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 (눅3:1-20)

 

디베료 황제를 언급합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임을 말합니다.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이라고 합니다.

빌립도 구사니아도 분봉 왕이라고 말합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곳은 빈들입니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3:2)

 

<하나님의 말씀> 임했습니다.

백년을 기다린 선지자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 왔습니다.

빈들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궁정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오늘은 <빈들>입니다.

 

빈들입니까?

 

 

<어두운 시대> 때문입니다.

 

 

그렇게 수백년을 기다린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전한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당시 왕들을 열거합니다.

황제도, 분봉왕들도 그리고 대제사장까지도 언급합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에게 말씀이 임했는데 말씀이 회개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첫째, 무리들에게…

 

무리들이 묻습니다.

회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느냐고?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3:11)

 

<나눠 주라> 입니다.

 

 

너무 실망입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너무 상식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 임했는데 빈들에 임한 말씀이 너무 상식적인 말씀입니다.

 

그냥 <나눠주라> 입니다.

 

황제도 분봉왕들도 대제사장들도 언급하면서

그들에게는 임하지 않고 오직 빈들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리들에게 요구한 것은

 

<나눠줌> 입니다.

 

 

무슨 신비한 말씀을 풀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알지 못하던 말씀을 알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창세로부터 알지 못하던 비밀을 깨닫게 해주고

남들이 알지 못하던 계시록과 감춰진 비밀을 알려줘야 ~ 선지자구나!

~ 사람이 목사구나!라고 할텐데 그런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빈들에 말씀이 임해서 전한 내용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옷을 두벌 가지고 있으면 한벌은 나누라는 것입니다.

먹을 양보다 있으면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리에게 전한 회개의 내용입니다.

고작 이것 말하려고 나라를 시끄럽게 했습니다.

겨우 이것 말하려고 도끼가 나무뿌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평범한 ,

여벌 옷을 나누고 먹을 외에것은 나누라는 말을 하라고

독사의 자식이니 아브라함의 자식이 맞니 아니니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이야기를 지금 역대 왕들, 황제, 총독, 대제사장까지 언급하면서

거기에는 말씀이 없고 오직 빈들에만 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이 요구한 내용이 그냥 <상식>입니다.

 

 

<상식> 통하지 않는 시대에 <말씀> 임합니다.

상식을 회복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이 임하면 무슨 대단한 ,

놀라운 사명을 받으려합니다.

착각입니다.

오해입니다.

 

말씀이 임하는 곳에는

상식이 회복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상식이 회복되지 않는 곳에는

하나님의 회개,

하나님의 열매가 없습니다.

 

시대가 어둡다는 말은,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희귀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고

상식이 상식이 되지 않는 시대를 말합니다.

 

 

둘째, 세리들에게…

 

"이르되 부가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3:13)

 

< 가짐>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회개합니까?

< 가짐>입니다.

정해진 외에 가지려는 마음입니다.

 

무슨 신령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지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정직하지 않습니다.

속이고 악하게 됩니다.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가지기 위해서 영혼을 팔고

가지기 위해서 자신의 신분에 맞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셋째, 군인에게…

 

"군병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3:14)

 

가지기 위해 사는 이유는

<족한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빈들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무서우리 만큼 심판을 말합니다.

그런데 심판을 근거로 회개하라는 내용은 극히 상식입니다.

<나눔>이고,

< 가짐>입니다.

그리고 <족한 마음>입니다.

 

시대가 어둡다는 말은 한두 사람이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무리와 세리와 군인과 모든 사람이 상식이 아닌 삶을

상식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남는 ,

남는 음식이 집에서 썩어가도 나눌 모르고

관행을 따라 가지려는 것이 상식이 시대입니다.

족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직 가지기 위해 움켜 쥐는 것이 상식이 시대가

<어두운 시대>입니다.

 

가장 뚜렷한 어둠의 증상은

<목회자들의 상식>입니다.

 

시대가 어두워지는 가장 뚜렷한 증상은

먼저 목회자들이

<나누지 않고>

< 가지려고> 관행을 쫓아 살고

<족할 여기지 않고>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시대입니다.

 

말라기 시대와 신약시대는 사백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시대를 지나면서 선민 이스라엘이 잃은 것은

<하나님> 아니라

<상식>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나누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하나님을 알지만

가지려고 살고

하나님을 쫓지만

자족하지 못하는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시대가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전한 내용은

독사의 자식이라고 말하고

아브라함이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고

돌들을 들어 아브라함의 자식이 되게한다고하고

도끼자 나무 뿌리에 있고

열매 맺지 않으면 찍혀서 불에 던져진다는 무서운 말씀을 했습니다.

무슨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퍼붓는 말처럼 들입니다.

 

그런데 열매라는 !

회개라는 것이

너무도 상식적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입니다.

 

나누라는 말씀,
가지지 말라는 말씀,

자족 하라는 말씀이 다입니다.

 

나라가 나누지 않고

나라가 가지려고 관행을 행하고

나라가 자족은 온데간데 없고

더에 목숨을 거는 나라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무슨 죽을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상식에서 멀어진 삶이 죽을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야 마땅한 삶의 모습이 없어서

나무뿌리에 도끼가 있고

작은 상식을 지키지 않아서

뿌리째 뽑혀 속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죄가 죄가 아닙니다.

나누지 못하면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입니다.

죄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가지려고 관행 운운하며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악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족하지 못하고 하며 달려가는 삶을 말합니다.

 

 

<세례요한> 입니까?

 

오직 약대 털옷과 석청으로

가지지 않는 삶을 사는 곳에 말씀이 임합니다.

주어진 사명을 위해

상식을 이루기 위한 삶의 나눔과 자족을 실천하는 곳입니다.

 

<빈들>입니까?

 

그런 삶을 사는 세례요한이 <빈들> 있어서입니다.

세례요한이 궁정에 있으면 궁정에 말씀이 임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인 있는 곳이 말씀이 임하는 곳입니다.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고 예수님이 선포한 이유…

세례요한이 전한 복음의 삶을 고백하며 살아서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말씀이 임하고 예수 믿는 것을

무슨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신비와 비밀을 깨닫고

남들이 이루지 못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는 것으로

모든 믿는 자들이 그렇게 믿는 <상식 안에> 갇혀있습니다.

 

오늘 상식을 빈들에 임한 말씀으로 다시 정리해 주십니다.

 

<나누 십시오>

< 가지지 마십시오>

<자족 하십시오>

 

이것이 복음의 상식입니다.

시대가 어두운 것은 복음의 상식이 사라진 시대를 말합니다.

희망은 우리가 다시

나눌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지지 않기로 작정하고 관행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없는 자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나라는 멀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누는 삶의 현장,

당신이 가지지 않으려는 결단,

자족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상식이 회복된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 매일 빵이며 케?을 기증 받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빵을 기증받아 교회 고아와 과부들 그리고 어려운 성도들에게 나눕니다.

양을 돈으로 계산하면 한달에 천만원입니다.

 

먹어서 배부른 것이 아닙니다.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서 배부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배부른 것은 나눌 배가 부릅니다.

나누어야 진정한 배가 부릅니다.

 

성경은 나누라합니다.

그것이 상식이라합니다.

성경은 가지지 말라합니다.

그것이 복음이라 합니다.

성경은 자족하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라 합니다.

 

나누어보십시오.

배부를 것입니다.

가지지 않아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를 것입니다.

가진 것으로 감사하며 함께 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십시오.

천국을 보게 것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