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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 3 <말>> (시편 15편)

<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 3 <말>> (시편 15편)

 

 

 

 

 

 

 

 

<주의 장막에 거하는 3 <>> (시편 15편)

<저주의 기회 축복의 기회>

 

다윗이 가진 뼈저린 교훈이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어떤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경험이 있고 가운데 거해본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압니다.

급기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주의 장막, 주의 성산에 들어가지 못할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한마디로 오늘 시편은 자신의 과거의 죄의 상태로 느꼈던 것을 경험으로

자신의 원수와 악한 자들을 빗대어 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에 다윗이 가장 많이 조건을 것은 바로 <>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15:2)

 

주의 장막에 거하며 성산에 거하는 10가지 조건 중에 무려 4가지가 진실된 말에 대한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40% 차지하는 조건으로 오늘 설명을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단의 가장 무기는 능력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지 않는 혀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하는 ,

진리에 맞는 말을 하는 자가 주의 성산에 거하는 조건입니다.

조건들에 대한 구체적인 것을 세가지로 설명합니다.

주의 성산에 거하는 말에 대한 조건이 무엇입니까?

 

첫째, 뒤에서 다른 소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 하지 아니하고"(15:3)

다윗이 평생 힘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없는 소리를 해서

사울 왕과의 관계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중간에 이간질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피해를 평생 보았던 삶이 다윗의 삶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 압살롭과의 갈등과 문제 사이에도 이간질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허물하다'라는 말은 원어로 뒤에서 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 'backbite' 험담하는 것입니다. 뒤에서 무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사람의 욕하는 것은 사람을 뒤에서 물어서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죽이지 않아도 뒤에서 죽이는 것이 허물입니다.

표준새번역은 구절을 '뒤에서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라고 기록합니다.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온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나온 진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말합니다.

 

말이 결국 의인을 죽이고 자신을 죽이게 됩니다.

뒤에서 물어서 죽이는 것이 허물입니다.

 

특히 ''이라고 기록된 남은 가까운 혈연 관계나 친척이나 관계의 사람을 말합니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자들에 대해서 뒤에서 욕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나를 죽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이 밧세바 와의 죄를 숨기기 위해 장수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뒤에서 다른 말을 하고 자신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말로 속인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일로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

주의 성산에 거하지 못할 것에 대한 처절한 슬픔과 회개를 노래한 것이 15편의 반대인

시편 51편입니다.

 

주의 얼굴을 죄에서 돌이켜 달라고,

나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성령을 거두지 말라고 간구합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뒤에서 다른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죄임을 다윗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런 교훈을 죄인들에게 가르치겠다고 말합니다.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51:13)

 

다윗은 교훈으로 오늘 시편을 열심히 기록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죄를 돌이키고 느낀 한가지는 무엇일까요?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51:17)

 

 

죄를 짓지 않은 자는 없습니다.

실수 하지 않는 자도 없습니다.

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통해 우리 안에 다시 구원의 기쁨 정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둘째, 약한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15:2)

 

이웃은 역시 가까운 사람을 말합니다.

가까운 사람은 내가 그들의 장점도 약점도 허물도 부족함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에 관하여 그들의 약한 것을 말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영어로 비난 하다는 것으로 번역이 되기도 하지만 원어로는 노출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약함을 벗겨서 말하는 것이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의 근원은 노아의 아들 함으로부터입니다.(922)

노아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잠을 자고 있을 함이 그것을 보고 셈과 야벳에게 알립니다.

여기서 알린다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아버지의 약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허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함을 아들 가까운 자에게 말했을 함은 평생 형제들의 종들이 것이라고

노아가 저주합니다.

 

가까운 자들의 약함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기 바랍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그들의 약함을 말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들을 세우기 위해 약함을 내가 채우기 바랍니다.

셈과 야벳은 말하지 않고 아버지의 약한 부분을 덮었습니다.

말하지 않고 들추지 않고 덮을 있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누군가의 약함을 보는 것은 덮어야 하는 사명으로 다가와야합니다.

덮는 자를 높이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셋째, 약한 자를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것입니다.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15:2)

 

말입니다.

말로 범하는 죄들입니다.

다윗은 말로 인한 처절한 고통을 당하며 의인이 당하는 고통중에

말로 인해 당하는 고통이 깊으니 어디까지 하지 말라고 하느냐면

아예 약한 자들을 대화의 주제로 삼지 말라고 합니다.

'비방하다'라는 말의 원어는 <들어 올리다>라는 뜻입니다.

대화의 주제로 들어 올려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방은 대화의 주제로 들어올려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자의 마지막은 약한 자들을 아예 주제로 삼아

약함을 비판하고 허물을 공격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살았고 자신이 그렇게 당하여 고통의 시간을 보낸 다윗입니다.

자신이 그런 시간을 보낸 결과로 시편 51편의 고백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쁨이 사라지는 처절한 눈물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기에

그는 하나님의 성산에 거하는 자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죄인들을 가르치겠다고 했고

결심을 오늘 찬양으로 우리를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사단의 무기는 말입니다.

진실과 다른 혀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 하셨지만

사단은 진실되지 않은 말로 사람을 망하게 했고

함은 아버지의 약함을 말함으로 저주를 받았고

셈과 야벳은 약함을 말하지 않고 덮어줌으로 섬김을 받는 자가 됩니다.

 

기쁨도 평안도 흔들리지 않은 인생은

다른 사람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 인생입니다.

오늘 시편의 결론은

<흔들리지 않는 인생>입니다.

 

누가 흔들리지 않는 기쁨과 구원의 즐거움을 누립니까?

다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함을 뒤에서 말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들의 약함을 대신 덮어주는 인생입니다.

 

약함이 보이면 뒤에서 험담할 기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저주의 기회가 되지만

약함을 덮어주면 <축복의 기회> 됩니다.

 

다윗이 한번 죄를 지은 것이 그의 평생에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비록 한번 실수를 했지만 다시는 실수하지 않습니다.

한번의 실수가 평생 다윗을 지키는 울타리가 됩니다.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15:5]

 

사울왕이 자신을 집요하게 비방하고 죽이려는 고통으로 엄청난 시간을 보내지만

결코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 의인이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다시 주를 향하여 상한 심령으로 나아가면 주께서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회복하십니다.

그러나 일로 교훈을 삼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혀를 지키는 축복이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혀로 인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약함은 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덮어주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 말은 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타고 운반해야 합니다.

제어할 없는 , 위험합니다.

우리의 혀가 하나님의 복음과 가까운 사람들의 좋은 것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좋은 것을 전달하는 혀가 되어야 합니다. 

말은 제갈을 물리고 고삐를 물리지 않으면 살아서 자기 마음대로 달려갑니다.

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혀…

저주가 되기도 축복이 되기도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