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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주무셨습니까?> (시편 3편)

<잘 주무셨습니까?> (시편 3편)

 

 

 

 

 

 

 

 

 

 

 

< 주무셨습니까?> (시편 3)

 

내가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다윗이 왕의 자리에 있을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여

밧세바를 범하게 되고 결과 나단 선지자의 예언으로 그의 집안에 칼이 넘쳐나게 됩니다. (삼하12:10)

 

오늘 시편은 다윗이 자기의 가장 뛰어난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도망가며 지은 시입니다.

압살롬은 그의 모습이 얼마나 준수했는지 사무엘하 14 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이런 아름다운 아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반역을 통해 그는 도망하면서 노래를 지어 부릅니다.

그리고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전체 '아침예배' 정규시편이 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래가 이스라엘의 아침예배의 정규 찬송이 되었을까요?

 

오늘 시편은 다윗이 당한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붙드시며 함께 하심을 노래하는 찬송입니다.

 

하지만 시편의 시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대적과 나를 치는자가 많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1)

 

시므이가 피를 흘리는 자라고 저주하고

자신의 아들이 군대를 일으켜 죽이려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윗은 버리고 아들 압살롬을 선택하는 가운데

그가 상황을 아뢰므로 찬양을 시작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의 자리를 압살롬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삼하16:7-8)

 

그래서 삼하15:30절에 반역을 피해 도망하는 다윗과 수행원들의 모습을 기록하는데

모두다 울며 맨발로 울며 도망했다고 합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 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이런 상황에서 그는 세상이 자기에게 대적이 되고 자신을 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람들의 외면과 사람들의 대적은 사람과의 관계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어집니다.

 

그들의 말은 이렇게 결론을 냅니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3:2)

 

 

첫째, 사람들의 배반보다 무서운 !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내가 세상에서 아픔을 당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는 것으로 결론을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말합니다.

네가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과 대적들의 말과 핍박이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과연 하나님이 버리셨느냐는 것입니다.

 

나를 모르던 사람이 그러면 괜찮습니다.

나의 마음을 모르고 나의 삶을 모르는 사람이면 괜찮습니다.

시므이가 외치는 저주는 참을 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욕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를 가장 아는 사랑하는 아들이 나를 버렸습니다.

아니 나를 죽이려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세상이 아름답고 준수하다고 인정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나를 반역하고

죽이려 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은 아닌지 그것이 힘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아픔입니다.

세상이 돌을 드는 것은 참을 합니다.

그런데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가장 아꼈던 제자들의 버림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예수님의 외침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외침을 하는 것입니다.

 

외부적 고난이 하나님의 버림으로, 하나님의 외면으로 다가오는 것이 영혼의 느낌입니다.

다윗을 통해 예수님을 봅니다.

 

죄의 본성으로 지은 죄의 대가를 어쩔수 없이 받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외면과 하나님의 버림이 아니라는 것을 다윗은 오늘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자리를 빼앗긴다 해도

다윗은 오늘 끝까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합니다.

 

현실을 보지 않고

죄의 결과를 보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대가를 통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

그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둘째, 기도의 스승이 누구입니까?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3:3-4)

 

다윗의 기도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사무엘 입니까?

다윗의 아버지 이새 입니까?

다윗의 기도의 스승은 바로 <고난>입니다.

 

오늘 다윗이 이런 배반과 반역과 자신의 아들,

자신의 사람들이 그를 버림으로 당하는 고난이 결국 다윗을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라고 합니다.

주가 나의 방패이고 영광이고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근거> 바로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다윗 평생에 한번의 기적 밖에는 다윗은 평범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적어도 기적에 관해서 말입니다.

물 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물리친 어린 시절의 한번 경험 말고는 다윗의 평생에

어떤 기적도 그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이 다윗이 되는 축복 가운데 그가 살았습니까?

어떻게 그가 많은 시편의 찬양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놀라운 선언을 하나님으로 들을 있습니까?

 

그를 만든 것은 기적의 삶이 아니라

평범한 삶도 감사로 바꾸는 <고난>었습니다.

 

 

셋째, 두려워하지 않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3:6)

 

오늘 시편의 시작은 세상이 나를 대적하고 나를 친다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가 오늘 천만인이 나를 친다 해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갑자기 그렇게 말합니까?

 

압살롬에게 도망간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서 고백하는 시편이 오늘 찬송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고백하는 시편이 오늘 찬양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기도하고 확신한 한가지 사실은 바로

<누고 자고 깨어남>입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3:5)

 

무슨 말입니까?

