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 (막4:1-23)
뭔가를 해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밭은 그냥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는 땅입니다.
그것이 좋은 땅입니다.
다른 모든 땅인 길 가,
돌밭,
가시떨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씨가 자라고자 하는데
땅이 제한을 하는 경우입니다.
좋은 밭은 그냥 씨가 자라길 원하는 대로 내어주는 땅입니다.
그것이 좋은 밭입니다.
예수님이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보아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죄 사람을 얻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4:12)
밭의 비유의 핵심은 깨닫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깨달으면 내가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씨가 알아서 자라는 것입니다.
알아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내 열매,
내 영광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일부러 깨닫지 못하게 하셨고
오직 깨닫기를 원하는 자에게만 깨닫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깨닫는 자는 오직 말씀이 스스로 일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스스로> 일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고 말씀이 생명을 살리고
말씀이 생기를 움직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자리지 못하게 하는 것에만 영향을 받습니다.
네 가지 밭에서 세가지는 자라지 못하는 조건을 가졌고
좋은 밭은 오직 씨가 자라고자 하는 대로 내어주는 밭입니다.
깨달았는데 말씀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씨앗이 싹을 터서 스스로 자라가는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이 비밀입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압니다.
그냥 자라게 두는 것입니다.
자라게 뭔가를 막지만 않으면 씨는 싹을 트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밭이 좋은 밭입니까?
깨닫는 밭입니다.
깨닫는 밭이 좋은 밭입니다.
그럼 깨달은 것을 제한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 씨앗이
말씀이 가고자 하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왜 열매가 맺히지 않나?
말씀을 깨닫고 스스로 제한해서입니다.
말씀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씨는 다 같은 씨입니다.
밭이 문제입니다.
제한하고
조정하고
가두려는 밭이 문제입니다.
밭이 하는 일은 그냥 씨가 자라는 대로 제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늘 받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한국교회처럼 말씀을 잘 깨닫는 나라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말씀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제한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말씀이 일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깨닫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는 자리에 목숨 걸로 서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을 풀어줌으로 그들이 말씀을 깨닫고 알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깨닫게 하는 자리에 목숨처럼 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신 이유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직 선택된 자들,
부름 받은 자들만 깨닫게 되는 은혜입니다.
깨달았는데 제한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찾아와서 내게 말씀하시는 대로 그냥 가야 합니다.
마음이 오면 그냥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힘입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말씀을 가게 하십시오.
말씀이 일하게 하십시오.
말씀이 알아서 자랍니다.
말씀이 알아서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이 생명을 살리고
말씀이 죽어가는 곳에 기적의 은혜를 불러옵니다.
밭이 하는 일은 오직 씨를 <품는 일>입니다.
그냥 품고 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어디까지 가는지 그냥 지켜보는 일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야 합니다.
씨가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뻗어 나간다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말씀이 스스로 일합니다.
말씀이 일합니다.
말씀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한 말씀이 땅에 떨어지면 그냥 그 말씀이 가게 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강한 바위도 뚫어 내는 것이 씨의 힘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강해도 말씀이 바다에 길을 내고
아무리 세상이 힘이 세더라도 강을 멈추게 하고 태양을 멈추게 합니다.
그것이 말씀입니다.
그것이 말씀의 힘입니다.
말씀이 깨달아지면 세상이 바뀌니까
영혼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니까
예수님은 변화 받기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깨달아지면 변하고
깨달아지면 말씀 자체가 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을 아십니다.
그래서 원하는 자들에게만 깨닫게 하셨습니다.
말씀이 깨달아 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가게 하십시오.
말씀이 일하게 하십시오.
말씀,
천지를 창조한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스스로 일하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 은혜가 내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축복의 강가에서
시절을 좇아 과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 발방크교회입니다.
양철교회를 짓기 전에 여기저기 예배처소를 옮기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교회의 역사는 그렇습니다.
핸드리나에서 시작된 교회입니다.
교회 부지를 받을 수 없어서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다
장소를 옮겨 예배를 드렸고
그곳에서 다시 이곳 발방크로 옮겼습니다.
창고에서 예배를 드리다 부지를 받고 양철을 지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데 4번의 이동 후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인도하신 교회이기에 어떻게 은혜를 주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 양철교회를 잘 짓고 비록 양철이지만 사택도 지었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지낸 교회에 하나님의 시간이 더디 걸려도 더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양철교회를 짓기 전에는 200명 가까이 모이던 교회가
교회부지를 받고 걸어서 10-20분 정도 떨어지니 그때 그 성도들은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 해야 하는 흑인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또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 오늘은 100여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책도 없고 신앙생활이 뭔지
교회 생활이 뭔지도 예수의 의미도 모르고 아멘의 의미도 모릅니다.
거의 초신자들입니다.
늘 그렇습니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데 온 땀과 진을 다 빼야 합니다.
집에서 오가는 거리가 하루에 4-5시간을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또 목이 터져라 사역을 해야 합니다.
능력이 없으니 소리라도 질러야 합니다.
안식년 나가기 전 발방크와 워터발 교회 기초를 놓는다고 5-6개월을 일주일에 몇 번을 다녔더니
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그 후유증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교회는 사역자의 땀과 피와 생명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말입니다.
말씀이 일합니다.
말씀이 여기에 있으니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 같은 이곳에
말씀의 씨가 뿌려졌으니 어떻게 일하실지 또 기대합니다.
드롱콥도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주셨고 그래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몬스트로노스도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음성을 주셔서 그래서 순종했습니다.
발방크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또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모든 교회도 그랬습니다.
말씀이 가게 하시니
그저 땀과 피와 진액을 쏟아 말씀이 일하도록
좋은 밭으로 그저 묵묵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역자 한사람 한사람 내 생명을 잘라내며 세워야 합니다.
대충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잘하겠지 방심하면 언제라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교회는 흑인교회라도 대충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같은 교회입니다.
같은 생명체입니다.
생명을
땀을
피를 쏟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입니다.
말씀이 여기 있으니 그저 묵묵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한 사역자 한 교회가
이제는 이십 여명의 사역자로
이제는 십 여 개의 교회로 말씀이 하신 일을 봅니다.
말씀이 말입니다.
말씀이…
그저 말씀이 하시는 일을 목격할 뿐입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감격입니다.
날마다 가슴 떨리는 두려움에 살아갑니다.
한 사람의 사역자를 세운 다는 것!
심장 떨리는 아픔입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에 목사로 세운다는 것!
피를 쏟아내는 인내와 사랑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수 많은 강을 건너고 산을 건너
아름다운 사역자로 세워지는 열매를 보는 감격이 더 크기에
그냥 묵묵히 여기에 서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두려움을 안고 말입니다.
교회는 사역자의 심장으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역자의 목숨으로 세워집니다.
피와 땀으로 진액을 쏟아야 세워집니다.
말씀의 씨앗을 뿌림으로 말미암아서 말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오늘도 두려움입니다.
말씀이 앞서 가시니 그저 믿음으로 맡기고 가는 것입니다.
감격과 두려움!
늘 내 안에 함께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