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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브> (시편 16편)

<토브> (시편 16편)

 

 

 

 

 

 

 

 

 

<토브> (시편 16편)

 

하나님이 되는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습니까?

주인이 되는 것이 좋습니까 종이 되는 것이 좋습니까?

사는 것이 좋습니까 그렇지 않는 것이 좋습니까?

 

무엇이 좋습니까?

본능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되려 하고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종이 되기 보다 주인이 되는 것을 좋아하며

세상에서 가난하게 사는 보다 부자가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죄가 찾아온 후의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죄의 본성은 상향성입니다.

나은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죄의 본성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시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베드로가 성령이 임하고   정신을 차리고

예루살렘에 예배하기 위해 모인 유대인들 그리고 나라에서도 찾아온 유대인들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목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설명하면서 인용한(16:8-11) 중요한 시편입니다.(2:24-31)

 

첫째, 다윗의 고민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16:1)

다윗이 다급하게 자신을 지켜달라고 힘든 상황에서 주께 피한다고 먼저 입을 엽니다.

무엇이 다윗을 힘들게 하고 무엇이 다윗의 고민입니까?

 

결론부터 말합니다.

주님은 나의 <>이고 주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말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이 없다 하였나이다(16:2)

 

다윗이 이렇게 말할까요?

<좋아 보이는 > 때문입니다.

 

다윗이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

하나님을 믿을 얻는 축복보다 나아 보이는 길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는 갈등하지 않고 믿음의 일등합니다.

자신 만이 아니라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고 선언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모든 즐거움이 성도들이라고 기록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16:3)

 

왜요?

주님을 섬기는 삶으로 사는 성도자체가 존귀한 자들이고

주님을 복으로 여기며 사는 그들이 모든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보다 존귀하며 나의 어떤 즐거움보다 더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합니까?

세상이 무엇을 다윗에게 강요하고 요구할까요?

나은 길입니다.

높아지는 길입니다.

사는 길입니다.

 

나은 기쁨과 즐거움을 위해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조건부로 사는 인생입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16:4)

 

사람은 나은 길을 얻기 위해 악이라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다윗에게 요구하는 길은 나은 길입니다.

사는 길입니다.

편하고 쉽게 사는 길입니다.

길을 위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라고 말합니다.

예물의 의도는 내가 살기 위한 조건부 예물입니다.

부적이기도 하고 내물이기도 하고 편법이기도 하고 감아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예물을 드립니까?

우리가 다른 신이라는 맘몬에게 엎드리고 그들에게 예물을 드리는

조건부 인생을 살아갑니다.

 

나은 즐거움과 나은 편안한 인생과 부자가 되고 힘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살면서

원수들이 다윗에게 요구한 것은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증명해 보라합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을 믿으니 그렇게 힘든 인생을 사니

차라리 다른 신에게 헌금을 하고 예물을 드려보라고 조건부 제안을 합니다.

 

다윗은 그들의 조건부 제안에 철저히 거절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아무 없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힘없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들이고

성도들이 나의 모든 즐거움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조건부 축복을 선택하지 않는 인생,

인생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이 말한 나의 복이라는 원어는 '토브' 입니다.

토브는 '좋은 , 선한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지 갈등합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 잘사는 것이라면,

내가 보기에 높아지는 것이라면,

내가 보기에 힘을 가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세상의 <조건부 제안> 받아들입니다.

 

예배를 포기하고 나은 것을 위해 조건부 선택을 하고

좋아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것을 드립니다.

 

좋아 보이는 삶을 위해 드리는 어떤 희생과 대가는 거짓입니다.

그렇게 살아간 인생에게 주어지는 결말은 <괴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조건부로 살아간 인생들,

좋아 보이는 것들을 위해 하나님을 택하지 않고 따라간 모든 길의 결말은

<괴로움>입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길은 결국 망하는 길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길이 그렇습니다.

보기에 좋은 길은 결국 괴로움의 길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선택한 인생은 하나님이 분깃이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16:5)

 

하나님이 나의 산업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소득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나의 몫이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존귀함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비록 좋아 보이는 것을 택하지 않음으로

나은 인생의 풍요함은 없지만

하나님 자신만으로 기뻐하는 인생,

그것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조건부 인생을 사십니까?

세상과 타협하십니까?

나은 인생입니다.

 

좋아 보이는 것을 거절하십시오.

조건부 인생을 거절하십시오.

세상은 좋아 보이는 것을 위해 다른 신에 해당하는

세상적인 방법을 위해 조건부 인생을 살라고 합니다.

 

둘째, 양다리를 걸치라 합니다.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16:4)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의 방법과 길도 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살아가는 방법,

세상이 선택한 방법을 함께 취하라는 것입니다.

 

양다리를 걸칩니까?

예배도 드리면서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갑니까?

