하고 승리를 확신하는 찬양을 드립니다.

 

셋째, 당신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20:4)

 

백성들의 기도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왕의 존재는 원수와 싸우고 이기는 ,

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왕의 전쟁은 자신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일수록 전쟁에 대한,

영적인 전쟁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고 자신이 남들보다 가지는 것에 관심이 많아집니다.

우리의 존재는 전쟁, 영적인 전쟁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승리로 하나님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좀더 가지는 것일까요?

좀더 편안하게 사는 것일까요?

나의 월급이 좀더 많아지고

나의 공부가 성적이 오르고

사역과 일들이 좀더 풀리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의 궁극적인 방향은 결국 왕이 싸우는 곳에 쏟아 붇는 것입니다.

왕이 싸우는 일에 동참 하는 것이고

왕이 싸우는 것을 위해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소원과 계획이 무엇입니까?

 

슬픈 것은 왕이 싸우는데 백성은 군사들은 자기 방패와 칼을 모으려 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 많은 곡식을 쌓고,

자기 손에 많은 돈을 얻고,

자기 이름을 위해 많은 힘과 권세를 쌓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지 말라 하십니다.

바울은 군사로서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평생의 소원과 계획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전쟁,

왕이신 그리스도의 전쟁이 이기는 것입니다.

 

승리를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세우고 기도를 들어주심을 믿으십시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일이 아니라 왕의 전쟁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20:5)

 

왕은 전쟁 중입니다.

우리는 생활이 편해지니 전쟁이 아닌 압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린 삼위 하나님의 회복을 위한 전쟁에 동참 중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전쟁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영적 승리를 위해 선포하고

나의 물질과 시간과 방향은 왕의 승리를 지지하는 것이며

나의 평생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은 그분의 것과 같아야 합니다.

 

오늘 백성들이 기도합니다.

전쟁에 나가기 기도하는 왕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나온 단어 5절의 '너의 승리' 예수님의 이름 '예슈아' 입니다.

6절의 '구원' 예슈아의 어원인 '야샤'입니다.

9절의 '구원'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시편속에 예수님을 상징하는 단어가 4번이나 나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전쟁 중이십니다.

우리는 일에 함께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오늘 왕을 위해 기도하지만 이미 이루어진 <예언적 완료형> 사용하여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9절은 마치 예루살렘 성전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소리는 백성과 같습니다.(21:9)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구원하소서' 원어로 호쉬아나 호산나입니다.

백성들은 왕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 구원하실 것을 노래하고

예루살렘 백성들은 왕이신 예수님께 호산나로 부르며 우리를 구원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전쟁입니다.

전쟁에 우리의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전쟁에 부름 받은 우리의 삶입니다.

예수님이 가는 길이 우리의 길이고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며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이미 승리하신 전쟁,

남은 고난에 동참 하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딤후2:3]

 

기도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싫어하고

예수를 미워하고

고난으로 응답하는 세상에 고난을 당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고난의 세상에서 호산나 호산나!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습니까?

사생자 입니다.

눈물이 없습니까?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고 눈물이 있고 아픔이 있음은

그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십시오.

풀리지 않는 문제로 노래하십시오.

고난의 시간 영적인 광야에서 많이 즐거워 하십시오.

 

주님은 승리하셨고

그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미 승리 하셨기 때문입니다 .

 

호산나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우리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있도록

땅에서 그분의 고난에 동참케 하시는 영광을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이 무엇입니까?

남들보다 나은 것을 가지는 ,

이름을 내는 인생이 아니라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분의 전쟁에 동참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믿음의 성도 되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미 승리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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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1구역이 발방크교회를 방문했습니다.

250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작년에 비해 너무 많은 성도들이 성장한 것을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삶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그들이 용사들입니다.

 

이미 승리하신 전쟁에 동참함으로 그들이 받을 영광의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 기록하는 일들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택,

양철로 지어 비바람이 많이 부는 그곳에 달랑 침대 하나로 사는 페트릭 전도사의 삶이 안타까워

사택을 지어주시겠다고 집사님께서 헌신을 다짐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은 전쟁 중입니다.

주님이 싸우시는 전쟁에 동참하는 것은

기도와 주님이 필요한 것을 드리는 고난의 동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의 소원과 계획일 우리는

그분의 나라에 참예하는 백성이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