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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습니까?

미쳤습니까?

 

 

 

 

 

 

 

 

미쳤습니까? (3:13-35)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시몬은 베드로로 야고보와 요한은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라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별명을 붙인 것을 기록함과 동시에 마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부르는지 함께 기록합니다. 

 

첫째, 더러운 귀신들린 자들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3:11)

 

귀신도 알아보는 고백을 하기 위해 베드로는 몇 년이 걸렸습니다. 고백을 하고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고백을 보자마자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신앙이 좋습니까? 귀신이 엄청 신앙이 좋아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육체의 강을 지나버리면 우리에게 신앙의 고백이 없습니다. 육체로 있을 우리는 고백을 해야합니다. 육체를 벗어나면 이미 기회가 끝이 납니다. 육체로 있을 우리는 고백으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를 고백하고 살아야합니다.

 

 

둘째, 예수의 친족들이 <미쳤다> 말합니다.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3:21)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어도 영적인 세계를 알리 만무합니다.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과 살던 친척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미친 사람>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미치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미쳤단 소리를 혹시 들었습니까? 예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세상 상식으로 이해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미쳤다는 말은 한마디로 저는 그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는 > 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는 삶을 살면 반드시 세상은 우리를 미쳤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논리와 생각으로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우리는 살기 때문입니다.

 

 

셋째, 서기관들은 사탄이라고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3:22)

 

율법적으로 가장 아는 서기관들은 율법만을 아니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알세불 블레셋 에그론에서 숭배하던 파리의 신입니다. 예수님을 파리의 신을 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눈멀고 벙어리된 자를 고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이 사탄에 붙잡혔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해석해 내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귀신이 들려서 사는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그것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설수 없고 망하고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나라가 업고 집도 스스로 분쟁하면 집도 없다는 것입니다. 결코 스스로 분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 들렸다 말하는 자들을 향하여 성령을 모독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다른 모든 것은 사함을 얻지만 성령을 모독하면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3:29)

 

우리는 여기서 성령을 생각해 봐야합니다.

 

첫째, 성령을 모독하면 <영원한> 죄가 되는가? 영원이라는 단어를 쓰시는가 입니다.

 

여기서 사용한 <영원> 주기도문에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나옵나이다' 에서 나오는 영원과 같은 말입니다. 한마디로 성령을 모독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하듯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영원한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그들을 향하여 엄청나게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면 영원한 죄로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성령의 >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는 일을 그들에게 한마디로 정의 하십니다. <성령의 >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 성령이 주관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빠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살짝 성령 뒤로 숨고 계십니다. 성령의 얼굴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더러운 귀신 들렸다고 말해서입니다.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3:30)

 

우리는 귀신보다 못합니다. 귀신도 알아보는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는 귀신이 들렸다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답답하신 것입니다. 귀신도 알아보는 자신을 사람들은 알아 보지 못할 아니라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아직 오지도 않은 성령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그럼 성령의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미쳤단 소리를 듣고 귀신 들렸단 소리를 들으니 가족들이 걱정이 되어 예수님을 부르러 왔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가 당신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결정적으로 한마디를 하십니다. 누가 어머니고 동생들이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러 않은 무리들을 보며 이들이 어머니고 형제라는 기절할 말씀을 하십니다.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3:34)

 

어머니와 동생들이 왔는데 그들이 아니라 둘러 앉은 무리들을 보시며 이들이 어머니와 동생들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앞에 두고 무리를 향하여 어머니와 형제들을 보라고 하니 말입니다.

 

이렇게 말할까요? 성령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무리를 향하여 어머니고 형제라고 말할까요? 다음 구절에서 답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5)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이유는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이기도하지만 그분은 철저히 성령의 뜻을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다른 것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 <하나님의 > 행하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며 하나라는 말입니다.

 

 

세상은 성령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을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귀신 들린 자처럼 보입니다. 왜요? 성령의 일하심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이 보기에 미쳐보입니다. 세상이 보기에 귀신들린것처럼 느껴집니다.

 

왜요?

 

성령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아서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서입니다.

성령은 철저히 자기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희생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얼굴이 없습니다.

철저히 예수님의 영광 뒤에 숨어 계십니다.

 

얼굴 없는 영광으로 사는 ,

그것이 세상 보기에 미쳐보입니다.

이해할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나의 어머니고 나의 동생이라고 말씀합니까?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 뒤에 숨으십니다.

성령은 자기의 얼굴이 없이 예수님의 영광에 숨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 뒤에 숨으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예수님께 모든 권한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삼위 하나님이 사시는 방법입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성령을 드러내고

자기의 말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

그것이 천국입니다.

 

세상은 천국을 사는 사람을 미쳤다 말합니다.

세상은 천국을 사는 사람을 귀신 들렸다 말합니다.

귀신도 알아보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면서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살아갑니다.

논리를 말하고 이성을 말하고 합리를 말하면서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는 세상입니다.

오직 자기만 남는 세상입니다.

자기 뜻만 중요하고

자기 길만 중요하고

자기 인생만 중요한 사람은 귀신도 아는 그분을

결코 알아보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성령을 모독하지 않고 훼방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 <행하는 >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는 >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는 삶은 세상으로부터 미쳤단 소리를 듣는 삶입니다.

내가 손해 보고

내어 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사는 삶을 미쳤다 말합니다.

세상은 이렇게 사는 삶을 귀신 들렸다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미치지도 귀신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 뿐입니다.

 

행하지 않는 자는 귀신과 같은 자입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행할 없는 자입니다.

행하지 않는 것과 귀신과 같은 것입니다.

 

귀신과 같은 말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귀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는 능력은 있습니다.

그러나 행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행하지 못하는 ,

나를 귀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살았으나 귀신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알지만 평생 귀신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귀신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성령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면

귀신처럼 살다 귀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님의 아들을 안다고 예수님의 어머니 형제가 되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되고 형제가 되는 것은

오직 <행하는 >입니다.

 

귀신도 아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와 귀신이 다른 것은

귀신은 알지만 행하지 못하고

우리는 아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어서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세상은 우리를 미쳤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세상은 말도 된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렇게 사셨고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서

나의 어머니 나의 형제가 되라고 하십니다.

 

성령으로 사는 !

내가 아는 것을 행하는 삶입니다.
 

 

 *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 6,7구역이 발방크교회(VAALBANK) 다녀갔습니다.

 

이번 구역은 특별히 조선족구역(6)구역) 오셨습니다.

조선족이신데 남아공에 오셔서 엄청난 어려운 삶을 사셨던 분들입니다.

남아공에서 사시면서 많은 인생의 어려움으로 사신 분들입니다.

예수를 믿고 목숨을 걸고 사셨습니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중국 사람도 아니고 조선족들입니다.

저들의 삶의 비참함은 이루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사셨고 예수를 믿으셨고

선교지를 위해 건축하는데 헌금도 해주셨던 분들입니다.

오셔서 작고 초라한 저들에게 선물도 준비하시고

음식도 나누어 주시고 집집마다 다니면 자신이 만난 복음을 전하며

저들에게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자기들 살기도 바쁜데 하던 사업 내려놓고 오늘 선교지에 오셔서 힘을 더해주십니다.

같은 조선족들이 보기에 미쳤다 말할 것입니다.

같이 고생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고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는지 아는 자들입니다.

아는 지식을 삶으로 <행하는 > 계십니다.

 

우리는 귀신과 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알고 고백하는 !

베드로는 수년을 따라 다녀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귀신을 보자마자 알아보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고백은 아는 것을 지나

행하는 곳까지 가야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세상은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미쳤습니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이들이 예수님의 가족이고 형제인 것을 나는 믿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5)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