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조건> - 2014년 8월 24일 주일 가정예배
여호수아1장 1-9
1 . 리더는 주께 <불려진> 사람이다.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 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세우는 리더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가롯유다가 죽고 주께 그 권위를 맡긴다는 의미로 제비를 뽑았다.
제비는 주의 뜻을 묻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
리더는 하나님의 부름심을 반드시 듣고 가는 사람이다.
리더의 자리는 사람이 세운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는 자리이고 하나님이 이끄는 자리이다.
노아의 아들이 책망을 받았다. 형들을 섬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유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다.
분명한 것은 리더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2 . 믿음의 역사를 <경험한> 사람이 리더가 된다 .(1)
여호와께서 왜 모세를 불렀는지 알 수 없듯이 여호수아를 그냥 부르신다.
그러나 모세의 평생을 지켜본 사람,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지켜본 사람만이 리더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의 평생에 그의 삶과 사역을 지켜본 사람을 세우신다. 그가 여호수아 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경험해본 사람, 하나님의 역사를 본 사람이 리더로 세워진다.
하나님을 일하심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세워진 리더는 망한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 즉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리더가 되야한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보았다.
왜 사람들이 죽고 왜 사람들이 망하고 죽어가는 자들을 다시 살리고 용서하고
적들과 싸워 이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 사람이 리더가 된다.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여호수아 시대를 지나고 사사 시대를 맞은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였기 때문이다.
고난이 축복인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편안이 눈물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을 리더로 세우신다.
문제는 그 리더가 하나님이 세웠다는 것을 공동체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3 . 리더는 하나님이 주시는 <방향(목적)>이 있다.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방향 없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방향이나 목적이 없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모세를 부르신 목적은 내 백성을 광야에서 예배하는 백성이 되도록 출애굽 하는 것이 목적이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시는 땅으로 백성과 함께 가는 것이 방향이고 목적이다.
어떤 리더이든 자신에게 주신 방향이 있고 목적이 있다.
목적을 주께 받지 못한 리더는 길을 읽고 방향을 잃는다.
왜 길을 잃는가?
주께서 부르신 방향을 잃어서다. 그 방향은 내가 세운 꿈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방향 대로 가지 않아서 길을 잃는 것이다.
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향의 꿈이 아니어서 길을 잃는 것이다.
3 . 리더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요셉이 리더가 되었다.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다.
그 공동체를 이끄는 자리에 방향과 목적을 주신 사람이다.
어떻게 그 사람이 리더임을 아는가?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함을 보고 리더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그러나 리더로서 함께 함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요셉의 주인과 감옥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함을 보고 모든 것을 맡겼다.
리더는 하나님이 함께 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거듭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네가 이미 본 모세, 내가 모세에게 어떻게 함께 했는지 보았기에
모세에게 함께한 것 같이 너와 함께 한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스스로의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확신해야 한다.
우리의 시작은 하나님의 함께함이다.
그것을 믿는 자가 리더가 된다.
4 . 리더는 <백성 때문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나를 위해 백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 때문에 내가 앞장 서서 목숨을 거는 것이다.
하나님이 백성을 저 땅으로 가게 하기 위해 나를 사용한다.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 백성이 내 중심으로 움직이라 한다.
아니다. 내가 백성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지만 나의 일의 목적은 백성을 위해,
백성이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리더의 오류이다.
나를 위한 사역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사역이다.
양이 리더를 위해 있지 않고 리더가 양을 위해 있다.
양을 고치기 위해 왔는데 우리는 리더라는 자리에서 양과의 갈등으로 양들에게 저주가 임하게 만든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양을 위함이지 예수님 자신을 위함이 아니다.
이것을 잊는 순간 우리는 리더가 아니다.
5 . 리더는 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다.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담대하고 내가 강하고 나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이유는 그들의 땅,
그들이 영적인 가나안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 즉 백성의 꿈을 이루어 주는 것이다.
내가 세운 꿈이 하나님의 꿈이라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께 반드시 받은 꿈을 꿈으로 세워야 한다.
평생 적과 싸워야 하고 평생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백성들이 땅을 얻는 것이다.
영적으로 천국을 살게 하는 것이 리더의 존재 목적이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기 원하신다.
나에게 기적도 능력도 힘도 함께함도 주시는 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목적인 그들 백성에게 그 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살지 말라.
내 뜻을 펼치기 위해 살지 말라.
내 모든 능력과 담대함과 존재의 이유는 <그들>이다.
6 . 리더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을 따른다 (6,7,9)
"강하고 담대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하신다.
환경을 보려는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려는 사람의 본성이다.
마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세번 연속 말씀하신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것은 마음이다.
환경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이다.
환경을 보면 우리는 늘 두렵다.
백성은 아낙자손을 보고 두려웠다. 그들에 비해 메뚜기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런 환경이 아니라 마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볼 때 우리는 환경을 넘는 사람이 된다.
왜 마음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하시는 하나님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7 . 리더는 절대적 <기준>이 있다(감정과 율법의 기준의 싸움이다)(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강하고 담대한 근거는 환경이 아니라 절대적 기준으로서의 말씀을 잡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말씀이 기준이 될 때 우리는 강하게 되고 무엇인지 분별하게 된다.
이 세상의 싸움은 기준의 싸움이다.
아담이 놓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다.
감정이 기준이 되면 반드시 망한다.
감정과 말씀의 기준의 싸움이다.
우리는 늘 우리의 감정을 따른다. 그러면 늘 실패한다.
감정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그 말씀이 내 안에 있어야 한다.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은 모든 상황의 기준으로 말씀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이 기준으로 삶에서 작동하지 않는 모든 말씀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말씀이 기준으로서의 삶에서 작동할 때 우리는 감정에 움직이는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다.
