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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생각의 함정

 

 

 

 

 

 

 

 

생각의 함정  (눅4:31-44)

 

우리는 좀더 완벽하고 좀더 조건이 좋으며

내가 좀더 잘하면 예수님을 만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 자체가 함정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함정>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생각의 함정 1.

<능력과 자격에 맞는 자리>

 

능력 있는 만큼 높은 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고 많이 공부하고

많은 경험이 있으면 남들이 이루지 못한 높은 곳에서 높은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구원의 방법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나은 사람들과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한 예수님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반대의 사람들입니다.

가난하고, 포로 되고, 눈멀고, 눌린 자들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갖추어지면 그런 사람들과 반대의 사람들에 속해야 하고

나은 자격의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하는 삶을 향하게 됩니다.

자격이 되니 일을 위해,

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높은 사람들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고

그래서 똑똑하면 가난하고 포로 되고 멀고 눌린 자들보다

부자들과

있는 자들과

맘껏 세상에서 힘을 펼치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기를 좋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임이 증명되자

그분이 찾은 것은 낮은 자들입니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버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귀신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이 예수님의 혜택을 받게 되고

만난 자들이 그렇게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소외된 자들입니다.

 

나은 지식과 많은 풍요를 통해 내가 어디를 향하고자 합니다.

세상은 많이 공부 했으니 높은 사람들,

나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격에 맞는 사람을 만나고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완벽한 자격과 나은 자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격에 맞지 않은 자들과 함께한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를 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생각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왕이라는 그리스도라는 자격에 맞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격에 어울리는 않는 사람들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초라하고 형편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많이 드러나는지 모릅니다.

 

 

생각의 함정 2.

<완벽한 조건이 완벽한 축복을 가져온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조건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귀신들리고 병들고 초라한 죄인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상처로 얼룩진> 인생들이었습니다.

 

<완벽한 조건> <완벽한 축복> 가져온다고 생각의 함정에 빠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명분하에

나은 조건의 사람이 되려 합니다.

나은 조건의 사람을 찾고

나은 조건의 교회를 만들려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손길을 경험한 사람들은

상처로 얼룰진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도저히 소망이 없다고 여긴 인생,

사람들이 포기한 인생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완벽한 자격이 아니라

상처와 눈물로 얼룩진 <고개숙인 인생>이라는

 

우리는 상처를 숨기려 하고

우리는 상처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인생의 고개 숙이게 만드는 상처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흠이 없는 자들만 살아남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적이 사라졌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남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어졌습니다.

 

모두다 흠이 없고

모두다 자격이 되고

모두다 상처가 없이 고개 들고 사는 인생이 되니

그리스도가 만나러 오시고

그리스도가 회복하시고

그리스도가 만져주시는 영광의 찬양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찾은 사람들,

예수님이 찾아가는 사람들은

완벽한 조건의 사람들이 아니라

허물과 상처로 얼룩진 고개 숙인 인생들입니다.

감히 하늘을 우러러 기도조차 못하는 세리와

감히 자신의 인생의 부끄러움으로 사람을 피해야 하는 세리 삭개오와

인생의 추함과 더러움으로 남편 여섯을 바꾼 우물가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났을

주님은 영광스런 말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

'이는 아브라함의 자녀로다'

'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완벽한 조건에는 그리스도와의 만남도 영광도 없습니다.

주님은 나은 조건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아니면 소망이 없는 인생을 찾아가십니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로만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나은 조건의 사람이 되어

내가 어떤 일로 영광을 만들려 합니다.

가짜입니다.

내가 뭔가를 해서 나타내는 영광은 영광이 아닙니다.

자랑입니다.

자랑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법칙은

영광을 스스로 만들 없는 자들을 통해

그분이 일하심으로 영광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낫고 완벽한 자격으로

내가 영광을 만들려 합니다.

가짜입니다.

철저한 무능과 자격 없음으로 그분이 나에게 일하심으로

그분의 영광을 내는 것입니다.

 

 

생각의 함정 3.

<사람 중심 사명 중심>

 

나의 최고의 가치는 사람입니다.

<>보다 <사람>입니다.

일의 목적은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일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일을 통해 사람이 세워지고 사람을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사람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명입니다.

<>보다 <사람>이지만 사람보다 <사명> 우선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명보다 사람을 우선적으로 여기고

사람보다 일을 우선적으로 여깁니다.

