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위해 싸운다 말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흠 있는 사람을 불러
그 흠을 내가 대신 채워주는 곳입니다.
세상이 욕한다고 더 잘하기 위해
흠을 흠이라 내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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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설 곳이 없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용서하느냐입니다.
우리는 더 <잘> 하기 위해 복음의 본질인
용서를 잃었습니다.
더 <잘>하는 것보다
더 <용서>하는 것이
<더> 본질입니다.
본질을 외치며 싸우는데 본질이 없는 교회입니다.
의와 공의는 용서로 완성됩니다.
용서하지 않으며 외치는 명분은 모두 가짜입니다.
* 순교한 파니의 딸 엘리자벳입니다.
교회를 세운다고 두 살된 동생을 잃었습니다.
교회를 세운다고 아버지가 무당에게 총에 맞아
길에서 피 흘리며 죽었습니다.
교회 때문에…
그 교회를 용서하고
그 자리에서 찬양을 합니다.
나의 동생과 나의 아버지를 죽도록 놔둔 하나님!
그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인 교회 사람들!
그들 앞에서 용서의 복음인 십자가를 찬양합니다.
왜 복음을 알지 못합니까?
왜 본질을 잃어버렸습니까?
왜 용서하지 못합니까?
복음은 용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