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복과 커피>
한국 사람은 두 종류의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과 입지 않은 사람,
그리고 원두커피에 열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모두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지 알지 못합니다.
왜 사람들이 모두
원두 커피에 몰입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위한다고 말하고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섬긴다고 말하는 것은 진단을 잘못한 의사와 같습니다.
정확한 처방 없이 내미는 처방전은
또 다른 병을 만들 뿐입니다.
왜 백성들이 소리를 치고
왜 고함을 치고
왜 우울증에 빠지고
왜 마지막 선택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등산복을 입게 만들고
원두커피에 녹아 들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외치는 모든 처방은
그들을 더더욱 세상 한 가운데로 몰아가는 소몰이가 될 뿐입니다.
한 사람 걸러 커피 이야기이고
한 사람 걸러 다 등산복이고
한 집 걸러 다 커피 집인 한국에서 산다는 것!
아픔의 원천을 알지 못한 채 부르는
눈물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사람을 안다 말합니다.
아닙니다.
사람을 알아야 하나님이 보입니다.
왜 등산복인지
왜 커피인지
왜 산으로 들로 나가려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외치는 복음은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게 만드는
또 다른 하나의 이유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감의 시작은
인간의 끝을 경험한 자의 마지막 통로입니다.
등산복과 커피…
마지막 통로를 찾는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갈 곳 없고
숨쉴 수 없는
그런 체제속에 갇힌 한국 사람들이 찾은
또 하나의 돌파구 말입니다.
그러나 더더욱 갈증을 주는 돌파구 앞에서
사람들은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서글픈 노래 소리에
나는 오늘도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