 

섬겨야 하나님을 이용하고

이용해야 물질을 섬깁니다.

사랑해야 사람을 미워하고

미워해야 악을 사랑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세우시고 사람을 고치시고

사람을 중심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움직이는 기준은 그분의 사명이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예수님의 일하심을 보고 자기들의 동네에 머물기를 청했습니다.(42)

청했다기 보다 억지로 눌렀다는 표현이 원어적으로 맞습니다.

'떠나지 못하게 만류'했다고 표현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못이기는 주저 않습니다.

왕으로 대접을 받고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류를 박차고 떠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더욱이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가치있게 여기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명>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4:43)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적어도 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중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은,

자기가 이루고 싶은 결과를 기대하고 결과에 맞추어 사람을 대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이 있습니다.

일은 이렇게 해야 하고 이런 결과를 낳아야 하고…

그러면서 결과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교는 이래야 하고

목회는 이래야 하고

목사는 이래야 하고 라는 자기 기준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명분도 좋고

이상도 좋고

꿈도 좋습니다.

그러나 기준에 사람들이 숨을 쉬지 못합니다.

그것이 중심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일하심을 무시하고 자기 기준의 이상과 꿈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뀐 사람들이 많습니다.

좀더 나아진 성숙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를 가집니다.

사람에 묻혀 살게 되는 한계입니다.

 

사람이 요구하는 요구에 힘을 쓰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양 착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약함은

사람들의 말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면 그것이 기준이 됩니다.

사람들이 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두렵습니다.

 

빌라도가 그랬습니다.

사람의 가운데 있었지만

사람들의 말이 두려워 결국 예수님을 죽이게 됩니다.

 

사람 중심이어야 하지만

사람이 자기 인생의 기준이 아니어야 합니다.

 

인생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위하는 가장 위대한 영광은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그분이 주신 사명을 따라 움직일

그분의 영광이 나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명의 부재입니다.

사람들이 세우는 명분과 가치가 많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가치는

그분이 나를 부르신 <사명>입니다.

 

 

사명이 일을 넘고

사명이 사람을 넘고

사명이 세상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에 사명이 없습니다.

일에 흔들리고

꿈에 흔들리고

각자의 비전에 흔들리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흔들립니다.

 

인생의 사명이 나를 살립니다.

교회의 사명이 교회를 살립니다.

 

살았으나 죽었고

죽었으나 살게 되는 유일한 기준!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격과

그리스도라는 자격에 맞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에서 포기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나에게 사명이 있습니까?

없다면 살았으나 죽었고

있다면 죽었으나 인생입니다.

 

<사명>

세상을 살리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 베레나교회 의료봉사를 마친 의료봉사팀입니다.

 

김재도교수님, 오경승교수님, 김부경교수님 이렇게 세분이

복음병원에서 오셨습니다.

 

김재도장로님은 벌써 10년이 넘게 의료봉사를 오십니다.

오경승 교수님도 세번째,

김부경교수님도 두번째 오십니다.

 

 

두군데의 선교지 교회와 한인교회 그리고 올해는 선교사님 가족과 유학생 목사님 가족들에게

의료봉사를 하셨습니다.

 

한국에선 한번 뵙기도 힘든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가난하고 의료혜택이 없는 이들에게

매년 자비로 시간을 내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러 오십니다.

 

한인교회 봉사팀입니다.

배춘성권사님은 벌써 15 이상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함께 도와 주시는 집사님들입니다.

매년 사명을 가지고 자신의 달란트를 사용하십니다.

 

가질수록,

자격이 완벽해 질수록,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수록 사명을 따라가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사명을 놓치면 놓칩니다.

 

배굉호목사님은 남천교회 부임하시고 지금껏 매년 아프리카로 오십니다.

선교를 위해 선교사를 보내고

자신이 직접 길을 나서십니다.

 

그렇게보면 사명을 따라 사는 인생은 넘어짐이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있는 인생은

사명을 따라 가난하고 눌리고 매이고 억눌린 자들과 함께 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일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세우지만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은 평안입니다.

 

함께 해주신 의료팀들께 다시한번더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사명을 따르는 인생의 축복을 생각합니다.

가지고 나아져도

사명 없는 인생은 마지막이 눈물이 됩니다.

 

<사명>입니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자격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보다 사명이 중요합니다.

당신에게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사명이 당신을 마지막까지 살릴 것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