거듭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이다.
주야의 의미는 내 감정이 기준이 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내 삶과 생각과 모든 순간의 기준이 말씀이 되라는 것이다.
리더의 가장 약점은 감정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감정이 개입되면 반드시 실패한다.
우리의 싸움은 기준의 싸움이다.
8 . 묵상의 이유는 지켜 <행하기> 위함이다(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성경을 수십번 수백번 읽어도 그것이 지켜 행함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도를 본다.
거기에는 복음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한다.
작은 말씀하나도 지켜 행할 때 홍해가 갈라진다.
말씀은 큰 것이 아니다.
결정적일 때 지팡이를 내 미는 작은 행함이 놀라운 기적을 여는 것이다.
우리는 읽기 위해 성경을 읽지 않고 행하기 위해 성경을 묵상하고 읽는다.
지켜 행하기 위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는 것이다.
"묵상하여~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우리는 듣기 위해서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지 지켜 행하기 위해 말씀을 듣지 않는다.
그것이 신앙의 체계가 잘못된 것이다.
지켜 행하기 위해 묵상하고 지켜 행하기 위해 설교를 들을 때 삶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듣고 행하지 않는 묵상과 말씀으로 사는 리더에게는 결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는 다음 세대가 믿음의 세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때는 이미 늦은 때이다.
묵상의 이유! 지켜 행하기 위함이다.
하루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었는데 지켜 행한 삶이 없다면 그 다음 하나님의 기적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묵상하고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9 . 형통은 말씀 묵상이 삶으로 <내려올 때> 시작이다.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
형통하고 평탄의 조건은 묵상 그리고 지켜 행함이다.
그 묵상은 다시 마음에서이다.
마음에서 묵상 즉 절대적 기중으로 환경이 아니라 말씀을 붙드는 것이고
그 말씀을 붙드는 이유는 삶으로 그 말씀이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삶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묵상은 그냥 좋은 교훈이다.
생명은 생명의 말씀이 마음에서 발효되고 묵상되고 그리고 그 묵상의 말씀이
삶에서 행함으로 흘러와야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묵상, 많은 성경을 알지만 생명의 역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묵상의 말씀이 행함의 터전인 삶으로 내려 오지 못해서이다.
설교를 듣고 행하는 삶이 없고
설교를 듣고 비판과 평가와 머리속에만 머무는 곳에는 결코 생명의 은혜가 흘러가 가지 못한다.
그곳은 이미 물이 고여 썩은 악취가 나는 하수구가 되는 것이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이미 생명을 흘러보내지 못하는 고인 물이 되는 것이다.
작은 말씀!
내 손의 지팡이,
언제나 어디서나 손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주님은 하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그것도 겨우 하지 못한다.
그 작은 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이다.
리더는 그 묵상의 말씀을 삶으로 내려오는 은혜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 은혜의 묵상의 말씀이 작은 지팡이를 드는 행함으로 내려올 때 홍해도 갈라지고
여리고도 무너지는 것이다.
지팡이를 내 밀고 여리고 성을 주변을 도는 너무 간단한 행함!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는데 우리는 수 많은 설교와 묵상과 성경과 기도를 듣고 보고
그리고 내 안에 모아두기만하고 행하지 않는다.
리더는 그 수 많은 하나님의 것을 작은 것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작은 것을 행하라 하신다.
내 손의 지팡이를 내 밀고 그냥 걸으라 하신다.
10 . 리더는 모든 삶의 이유가 <하나님> 이다.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내 삶의 이유와 근거가 주님의 음성, 주님의 마음으로부터라고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왜 두려운가?
행동의 이유가 나의 감정에서
나의 욕심에서
나의 꿈에서부터 시작되어서이다.
내 것을 내려놓고 그분의 명령으로부터 시작된다면
우리는 담대하고 강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을 수 있다.
리더는 모든 삶의 근거가 하나님의 명령일 때 리더가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명령이 오지 않으면 그냥 기다리면 된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고도 십 수년을 기다렸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고
요셉은 십 수년을 기다렸다.
명령이 오면 움직이는 것!
그것이 리더의 삶이다.
우리는 내 꿈을 이루고 내 뜻을 이루려고 늘 급하다.
주님의 일을 이루려면 그분이 명령할 때만 움직이는 인내와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인생을 두려워 말라.
환경을 놀라지 말라.
세상에 대해 겁먹지 말라.
다른 사람이 앞서 간다고
다른 사람이 높아진다고 약해지지 말라.
주님이 원하는 대로 그분의 철저한 섭리와 계획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나의 때와 나의 계획보다 더 철저히 그분은 그분의 백성과 나라를 위해 나를 사용하기 원하신다.
리더는 스스로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분의 손에 있을 때 리더가 되는 것이다.
리더는 시키는 것을 하는 사람이지 스스로 뭔가 하는 자리가 아니다.
스스로 뭔가 하는 사람은 스스로 왕이 되려는 자이지
종으로서의 리더는 아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뭔가를 한 적인 단 한번도 없다.
그것이 이 땅의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지만 종으로서의 리더쉽을 알지 못한다.
리더가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참 리더쉽이다.
결국 리더쉽(leadership)은 로드쉽(lordship이다.
- 박종필목사님 신숙희사모님이 아프리카를 방문하셨습니다.
짧은 1박2일의 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체질상 짧은 댓글, 짧은 만남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체질이라
기도하고 생각하다 오늘에야 사진을 올립니다.
함께 한 시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시대가 어둠고 갈길을 몰라 방황하는 시대입니다.
시대를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는 좋은 리더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께서 두분의 가시는 걸음에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