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나의 하나님이 됩니까?> (시편 18편-2)
기도하지 않고 응답 받은 것들은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내가 기도로 응답 받을 때,
내가 환란 중에 부르짖고 응답 받을 때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 됩니다.
첫째, 부르짖을 때 나의 하나님이 됩니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18;3)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18:6)
나의 여호와라고 다윗이 당당하게 1절부터 고백하고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선언하고 찬양을 시작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 아뢰었던 시간,
그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간구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찬송이 깊은 이유와
그가 모든 원수를 이기고 더욱 기뻐하면 노래한 이유는
환란의 때에 그가 여호와께 아뢰었던 기도의 사연이 있어서입니다.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 얻은 모든 것들은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환란을 지나지 않고 얻은 평범한 축복들은 다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압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누리는 평범한 누림이 기도 없이는 될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기도한 후에 얻은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숨을 쉬는 것,
입으로 먹을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찬양을 부르고
코로 숨을 쉬고
뛸 수 있고
평범하게 자라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야만 가능한 일인 것을
이전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 평범함을 잃고 나면 그 평범함의 축복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 그때야 알게 됩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삶과 숨을 쉬고 호흡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인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노래합니다.
가장 평범한 일상의 축복을 가지지 못한 때 다윗이 한 것은
여호와께 아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환난 중에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뢰는 것>입니다.
그의 아룀이 하나님과의 사연이 됩니다.
기도의 사연이 됩니다.
응답의 사연이 됩니다.
지금은 환란이지만 나중에는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너무 캄캄하고 어두워서 사망의 줄이 나를 얽는 다고 말하고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른다고 말하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다고 기록합니다. (4-5)
너무 무서운 마음입니다.
아무도 나의 이 두려움을 알아주지 않고
이 두려운 광야를 어떻게 지나야 할지 막막한 마음입니다.
그때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두려움 때문에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때 다윗이 한 것은 오직 한가지 입니다.
그냥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뢸 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됩니다.
아룀과 시간이 합쳐질 때 사연이 되고
사연이 모여 역사가 됩니다.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됩니다.
누가 찬양합니까?
아룀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눈물로 아뢰지만 기쁨으로 열매를 얻는 자만이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둘째, 응답을 경험해야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18:6)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시작부터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산성이고 방패고 바위이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왜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합니까?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을 더 많이 찬양합니다.
환란이 응답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이고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기회입니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18:19)
나를 더 넓은 지경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내게 환란을 허락하십니다.
지금보다 더 넓고 광대한 곳으로 세우시기 위해
내게 아뢸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두기도 하십니다.
나를 넓히는 방법은 이 세상에서 환란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넓고 높은 곳으로 서려 하지만
하나님 없이 세운 것은 바벨탑이 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더불어 그곳에 서게 하십니다.
다윗은 환란의 때보다 응답 후에 자신이 더 넓은 곳에 인도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오늘 찬양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그의 앞에 완전하여
나의 죄악에서 스스로 <자신을> 지켰나니"(18:23)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지켜야 할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와 다른 삶,
기도와 다른 방향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의 걸림돌입니다.
다윗은 7절부터 22절까지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신 근거를 자신이 하나님께 아뢰었던 간구와
또 한가지를 말하는데 그것이 자신을 지킨 삶이었습니다.
20절의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21절의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2절의 "그의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지켜야 할 자신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자신을 놔 버립니다.
그리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포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고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감정이 가는 대로 말하고
화를 내고 싶은 대로 화를 내고
하나님의 방법과 길을 거스릅니다.
더 거칠고 거 완악하며 여유 없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윗은 깨끗함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18:24)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18:26)
힘들고 어려운 환난의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손쓸 수 있는 것도 없고
내가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할 수 있는 한가지는
나를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그분 앞에 지키고 생각을 지키고
거룩하고 깨끗함으로 그분 앞에 날마다 간구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해야 할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의 일들을 감당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깨끗한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낮고 천한 마음과 자리에서 더 낮은 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
하나님이 어느 날 우리를 웃게 하시는 날
우리의 찬양과 기쁨이 내가 지킨 깨끗한 마음과 생각으로
더 더욱 하나님을 찬양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18:30-31)
비록 내가 비천에 처하여 곤고한 환란 중에 있다 할 지라도
그 길중에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라는 말은 원어로 길입니다.
또 다른 표현은 <생의 여정>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여정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 광야를 걷고
원수들로부터 우겨 쌈을 당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사망의 깊은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인생의 여정은 <완전> 합니다.
다윗은 그 말씀이 순수하다고 합니다.(30)
그래서 오직 그분의 이 말씀을 믿고 그분께 피하니 방패가 되시고
반석이 되시니 오직 우리 하나님 외에는 누가 반석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피난처가 없습니다.
앞뒤로 막힌 우리 인생의 길에
오직 그분 만이 완벽한 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지금은 보이지 않으나 언젠가
나도 나의 하나님으로 인해 마음껏 찬양할 날을 맞이 할 것입니다.
그때 내가 지킨 기도와,
내가 지킨 깨끗한 마음이 더욱 주님 앞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기도한 사람만 하나님을 만납니다.
응답을 경험한 사람만 나의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깨끗한 마음을 지킨 사람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기에 오늘 다윗이 하는 이 고백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힘 없이 걷는 길에 <힘으로 띠> 띠우시며
한 없이 외로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갈 길 몰라 방황하는 내 발을 <암 사슴>처럼 뛰게 하시고
언젠가 나를 <높은 곳>에 세우셔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내 사랑하는 여호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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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선교의 첫번째 열매이며 선임목사인 샘목사님 부부입니다.
샘 목사님에게는 자녀가 세 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막내는 한국 나이로 8살 정도인데
어릴적에 심방을 나간 사이 약을 혼자 많이 먹어 정신 장애아가 되었습니다.
평생 샘 목사의 아픔과 눈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마음을 지키고 신실하게 이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가 정신이 없으니 귀에 뭘 넣어서
전신 마취로 수술을 했습니다.
힘들어 울만도 한데,
힘들다고 투정할 만도 한데
묵묵히 웃으며 이 길을 감당하고
자신의 생활비의 10%을 또 떼어서 가난한 사역자를 도와줍니다.
현재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해서 2년째 공부를 하는데
도울 것은 없고 그 공부를 개인적으로 학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되고 위로 하고 싶어서입니다.
자신의 길에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나라에서는 희귀한 새벽기도도 운영을 하고
금식도하며 늘 자신을 지킵니다.
우리보다 없고 가진 것 없고 못 살지만
형편이 깨끗함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겨우 20여 만원의 사례를 받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아이의 아픔이 병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아이의 힘듦이,
가난이,
환경의 어려움이 기도와 깨끗함을 지키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더 빠른 길인지 모릅니다.
늘 바라보면서 도전을 받고 함께 주의 길을 걷습니다.
이런 자랑스런 우리의 신앙,
끝까지 우리의 삶과 믿음을 지키는 우리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