어제 아들을 피해 도망을 나왔고

눈물로 백성들과 수행원들과 맨발로 도망을 나왔는데

잠을 자는 밤에는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이 적으로 여겨졌는데

내가 흘린 죄로 심판을 받는 것처럼 여겨졌는데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고 방패이고 머리를 드신다는 고난을 통한 기도를 드렸더니

오늘 아침에 내가 깨어 것을 보니 하나님이 나를 붙드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많은 고난 중에 발견한 것은 잠에서 깨어난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호흡하고 숨을 쉬고 일어난 자체가 축복이며

주는 나의 방패임을 경험하는 근거이고

주가 나의 영광임을 알게 이유이고

머리를 드시는 자임을 깨닫게 기적이 바로 잠에서 깨어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은 기적이 없는 인생입니다.

고난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인생을 통해 기도를 알게 되었고

고난이 기도의 스승이 되었으며

그렇게 기도하는 인생을 살다 보니

잠에서 깨어나는 자체가 하나님이 붙드시는 기적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축복의 현장이라는 것을 오늘 발견하는 것입니다.

 

죄의 대가로,

피를 흘린 대가로 죽어야 하는 인생인데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구원하시며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고 악인의 이를 꺾으시는 것을 확신하는 근거가 바로

< 자고 일어남>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어떤 것도 축복이 되지 못합니다

많은 재산과 많은 물질과 많은 음식과 좋은 집과 차는 아무런 축복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오직 하나 하나님이 함께하는 근거는

바로 자고 일어나는 <호흡>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호흡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고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머리를 드시는 자라 되는 근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죄를 지은 인생을 향한 저주 가운데,

세상과 가까운 제자들이 배신한 가운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지 인간적인 버림에 대한

아픔을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신뢰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십자가의 자리,

고난의 자리,

고통의 자리,

죄의 대가를 치루는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구원으로 방패로 머리를 드시는 자로 예수님을 회복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호흡>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숨을 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대가를 치룬 예수님에게 찾아온 것은 <호흡>입니다.

죄를 회개한 제자들에게 찾아온 것은 <성령의 호흡>입니다.

 

다윗이 깨달은 것은 죄의 대가로 고난을 당하지만

자리를 지킴으로 얻은 아침에 숨을 쉬는 호흡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는 축복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죄의 담보는 생명입니다.

생명으로 우리는 도박을 합니다.

고난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고난이 호흡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다윗의 평생에 기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

생명의 호흡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찬송의 이유이며

가운데 그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함께함의 축복이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은 고난을 지난 자만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지막 고백은

생명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라고

기도를 자신이 아니라 그의 백성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시편을 통해 알아야 하는 것은

기적은 오늘 숨을 쉬는 호흡이며

죄의 대가를 지나며 생명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다시 호흡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진정한 찬양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과 호흡하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방패로 영광으로 머리를 드시는 자로 우리와 함께 하는 축복 자체입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 !

 

주께서 오늘도 나에게 호흡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워 자고 깨었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놀라운 축복의 증거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노래의 이유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3:8)

 

 

 

 * 카밀리버교회 찬양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부끄러움 없이 몸을 다해 찬양합니다.

오늘도 호흡을 주신 하나님,

구원의 근거,

축복의 근거로 생명의 호흡을 주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는 그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마음을 다해,

옷이 흘러 내려도 오늘 나에게 호흡을 주신 하나님으로 춤을 추는 다윗의 노래와 찬양이

오늘은 깊이 이해하는 하루가 됩니다.

 

생명의 호흡…

 

성령의 호흡…

 

찬양의 이유입니다.

 

 

 

 

 

-적용-

 

1.내 삶에서 실패와 좌절로 아픔을 경험한 일보 다 더 힘든 것은 하나님은 나를 포기한 것은 아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가라고 느낀 경험은 없는가? 무엇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2.나를 더 기도하게 만든 고난은 무엇이 있습니까?

참 기도의 스승은 고난이 된 적은 무엇이 있습니까? 인생을 돌아보며 나누어봅니다.

 

3.내가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는 근거라고 고백한

다윗의 고백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해봅시다.

 

4.호흡 있는자마다 찬양하라고 하신 시편이 있습니다.

우리의 호흡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의 증거입니다.

호흡이 우리 인생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이고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평범한 것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셔서 우리와 호흡하심으로 평생을 동행하십니다.
육체의 호흡만 아니라 성령의 호흡을 하는 자들이 믿는 자입니다.

나는 성령의 호흡을 어떻게 하고 살아가는지 이야기 해봅시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