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속에 기적의 붙드심> (시편 8편)
다윗이 놀라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 가장 근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가 그렇게 찬양하고 노래하고 위대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냥 살아 있는 <평범한 일상> 입니다.
늘 쫓겨 다니는 신세로 죽을 것 같은 삶이지만 오늘도 먹고 자고 일어나는 평범한 생명을
그가 소유 했다는 것, 그것 한가지가 시편의 찬양의 이유입니다.
그 생명을 하나님이 붙들고 있다는 그 한가지 이유가 그 위대한 다윗의 노래의 이유입니다.
오늘 8편 말씀은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그 평범한 삶에 대한 위대한 노래입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삶은 하나님의 영의 눈을 뜨고 보니
평범함이 아니라 위대한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입니다.
첫째, 평범함의 기적!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8:1)
왜 다윗은 온 땅이 그렇게 아름답고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다고 고백합니까?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은 100미터에 9초 58입니다. 시속으로 37.58km 입니다.
마라톤의 최고 기록은 42.195km를 2시간 3분에 뜁니다. 시속 20.58km 입니다.
동물 중에 가장 빠른 치타는 시속 120km 이고
가장 빠른 새는 군함조라는 새인데 시속 400km 입니다.
KTX는 시속 300km 이고 스포츠카는 350km,
비행기는 시속 1000km 그리고 전투기는 3000km 입니다.
그럼 지구는 시속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지구의 자전속도는 시속 1670km 이고 공전 속도는 시속 107,530km 입니다.
팽이처럼 돌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이 지구입니다.
우리는 팽이처럼 도는 지구에서 1670km 로 돌면서
앞으로 107,530km 를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스케일은 이렇게 큽니다.
그런데 이 지구는 태양계 중에 작은 별이고 태양계는
또 우주의 엄청난 세계 가운데 작은 하나입니다.
그 큰 세상, 그 큰 우주 중에 작고 작은 먼지 같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 존재하는 우주에서 미세한 먼지 같은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사는 것이 우리입니다.
시편 기자는 과학적 수치가 아니어도 이 땅과 하늘과 만드신 모든 것을 보니 어찌 그리 아름답고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는 놀라운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둘째, 초라함 그러나 위대함!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8:3-4)
위대한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발견하지만
사람의 초라함을 발견하는 것이 다윗의 첫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하나님이 만드신 땅과 지구와 하늘의 별과 달을 보니
인간은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너무 잘 인식하고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이기에 생각하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돌보시는지 그것이 더욱 놀랍다는 것입니다.
초라함으로 시작한 그의 인식이 위대함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 놀라운 우주의 운행을 깨닫고 보면 나 자신은 더 없이 초라하고
더더욱 쫓기고 도망하고 외면당하고 버림 당한 자신은 어디에도 내 세울 수 없는 존재인데
땅과 하늘보다 못한 자를 주께서 생각하고 돌보시는 자신을 보니
자신의 위대함에 놀라고 있는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놀라움,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의 달과 별의 위대함을 노래하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 어떤 위대한 피조물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돌보심은
더욱 세밀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을> 간섭하고 계시는 것을 깨닫고
감격해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초라한 인생인데,
마른 막대기 같은 인생인데,
사람들이 외면하고 버리고 도망하며 숨어 다니는 인생인데,
알고 보니 그 어떤 것보다 마음을 주시고 생각하시며 돌보시는 존재가 나라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고백하는 것이 이 시편의 결론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9)
초라함을 느낄 수록,
외면당하고 자신의 약함을 발견한 인생일수록
세상의 위대함에 놀라움을 알게 되지만
그것보다 나를 더 귀하고 위대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오늘 하루 감격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사람은 뛰어도 몇 십 키로이고
돌에 맞아도 죽고
2-3 미터 높이에서 뛰어 내려도 부러지고
작은 바이러스 하나에도 목숨을 잃는 것이 사람인데,
그 연약하고 힘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 전부를 위임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이 세상보다 천하보다 사람이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세상의 위대함을 보면 위대함이 아니라 나의 초라함이 보입니다.
