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곳에 생명이 있다 (막6:30-44)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은 지금 내 머리와 내 가슴이 싸우는 전쟁입니다.
세상이 발달하고 더 높은 수준의 사회가 될 수록 사람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머리입니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더 발전한 곳일수록 가슴이 움직이는 원리보다 머리가 움직이는 대로 살아가도록 종용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발전할수록 가슴속의 허전함과 허무함은 더 깊어지고 사무치게 됩니다.
<머리와 가슴의 싸움>
예수님이 사신 원리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내 심장에서 들리는 소리, 내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순종하셨습니다.
모든 사역의 원동력은 <내면의 소리>입니다.
파송한 제자들이 돌아오고 예수님도 잠시 쉴 틈이 없어 "잠깐 쉬자"라고 하시고 배를 타고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먼저 알고 찾아온 수 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남자만 오 천명입니다. 그 모습을 보자 예수님의 마음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면의 창자에서 끓는 소리, 가슴에서 올리는 소리는 <불쌍히 여김>이었습니다.
머리는 좀 쉬자는 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내 머리, 내 이론은 반대로 작동을 합니다. 사회가 발달하는 것에 초점을 둔 곳에는 늘 머리를 따르라고 합니다. 내 머리가 움직이는 대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머리로 계산하고 머리로 판단하고 머리로 사는 곳이 더 나은 사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머리가 작동해야 할 시간에 가슴이 작동합니다.
세상에서 더 잘 사는 사람은 가슴을 죽이고, 가슴에서 들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이론과 머리로 그렇게 살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가슴이 뛰는 곳에 생명이 있다>
내 가슴이 뛰는 곳을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머리가 움직이는 곳에는 편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뛰는 곳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슴이 뛴 것,
내면의 창자가 소리를 지른 것은 수 많은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음을 가슴이 느끼셔서 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찾아가십니다. 쉬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몸이 지칠대로 지쳐서 잠시 쉬자고 먼저 말씀하신 예수님인데 가슴이 원하는 대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가슴 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설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 머리가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 가슴이 뛰며
내 영혼이 소리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은혜가 있었고 그리고 오병이어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은 <내 가슴이 뛰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남자만 오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어디에서요?
예수님의 가슴이 움직인 곳에서 말입니다.
머리는 쉬어야 하는데 가슴은 뛰고 있는 곳 말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이론에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머리가 시키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내 내면에서 말하는
내 가슴에서 말하는 소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곳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일이 일어납니다.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세대>
세상의 말보다 내 가슴속에서 말하는 소리가 하나님의 일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며 흙인 사람이 영생과 생명을 얻은 비밀은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이 우리의 가슴속 마음에 거하시며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소리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성령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시대입니다.
내 가슴속에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게 시대는 흘러 갑니다.
성령의 자리를 게임이 차지하고 SNS가 차지하고
내면의 소리 대신 사람들의 순간 순간 보내는 메시지와 글들이 대신합니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이미 다른 것들이 그 시간과 기회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일이 바쁜 시대인데 더더욱 잠시 잠간 성령의 소리를 들으려 할 때 그 공간을 내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과 SNS들로 채워버립니다. 들을래야 들을 수 없는 구조로 사회는 발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신 삶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따르는 것입니다.
양들의 삶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대를 정의 하신 것은 간단합니다.
<듣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성경적 표현으로 <목자 없는 양>입니다.
목자가 없다는 말은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양은 살았으나 죽은 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사>에 이어 하신 일은 가르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6:34)
목자 없는 양이기에 듣지 못하여 목자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양에게 필요한 것은 가슴에서 들리는 음성이다>
목자 없는 양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목자 없는 양에게 필요한 것은 <음성>입니다.
가슴을 울리는 내면의 소리입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를 정확히 표현하시고
정확한 처방을 하십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가슴을 울리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선물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소리>입니다.
요단강에서, 변화산에서 하나님이 주셨던 선물은 하늘로부터 소리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은 이 소리를 듣고 사는 것입니다.
양에게 끝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말씀하는 소리 말입니다.
가슴에서 말씀하시며
내 내장에서 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대입니다.
사람들의 수백 수천의 소리보다
하늘에서 들리는 내면의 소리 <한 마디>에 인생이 결정됩니다.
가슴에서 들리는 이 한마디가 희귀한 시대입니다.
그 희귀한 시대에 예수님은 자신의 음성으로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34)
목자 없는 양들에게 필요한 것은 편안한 집과 안전한 들판이 아니라 <목자의 음성>입니다.
내 가슴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 음성을 듣기 위해 따로 기도하고 홀로 있어야 합니다.
내면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내 인생을 다 던져도 좋은 날마다의 가슴 뛰는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곳에 가슴 뛸 만큼 행복한 인생이 있습니다.
양들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목자의 음성이 있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오늘 자신의 가슴에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소리를 듣고 섰습니다.
그것은 목자 없는 양들의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슴속에 들리는 소리에
내 인생의 천직이 있습니다.
가슴속에 들리는 소리에
내 인생을 걸 수 있는 열정이 있습니다.
머리를 따르지 말고 가슴의 소리를 따르십시오.
예수님이 사신 방법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입니다.
우리를 지치지 않게 만드는 소리,
내 가슴이 뛰는 소리입니다.
* 기계설계를 전공했습니다.
설계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누구보다 잘 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추천으로 연구소를 들어갔습니다.
누구보다 잘했고 인정받았고 좋았는데 내 머리는 이 일인데
내 가슴은 아니었습니다.
머리는 내가 잘하는 이 일을 해야 하고 당장 직장까지 다니는데
내 가슴은 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말씀하며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사는 일이었습니다.
직장을 다닌지 삼 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나왔습니다.
추천해주신 교수님께도
나를 귀하게 여겨주신 분들께서 죄송했지만
저는 내 내면의 소리를 듣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순탄하게 풀렸냐구요?
아닙니다.
죽을만큼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후회한적이 없습니다.
죽을만큼 고생할수록 내 가슴속에서 드는 생각은
더더욱 이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까지 달려가고 있습니다.
머리는 아니데 가슴이 뛰는 곳!
그곳에 나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
그것이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소리입니다.
발방크교회입니다.
지난 의료팀이 주고 가신 구충제를 아이들에게 먹이고 있습니다.
구충제라고는 말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아이들 숫자가 많은데 구충제는 모자라서 5살부터 70명의 아이들에게 복용을 시켰습니다.
늘 그렇지만 이런 일들이 행복합니다.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그들에게 뭔가 나눠주고 베풀며 함께 산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큰 일이 아니어도
날마다 살아가는 순간 순간 내 안에 가슴이 말하는 소리를 따르십시오.
작은 것은 나누고,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고
그렇게 가슴이 원하는 소리를 따르면 어느 순간 행복하게 사는 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사람이 언제 행복한지…
가슴의 소리를 따르십시오.
행복은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