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냉정 사이 (눅2:41-52)
형식을 초월하고
부모 형제 조직 그리고 형식을 초월하는 마음!
그 마음이 나의 본질입니다.
그것은 열정이라 말합니다.
나의 모든 형식을 초월하며 나아가는 마음입니다.
<열정>
예수님이 열 두살 되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다 집으로 돌아가야합니다.
가족들이 하루밤을 지나 찾아보니 예수님이 없습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율법선생들과 묻고 대답을 하고 계십니다.
자기를 몰라 주는 부모 밑에서 삼십년을 살아야합니다.
자신이 가진 생각과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예루살렘에서 얼마나 있고 싶고
나누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몰라줍니다.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는 끝까지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에 끝없이 향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뜨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놓치기 싫었습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부모님,
말이 통하지 않는 형제들 사이에서
누구도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하는 시골에서 살아야하는 답답함에
그는 말 없이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본심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열정입니다.
늘 그렇습니다.
형식을 초월하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뜨거운 마음!
그것이 바로 나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돈을 향하여 이런 열정을 보입니다.
누구도 보이지 않고 오직 돈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어떤 이는 공부에 학력에 목숨을 겁니다.
모든 희생을 하더라도 이루고 싶은 일입니다.
그래서 평생 공부만 하다 보내는 인생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자신의 명예에,
어떤 이는 도박에,
어떤 이는 음란에,
어떤 이는 쇼핑과 자신을 치장하는 것에 온 열정을 다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입니다.
머리가 아니라 내 마음이 끊임없이 향하는 곳!
그곳이 바로 나를 증명하는 곳입니다.
돈을 향하면
돈으로 나를 증명하려 하고
학위를 향하면 학위로 나를 증명하려 하고
세상이 알아주는 업적이면
그 업적으로 나를 증명하려합니다.
곧 증명하려는 곳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열정이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찌 여기 있느냐는 부모의 질문에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열정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품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증명하려 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부모,
자신의 생각과 말에 반응하지 못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일탈을 꿈꾼 것입니다.
<냉정>
사람은 누구나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이든,
세상 안이든 누구나 열정이 있습니다.
그 열정을 마음껏 한번 쏟아 놓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탈은 완전히 부모를 벗어나기 전까지입니다.
오늘 예루살렘에서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2:51)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예수님은 고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냉정을 찾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그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며
그 부모를 <섬기며> 지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정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빙자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소홀히 합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를 소홀히 하고
가장 가까운 형제를 소홀히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을 소홀히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말로 모든 것을 다 덮으려 합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을 봐야합니다.
사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곳까지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을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삼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삼 십 년을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섬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열정이라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소홀히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33년 중에 30년을 부모를 섬겼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순종과 섬김의 예를 다했습니다.
비록 내 말이 통하지 않고
비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줘도
비록 내 열정을 막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열정을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만 보지
지난 30년 동안 부모를 섬기고 순종했던 삶은 보지 못합니다.
오직 나의 열정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으로
주변 사람을 비판하지
내가 내 삶을 다해 섬기고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는 보지 못합니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공적인 나이 30을 기다렸다는 말도 신학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의 사명을 다해 달려가기 전에
평생을 다해 부모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고도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열정을 쏟아낼 곳을 향하여 달려가야합니다.
평생 청년들은,
평생 성도들은 그런 곳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 열정이 하나님이 주신 때에 시작이 되기 전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과 사람들에게
순종과 섬김의 관계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이라는 열정에 자신의 평생을 드리며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3년의 사역을 위해
30년의 시간을 부모와 지내며
그 시간 동안 섬김과 순종의 시간을 보냈음을 말입니다.
열정만 중요하고
냉정으로 인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
내가 돌봐야 하고
섬겨야 하고
챙겨야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30년 대 3 년의 시간은
공적 임무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을 최선을 다해 섬기는
십 분의 일의 역설의 시간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은 명절입니다.
열정만으로 돌아보지 못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냉정의 삶의 돌아봄과 섬김이 다시 회복되는 시간이길 기도합니다.
* 어머니입니다.
명절 음식을 먹으면 늘 아프리카에 있는 자녀들 생각에 목이 매인다고 말씀하십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다 주고도
더 줄 것이 없어 애태우시는 어머니입니다.
열정 때문에,
내 안에 뜨거운 사명 때문에
냉정으로만 보이는 가장 가까운 부모님,
가장 가까운 우리의 이웃이 보이지 않을까 늘 두렵습니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