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싸운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입니다. (막11:1-10)
세상에서 우리가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입니다.
내 소리를 없애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방법은 더더욱 내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내 경험과 내 학력과 내 힘과 능력을 이용해 무언의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 뜨리는 방법>
가나안에서 만난 철통 같은 첫 번째 성이 여리고 성 입니다. 그 성을 정복하는 방법에는 세 단계의 길이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단계: 신을 벗는 것입니다.
세번째 단계: 소리를 내지 않고 성을 도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나안의 철통 같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방법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길을 우리의 무기를 준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무기가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길은 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소리를 내려 합니다.
내 논리를 내 려합니다.
더 논리적이고 더 합리적이고 더 기술과 힘을 가지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사람을 판단합니다.
이 사람은 덜 논리적이고
이 사람은 덜 기술적이고
이 사람은 뭐가 부족하고…
늘 그런식입니다.
주님은 이 엄청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데 자기의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소리는 자기의 방법과 자기의 어떤 것을 말합니다.
아무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소리를 내지 말고 하루에 한번만 돌고 마지막에 일 곱번을 돌라 하십니다.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승리를 위한 자기의 기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전쟁 전에 군대 장관이 하늘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요구한 것이 오직 한가지 입니다.
<신을 벗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신을 신으려 합니다.
승리를 위한 우리의 길과 방법과 식을 취하려 합니다.
그것이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종이라고 하면서 늘 내 방법과 길가 식을 적용합니다.
아닙니다. 신을 벗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내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님의 소리,
제사장이 부는 나팔소리에 함께 소리 지르는 소리입니다.
제사장이 부는 나팔소리는 찬양의 소리입니다.
오직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방법>
예수님이 예루살렘이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신을 벗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방법과 길과 식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기의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하나님의 길과 법과 식을 따르십니다.
자신의 신을 벗고 그저 하나님의 길과 방법을 따르십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방법 그저 묵묵히 성을 돌아보십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11:11)
그러나 자기의 신을 벗고 오는 자,
자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오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사람들은 소리를 지릅니다.
호산나 호산나 소리를 지릅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소리와
세상을 무너뜨린 소리는 같은 소리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입니다.
내 소리는 없애고
내 신을 벗고 내는 소리는 찬양의 소리입니다.
그 소리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세상은 무너집니다.
여리고 성을 이기려는 내 작전과 내 전략과 내 방법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을 벗는 것입니다.
전쟁 전에 하나님이 주문 하신 것은 오직 <신을 벗고>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알리려는 사람은 늘 소리가 많습니다.
누가 큰가에 목적이 있는 사람은 늘 소리가 많습니다.
더 많은 신을 준비합니다.
더 많은 방법을 준비합니다.
더 많은 전략과 작전에 내 인생은 늘 바쁩니다.
여호수아와 예수님은 그 엄청난 전쟁 준비가 너무 간단합니다.
그냥 신을 벗는 것입니다.
그냥 나귀는 타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것은 내 전략과 전술과 기술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나귀는 타는 것은 내 힘과 능력과 높아짐이 아니니라
그냥 낮고 낮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종의 모습입니다.
신을 벗는 것이 종이 됩니다.
낮은 자리에 서는 것이 종이 됩니다.
예수를 믿고 우리는 더 각오를 다집니다.
세상을 이겨야지 그래서 더 신을 조여신고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 힘을 다합니다.
<싸움의 본질>
우리는 싸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이기는 것이 싸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부터가 문제입니다.
싸움의 본질은 세상이 아닙니다.
전쟁의 주체는 내가 아닙니다.
전쟁의 주체가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을 신으려 합니다.
더 준비하고 더 좋은 전략 더 좋은 전술 더 좋은 무기가 필요하고
그것이 준비합니다. 아닙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을 벗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귀를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소리를 내지 않고 그냥 여리고 성을 도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그저 호산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끝을 맺습니다.
함께 지르는,
다 함께 소리 지르는 찬양의 소리가 하나님의 전쟁을 완성합니다.
싸움의 본질을 기억해야 합니다.
싸움의 본질은 <나>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여리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이기지 못해서 세상을 주지 않을 뿐 입니다.
하나님의 싸움은 세상이 아닙니다.
나입니다.
야곱이 싸운 것은 형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밤을 새고 환골뼈가 부러지며 씨름한 것은
적으로 보이는 형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에서와 싸운 것이 아니라
야곱과 싸운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앞에 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싸운 것은
가나안의 사람이 아니라
먼저 그들 자신입니다.
<자기의 소리>를 참아야 합니다.
그것이 싸움의 본질입니다.
<자기의 신>을 신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합니다.
그것이 싸움의 본질입니다.
<나귀에서 내려 오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합니다.
그것이 싸움의 본질입니다.
내가 내 소리를 내지 않고
내가 내 신을 신지 않고
내가 나귀에서 내려 오지만 않으면
세상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맞은 세상이 한 말은 호산나입니다.
야곱이 만난 것은 형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33:10)
내 소리를 멈추어야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내 신을 벗어야 하나님의 길을 만나게 됩니다.
나귀를 타야 하나님의 영광이 보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여리고도 세상도 아닙니다.
싸움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다만 그 하나님이 일하도록 내 소리를 없애고
내 신을 벗고
나귀를 탈수 있는 <나>입니다.
야곱이 바뀌어야 에서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로 보입니다.
여호수아가 변해야 하늘의 해와 달이 하나님의 역사로 바뀝니다.
세상을 이기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싸우는 것은 야곱이지 에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세상과 싸우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소리를 내려는 나,
하나님은 내 신을 신으려는 나,
나귀를 타지 않으려는 나와 싸우시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나를 하나님께 순복 하면 세상은 나를 향해 머리를 숙입니다.
하나님의 싸움!
<나>입니다.
* 27년의 옥살이에 그가 이긴 것은 백인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이긴 것은 <하나님의 순복>입니다.
로빈 아일랜드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의 모습이 훨씬 더 건강해 보였습니다.
비결이 뭐냐 물었습니다.
<감사>라 했습니다.
그가 싸운 것은 백인 정부가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입니다.
자신의 삶과 싸움의 본질이 세상이 아니라 자신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과 싸우지 않고 자신과 싸웠습니다.
정당한 싸움,
이유 있는 항변,
자유를 향한 전쟁에 그가 이긴 것은 그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었습니다.
얼마나 <잘 싸울 것인가>가 아닙니다.
얼마나 <잘 죽을 것인가> 입니다.
내 소리를 내지 않고
내 신을 신지 않고
하나님의 길과 법과 식에 자신이 얼마나 잘 죽을 것인가 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자신의 신을 신고
자신의 나귀를 던져버리고 달려가는 곳에는 예수님의 눈물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싸우신 것!
세상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맨발
하나님의 나귀를 타지 않으려는 <나>입니다.
싸워야 할 세상이 강할 수로
그 강한 세상을 이기려는 강한 나를 먼저 이겨야합니다.
온 세상이 머리를 숙이는 이 사람이 이긴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내어준
자신 <만델라>입니다.
자기를 이긴 그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빛나지만
하늘의 그 자리에서 더더욱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