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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define)>가 혼돈되면 <괴물>이 됩니다

<정의(define)>가 혼돈되면 <괴물>이 됩니다

 

 

 

 

 

 

 

 

 

 

 

 

 

<정의(define)> 혼돈되면 <괴물> 됩니다. (15:16-47)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교회가 무너지고 교회가 타락할 예수 믿는 <정의> 바뀝니다.

 

 

첫째, 자격의 <누림> 아니라 자격을 <내어줌> 입니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15:18)

 

 

재판을 받고 군인들이 조롱합니다.

왕이 입는 자색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하는 말은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조롱합니다.

갈대로 머리를 치고 침을 ?으며 꿇어 절하며 왕의 아들의 이름을 조롱으로 사용합니다.

 

자격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데라는 말로 세상에서 자격을 누리려합니다.

남들보다 잘되고

세상보다 높아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잘됨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격을 누림이 아니라

자신의 자격을 내어 놓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자격에 대한 정의 잘못되면 교회는 망합니다.

교회역사상 자격,

하나님이 주신 신분,

하나님의 주신 자리를 누림으로 여기고

세상에 자격과 누림을 지키기 위해 힘을 사용하고

권력을 지키려했는 모든 곳은 망했습니다.

 

교회가 망할때 나타나는 징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가는 길과 반대의 길로 가는 현상입니다.

첫번째가 자격은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은 내어놓는 것입니다.

 

자격을 핑계 조롱과 침뱉음과 거짓 경례에도

자격의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너무 목사로서의 자격을 많이 누리려합니다.

성도들에게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자격을 누리려합니다.

대접을 받는 자리에,

자격에 맞는 옷과

자리와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 그렇게 대우하지 않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데라고 도리어 화를 냅니다.

 

자격은 누림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자격은 내어줌입니다.

 

누림에서 내어줌이 사라지는 교회!

십자가의 길과 상관이 없습니다.

 

사역자 뿐만 아닙니다.

성도들은 더합니다.

평생 주여주여를 외치고 살지만 마음속에는 자격을 가지려는 본심입니다.

세상에서 있음을,

자격 있음을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증명하려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나의 자격을 누림이 아니라 내어줌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평생의 수고를 보상해 줄것인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십자가의 전제는 믿음입니다.

철저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십자가의 ,

자격에 대한 누림이 아니라 내어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격도 내어주고

자신의 옷도 제비 뽑도록 내어주는 것입니다.

옷을 내어준다는 것은 자격입니다.

자격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옷은 신분입니다.

신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집을 나간 탕자가 아버지 집에 왔을때 다시 옷을 입혔습니다.

요셉의 채색옷입니다.

아버지는 옷을 입혔고 세상은 옷을 벗겼습니다.

세상은 옷을 유혹하며 다시 보디발의 아내가 벗깁니다.

그것이 조롱이고 그것이 모함이고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지만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옷을 벗도록 내어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라고 옷을 입으려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격을 보여주기 위해 더더욱 채색옷을 입으려합니다.

하나님은 일부러 벗기 시는대

하나님은 옷을 벗어야 영광을 본다하시는대

우리는 더더욱 소리치며 아멘하며 옷을 입으려

자격을 자지려합니다.

그곳에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하실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옷을 벗어야합니다.

세상이 주는 자격의 옷을 벗어야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가죽옷입니다.

옷은 자격입니다.

내가 입은 세상의 누더기를 벗어야 새로운 세마포를 입습니다.

 

옷을 벗는 자격을 누림이 아니라 내어주어야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입습니다.

 

 

둘째, 십자가의 길은 나를 먼저 구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15:30)

 

 

세상이 소리를 치는 소리는 너를 먼저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죄의 시작은 내가 먼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나로 여깁니다.

나만 중요합니다.

배만 중요합니다.

사단이 유혹한 첫번째 시험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배를 먼저 채우라는 것입니다.

네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 가장 힘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를 구원하라는 소리입니다.

 

예수를 믿고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내가 먼저입니다.

배가 먼저입니다.

나를 먼저 구원하고 기적을 체험하고

세상에 자격에 맞는 누림과 가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믿고 십자가를 믿고 예수를 믿고 가는데

자기를 먼저 구원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제정신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정의 중에 하나는

나를 먼저 구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를 먼저 채우지 않는 것입니다.

 

삭개오에게 임한 구원,

기적을 경헌한 사람들도 경험하지 못한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신

예수님의 축복의 말의 이유는

자기만을 구원하기 위해 살았던,

자기 배만 중요한 인생이던 그가

다른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생명 같은 재산을 반이나 내어 놓는,

십자가의 정신의 삶을 알고 드리는 그의 삶입니다.

 

십자가는 믿고 내가 잘되어 내가 먼저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소리에

묵묵히 내가 아니라 다른 이의 구원과 삶과 아픔에 집중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대한 정의가

예수 믿고 내가 구원받고

예수 믿고 내가 복을 받고

예수 믿고 가정이 복을 받는 것으로만 인식을 하니

교회가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가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구원이 아니라

죽어가는 다른 이의 생명과 그들의 힘든 삶을 먼저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린 교회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외면을 당합니다.

 

 

셋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있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못해서 십자가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내려올 힘이 있는데

십자가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나의 구원은 얼마든지 증명할 있습니다.

세상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고

자격을 조롱할

얼마든지 내려올 힘이 있으나

그저 묵묵히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기 기도하셨을까요?

자신이 십자가를 벗어나고 지지 않을 능력이 없어서 기도했을까요?

아닙니다.

지지 않아도 ,
십자가에서 내려올 힘도 능력도 자격도 있지만

누림에 대한,

자격에 대한 <자발적 포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지는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구레네 시몬과 예수님이 다른 것은 군인데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웠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15:21)

 

 

십자가를 지는 인생도 가지 입니다.

<억지로> 지는 자와

<자발적>으로 지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격에 대한

<자발적 포기> 의한 십자가입니다.

자발적 포기가 없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자기를 먼저 배불리고

자기를 먼저 구원하고

자기를 먼저 챙기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를 포기하는 <자발적 포기의 기도>였습니다.

 

배를 먼저 채우기 위해

돌이 떡이 되게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나를 먼저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나보다 세상을,

나보다 형제를,

나보다 하나님이 품은

영혼에 대한

자격에 대한

구원에 대한

축복에 대한

<자발적 포기>입니다.

 

십자가의 영광은 <자발적 포기> 대한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자격에 대한 누림이 아니라 내어줌이 없고

다른 이는 관심이 없고 나만 중요하고

자발적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을 챙기는 삶에는

결코 십자가는 없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정의> 혼돈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모두 내어줌이 아니라 누림만 보고

다른 이는 안중에 없고 오직 , 축복만 바라보고

자발적 포기는 찾기 힘들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축복만 바라는 교회는

십자가의 길과 반대로 가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자격이 아니라

<내어주는 >이고

십자가는 내가 아니라

<다른 이의 >이며

십자가는 <자발적 포기> 통한 <하나님의 보상>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의 길을 살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는 교회는 거짓 선지자가 되고

거짓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정의!

우리 다시 정의 합시다.

 

당신에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 실로암 청년들과 MT 중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정의> 잘못된 기독교는 결국 <괴물> 됩니다.

 

세상도 욕하고 세상도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괴물>입니다.

 

시대를 바꿀 유일한 대안은 청년들입니다.

이들이 복음을 바로 정의하고

십자가를 바로 이해하고

예수님의 길을 바로 안다면

얼마든지 소망이 있는 !

 

<교회>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