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인생> (시편 19편-2)
기적이 아닙니다.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는 것은 <광야의 시간>입니다.
다윗은 날이 날에게 말하는 소리,
밤이 밤에게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소리를 언어도 없고 소리도 없는 자연으로부터 듣고 보게 됩니다.
어떻게요? 광야입니다.
들리기 시작하고 보이기 시작하는 터미널은 광야의 시간입니다.
다윗이 기적 같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광야의 시간이 다윗으로 하여금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다윗은 대 자연의 소리와 그들이 소리 없이 위대하게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광야를 통해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이 들리지 않아서 더 날카로운 말씀,
더 능력 있는 설교자를 찾아 다닙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누군가를 더 비판하고 더 문제를 삼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들을 준비가 되지 못한 나의 귀와 마음입니다.
광야는 들리지 않던 소리,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게 하는 곳입니다.
광야를 통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 말씀의 완전함을 통해 영혼을 소성(회복) 시킵니다.
둘째, 여호와의 증거를 통해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셋째,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해서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넷째,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다섯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정결해서 영원까지 이르게 합니다.
여섯째, 여호와의 법은 진실하여 다 의롭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 시킨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회복시키고, 지혜롭게 하고, 기쁘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영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광야를 지나지 않으면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광야에서 자신의 영광에 집중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던 자연이 보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가지는 마음이 무엇입니까?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19:10)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말씀을 지키고 꿀 송이 보다 더 단 말씀을 가까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과정을 깨달으면서 깨달은 다윗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첫째, 나의 숨겨 놓은 허물에서 깨끗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광야의 가장 큰 힘은 숨은 죄에 대한 깨달음 입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하던 죄들이 광야를 통해 발견합니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이 보이고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게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 능력 있는 말씀 꿀 송이처럼 단 말씀이 되지만
내 숨은 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완벽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며
능력 있지 못하고
정결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광야의 의미는 들림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숨은 죄,
내가 깨닫지 못했던 죄를 깨닫고 깨끗하게 되어야 그것이 완벽한 말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바꾸지 못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못하기에
능력의 말씀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허물까지 깨닫게 하셔서 나를 바꾸어 달라는 것입니다.
자연과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의 위대함을 노래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완벽한 말씀이 들린다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숨은 것을 바꾸지 못하는 말씀이 아니기에
말씀의 여섯 가지 능력으로 내 숨은 모든 허물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를 바꾸지 못하는 말씀,
내 안에 나의 작은 허물까지도 바꾸지 못하는 말씀은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벽한 말씀은 내 속에 숨은 모든 허물까지도 들추어 내는 예리한 칼이 되어
내 심령 골수까지도 바꾸는 능력이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심령 골수를 들추어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으니 무엇보다 자신의 작은 허물,
깨닫지 못한 죄가 드러나서 깨끗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죄가 해결되지 못하는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 큰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상관 있는 것은 나의 작은 죄로부터의 깨끗함입니다.
하나님이 위대하면 뭐합니까?
자연과 우주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으면 뭐합니까?
여호와의 율법이 완벽하고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고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정결케 하면 뭐합니까?
그것이 나의 가장 작은 허물로부터 벗어나게 못한다면
나에게 하나님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에게 의미 없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19:12)
<숨은 허물>입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죄를 깨닫고 숨은 허물에서 벗어날게 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록 죄에 대해 더 민감해 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죄에 대하여 둔감해 지는 것은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수록 작은 죄에 대하여 더 안타까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말씀을 내 영광을 위해 사용하니 나는 높아지지만 영적인 민감함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19:13)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주와 자연의 깊은 이치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을 경험 하는 것과
내가 죄를 짓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진리를 보고
광야를 통해 하나님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아
세상의 가장 좋은 순금보다 더 사모하지만
그것과 내가 죄를 짓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내 안에 영적으로 깊은 능력과 깨달음이 있는 것과
숨은 작은 죄에서 깨끗해 지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말씀의 능력은 어디로 집중합니까?
나의 작은 죄에서,
날마다 짓는 반복적인 죄에서 자유하며 깨끗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죄의 깊이를 봅니다.
얼마나 죄기 깊고 깊은지 그 큰 영광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지만
그것들이 나의 작은, 숨은 죄, 반복하는 죄가 더 나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노래한 위대한 찬양의 결말은 간단합니다.
넷째, 이 마음과 묵상이 주님의 마음에 들기 바란다는 것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9:14)
다른 성경은 열납 되기 원한다는 말을
주님의 마음에 들기 바란다 라고 번역합니다.
우주의 위대함을 깨닫고 듣고 보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을 아는 다윗이
마지막으로 그가 내릴 결론은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마음에 드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마음에 드는> 말과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평가한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13:22]
왜 하나님은 다윗이 마음에 들었습니까?
다윗은 어릴 적부터 마음과 생각을 지키려 노력한 사람입니다.
아버지도 가족도 다 포기하여 양을 치며 산 인생입니다.
왕을 뽑는 자리에 들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포기하고
인간적으로 자격이 없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은 마음에 합하고
마음에 드는 인생을 살았다고 하나님만 인정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왜요?
그가 말과 마음의 묵상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지킨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평생 죽음의 위기, 죽을 고비를 지키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위대함을 꿈꾸고 위대함을 볼 때 우리의 실수는 작은 숨은 죄,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못한 입술과 마음입니다.
우리의 행동 이전에 우리의 입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우주를 말하고
자연의 이치를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찾은 다윗입니다.
율법의 위대함을 노래한 다윗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위대함이 영광이 되는 것은
내가 입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을 지킬 때 주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남들이 깨닫지 못한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
남들이 이루지 못한 위대한 삶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내가 지키는 입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마음에 드는 인생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입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을 지키는 것!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인생이 되는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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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어려운 것!
내 입술의 말과 마음의 생각입니다.
주여 평생 나를 지켜 주께 합당한 인생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