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 주어야 할 시간에 칼을 드는 이유(막14:32-42)
좋은 말씀을 듣지 못해서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은 깨어 기도하지 않아서 드는 것입니다.
목자가 잡히기 전 목자가 제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깨어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14:38)
기도는 뭔가를 간구하는 것도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목자가 팔려 갈 때 목자가 양들에게 원한 것은 오직 <기도>입니다.
성도들은 좋은 말씀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성도들은 더 좋은 말씀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시험에 드는 것은 좋은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아서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세번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 세번의 깨어 기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기도 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시험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첫째,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잃는 다는 것은 <세상의 방법>으로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칼로 대항하고
칼로 대제사장의 귀를 쳐서 귀를 잘랐습니다.
문제는 귀가 잘린 그 종은 성령을 받은 베드로의 말에 절대 마음을 열지 않게 됩니다.
칼을 든 놈,
나의 귀를 자른 놈으로 낙인 찍힙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길로 믿고 자신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시험에 들면
세상의 방법으로 나아갑니다.
어떻게요?
<칼>로 말입니다.
시험이 든다는 것은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시험이 든다는 것은 좌절과 절망이 오기전에
이미 세상의 방법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내어 주어여할 시간에
<칼>로 맞서는 것이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고 함께 하였는데 오늘 나는 무기도 없이 너희에게 나를 주는데
너희는 나를 칼과 몽치를 가지고 강도를 잡는 것처럼 나를 대하느냐고 말입니다.
시험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낙심하고 절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교회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내 인생의 일에 대하여
세상적인 방법으로 칼을 드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과 같아 지는 것!
그것이 <시험>입니다.
둘째, 그래서 마귀는 시험할 때 세상의 방법으로 살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방법이 더 좋은 길로 착각합니다.
주일을 어기고
십일조를 내지 않고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험하는 자는 늘 그렇게 찾아옵니다.
돌이 떡이 되게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고
높은 성을 주는 것으로 말입니다.
다 세상의 방법입니다.
시험은 이런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배는 상관이 없고 나의 배가 중요하고
세상에 나의 탁월함을 보여주고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입니다.
시험은 다른 사람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고
나의 탁월함을 세상에 보여주려는 마음이고
세상 사람보다 더 높아지려는 마음입니다.
그 모든 중심에 다 내가 있습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라는 마음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존귀하고
내가 세상보다 더 탁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상보다 더 높고 위대하고 잘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시험입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내어주고
세상을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어야 할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기적을 요구하고
하나님의 천사를 요구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빙자해 찾아오는 시험,
세상보다 내가 중요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고
세상보다 더 잘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 시험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그런 세상에 자신이 먼저가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을 먼저 생각합니다.
깨어 기도하면
내 배보다 더 굶주린 영혼이 보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내가 높아지는 것보다 다른 이를 더 높이는 마음이 생깁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스승을 살리겠다고 칼을 들게 됩니다.
기도 하지 않으면
목사의 편이냐 아니냐로 교회가 갈라지게 됩니다.
기도 하지 않으면
다른 교회보다 더 잘되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살아야 하고
다른 아이보다 내 아이가 더 높아져야 하는 마음만 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기도 하지 않는 가롯유다는
시험에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려합니다.
기도 하지 않은 베드로는
그렇게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도 결정적일때 칼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귀를 잘랐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나의 약함은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약점과 허물만 보이고 심판하고 정죄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그들의 약함이 내가 채워야 할 사명으로 보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그들의 허물이 내가 채워야할 나의 숙제로 보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준 것이 아니라 더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면
절망의 교회가 희망의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말입니다.
좋은 말씀도 많고
좋은 말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깨어 기도 한다는 말은 듣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최고의 말씀을 많이 들은 제자들도 가장 어려운 것!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듣는 교회도
깨어 기도함이 없으면 시험 투성이 입니다.
좋은 목자를 위해 기도도 해야하지만
깨어 기도하는 기도의 동산도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목자를 만나고 좋은 교회를 만나도
깨어 기도 하지 못하는 인생!
<평생 시험>입니다.
깨어 기도하는 인생!
<평생 은혜>입니다.
* 좋은 목사, 좋은 말씀을 목숨 걸고 바라지만
교회가 시험이 드는 것은
깨어 기도 하지 않아서입니다.
좋은 때는 모르지만 결정적인 시험의 순간에
우리는 지키는 것은 깨어 기도한 분량입니다.
온 교회들이 다 좋은 말씀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좋은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는 성도가 적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문제가 생길 때 교회를 지키는 것은
성도들의 깨어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참 좋은 교회는 좋을 때 표시 나는 것이 아니라
시험거리의 문제 앞에서 깨어 기도했느냐로 결정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핑계를 들으시지 않고
깨어 기도했느냐를 질문하십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복음>을 들어야 할 순간
<칼>을 들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시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