두려움과 욕심입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살지 않으면 세상보다 뒤떨어질 같고

세상의 방법대로 교육하고 학원을 가고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면

죽을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세상보다 좋을 것을 누리지 못할 같은 두려움 그것이 우리를 세상과 타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세운 우상 , 힘과 권력과 돈을 따르고

그들이 부르는 이름 , 세상의 능력을 말하는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살았던 삶이 무엇입니까?

초라한 도망자였고,

가난한 자들과 지내는 비루한 자였고,

세상적으로 무명한 자였고,

없는 자였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나의 분깃이고 나의 토브-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없어도 하나님만 있으면 내게 행복이고

무명해도 하나님을 부를 있다면 내게 즐거움이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예배할 있다면 불편하게 살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노래는 오늘 하나님 만을 선택한다는 고백이고 각오입니다.

 

셋째, 베드로가 오늘 말씀들을 인용합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죽음과 부활 앞에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고 베드로가 처음으로 설교하면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육체도 안전하고 영혼이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성도를 멸망시키지 않으신다는

다윗의 고백을 인용합니다.

 

세상적으로 살고 좋고 축복 받는 길을 포기한 인생의

마지막 복은 하나님이 살리신 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말한 것처럼 예수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부활시키시고 그분을 세상의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2:32)

우리가 조건부 인생으로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방법으로

좋은 것을 택합니까?

땅이 끝이라고 여겨서입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이 끝이라고 여겨서입니다.

 

부활을 믿고 죽음을 이기시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베드로의 설교 요약입니다.

 

세상은 세상이 끝이고 다른 세상이 없기에

세상에 사는 길을 택하라합니다.

조건부로 세상의 신에 예물을 드리고

세상의 것에 머리를 숙이고

세상의 방법으로 내가 나은 인생을 복을 받는 길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진정한 토브, 복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신앙의 본전은 천국입니다.

밑져도 본전은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부터 시작한 인생입니다.

그것이 부름 받은 성도의 인생입니다.

다윗은 그것이 가장 존귀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은 가지고 가지고로 우리에게 유혹합니다.

좋은 가지는 것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론적으로 가지고 가지고

좋은 좋고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충만한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11)

 

우리의 본전은 생명입니다.

우리의 시작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으려 하면 우리는 망합니다.

 

다윗도,

예수 그리스도도 얻기 원한 것은 하나님 앞에 충만한 기쁨의 원천인

<생명>이었습니다.

 

생명이 기쁨이 되고

생명이 전부라고 여기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신에게 절하고 예배하고 그들이 흘린 피의 방법을 쫓아갑니다.

 

세상의 길과 세상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이 되어

그들이 사는 길로 따라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생명이 기본입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토브입니다.

가장 좋은 ,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입니다.

 

세상은 오늘도 우리에게 좋은 삶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곳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사단은 아담에게 생명을 담보로 좋아 보이는 것을 택하라고 유혹했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우리에게 생명을 담보로 좋아 보이는 것을 택하라고

세상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렇게 살면 세상에서 살수 없다고

그렇게 살면 세상에서 좋은 , 나은 , 나은 교육,

나은 학교와 직장에 가지 못한다고 유혹합니다.

 

생명을 담보로 길을 걷지 않기 바랍니다.

길의 마지막은 <괴로움>이라고 기록합니다.

 

물고기에게 낚시에 걸린 미끼는 잠시 배부름을 위해 생명을 놓는 도박입니다.

성공해서 배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좋은 미끼로 당신을 유혹 것입니다.

 

우리의 가진 것은 오직 생명입니다.

생명을 걸로 세상과 도박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의 본전은 생명이지만

세상은 본전을 뺏으려고 세상 전부를 걸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 전부를 걸고 생명을 지키기 바랍니다.

한번의 조건부 타협,

한번의 양다리 작전은 결국 생명을 잃게 되는 생명의 도박이 됩니다.

 

당신의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

내게 주신 생명이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전입니다.

 

 

 * 7구역과 12구역에서 드롱콥교회와 양로원을 방문했습니다.

 

이분들의 직업이 대부분 사업을 하든지 한전, 기아

한국의 대기업 아니면 개인 회사의 사장님들입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회사의 나라 대표로 살다 보면 없는 유혹과 타협의 일들이 생깁니다.

마음이 아프고 그들의 삶의 고단함에 짠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가진 좋은 것을 포기하기 위해

세상의 방법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보다 좋은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나눠주기 위해

많은 선물과 사랑을 가지고 와주신 여러분이 감사합니다.

바자회 지원해 주신 담요를 노인 센타에 나누고

준비한 선물세트를 나누고 보내주신 돈으로 점심도 함께 준비해서 나누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바이올린 연주와 노래를 준비해서 공연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생명의 충만한 기쁨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본전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세상의 것으로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