인간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인간의 초라함이 보여야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시는 위대함이 다시 보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심으로 인해 나의 위대함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라함>의 발견이
<위대함>으로 이끄는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위대함 만을 아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과 생각하심을 알지 못합니다.
힘으로는 가장 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는 탁월한 것이 사람입니다.
아담의 능력은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을 짓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포유류는 3500 종 이상이고 조류는 18000 종, 양서류는 5500 종 이상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름을 짓고 다시 이름을 불러주고 관리를 한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초라함을 아는 자에게 이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관 씌우신 사람은 자신의 초라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온 땅과 우주 앞에 초라함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합니다.
타락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타락>은 자신의 <초라함>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타락의 시작은 자신의 초라함을 알지 못하고 비교하며 스스로 탁월함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나의 초라함이 보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함으로 초대됩니다.
그러나 나의 초라함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는 결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지 못하기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위대함의 시작! <생각>
다윗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은
세상의 위대한 자연과 이치와 섭리입니다.
그것을 보니 자신의 초라함을 보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이 주는 교훈은 자신의 초라함을 보는 생각의 훈련입니다.
자연을 보고 세상을 보고 위대하다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위대함 앞에 초라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초라한 그 존재를 생각하시며 돌보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고
손으로 만든 모든 것들을 발 아래 두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5-8)
자신의 초라함을 알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놀라움을 알지 못합니다.
그냥 한 사람이 나를 좀 좋아하겠지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이 자연과 우주와 운행되어지는 세상을 보면 사람으로서는 결코 생각지 못하는 지혜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만드신 능력의 본체인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평범함 속에 숨은 기적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땅과 하늘을 통해 보았습니다.
세상의 동물과 새들을 통해 보았습니다.
자연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초라함을 그것들을 통해 생각하게 됩니다.
흙으로, 먼지로 인간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죽음을 빼앗겨 모든 것을 잃자
당신의 아들들을 사람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만드신 사건…
예수님의 나심과 죽으심 그리고 십자가 입니다.
세상보다 못한 인간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이면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과 돌보심을 알게 하신
이 놀라운 재 창조의 역사 앞에 우리는 그저 머리를 숙이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존재로 서야합니다.
세상을 다 주고 그분 자신인 아들도 주셨는데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가치를 잃고
세상의 어떤 가치를 좇아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오늘도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 가치를 생각하며 나의 위치가 어떤 위치며 가치인지
발견하고 생각할 때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아름다움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9)
세상의 위대함을 본 다윗이 결국은
하나님의 이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저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감사의 고백으로 찬양을 마무리 합니다.
세상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그 세상보다 더 나를 존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 때문에 나의 존재 가치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의 작은 것들,
겨우 돈 좀 더 벌고 좀더 좋은 차를 타고 좀더 좋은 집에 사는 것으로
우리 인생의 존재를 결정지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보다 존귀하게 하셨고
우리는 세상보다 영화롭게 하셨고
우리는 없어질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살아갈 존재로 선택 받은 존재입니다.
그 감격이 오늘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가득하여
나를 통해 나를 만나는 사람이 영광의 삶으로 초대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영화와 존귀로 관 씌우신 놀라운 존재입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기적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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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찬란함보다 내가 더 찬란한 영화로 관 씌우셨음이 믿어지십니까?
그것이 믿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영광이고 감격이고 기쁨인 우리의 존재입니다.
세상의 작은 것들로 우리의 존재의 가치를 버리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적용-
1.나의 초라함을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의 위대함을 아는 길입니다.
내가 본 위대한 자연의 경관은 무엇이 있습니까?
2.초라함을 아는 것이 하나님이 사랑한 나의 위대함을 아는 역설이 됩니다.
그렇게 위대한 세상보다 더 존귀한 존재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언제 경험해 보셨습니까?
감사와 감격의 시작은 하나님의 위대함이 아니라 초라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평범한 속에 숨겨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함께 나누어 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