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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권세로 겨우 이것 하라 하십니까? 1,2

하늘과 땅의 권세로 겨우 이것 하라 하십니까? 1,2

 

 

 

 

 

 

 

 

 

 

 

하늘과 땅의 권세로 겨우 이것 하라 하십니까? 1,2 (28:18-20)

 

세상은 거짓과 진실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부활을 돈으로 거짓이라고 말하는 자들과,

부활을 자들의 싸움입니다.

그것은 군병들 그리고 대제사장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만나지만 그들 중에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28:17)

 

 

우리는 봐도 의심하고 보지 않아도 의심합니다.

보지 않으면 보지 않아서 의심하고

보면 진짜인지 의심합니다.

세상은 거짓과 진실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이상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첫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면

거짓을 말하고 자신을 지키고 증명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면 되는데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받은 권세로 거짓을 말하는 자들에게 다시 주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권세를 그들에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말하는 자들을 언급하지 않고

다만 <가라> 하십니다.

 

우리는 거짓을 말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진실을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당신들이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합니다.

주님은 부활하고 ,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고 하면 복음이 훨씬 효과적으로 전파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아닙니다.

시작하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세상은 봐도 의심하고 봐도 의심합니다.

주님은 다만 보나 보지 않으나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과만 하십니다.

 

그래서 안보고 믿는 자는 보고도 믿고

안보고 믿는 자는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그것이 의심의 영입니다.

 

거짓과 진실의 싸움에 우리의 힘을 너무 쏟아서는 안됩니다.

거짓과 진실의 전쟁터로 가지 말고 주님은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둘째, 하늘의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이 직접 하지 않고 우리를 가라 하십니다.

 

주님은 하늘로 가시고 우리를 보고 가라고 하십니까?

이유는 오직 하나 입니다.

<생기>입니다.

 

주님이 하늘 가지 않고 여기 있으면 문제가 뭡니까?

주님은 영웅이 되고 세상에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입니다.

 

영생의 회복,

영원의 회복은 오직 생기가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합니다.

주님이 가셔야 하고

주님이 모든 민족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이 가셔야

성령이신 생기가 우리 안에 오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고 우리를 가라 하시는 이유는

주님이 하늘로 가셔야 하고

성령이 생기로 우리 안에 오셔서

잃어버린 영생과 생명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보았다고 그들의 인생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활의 약발(?) 오순절 성령이 임하는 까지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만나고 오직 한가지를 내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까지 기도하는 힘입니다.

그것이 부활을 목격한 자들의 힘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목격했다고 증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군병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증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거짓 증인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목숨을 거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세상의 전부를 버리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부활을 보아서일까요?

주님을 만나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진짜 복음에 목숨을 거는 것은

안에 찾아온 영생입니다. 

안에 찾아온 창세 가졌던 하나님의 생기입니다.

생기가,

성령이,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가 안에 경험되어서 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신비입니다.

신비의 비밀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그분의 사람들에게 생기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권세가 아닙니다.

성령의 생기가 사람에게 생기로 들어가니

사람이 잃어버린 영생의 감각,

잃어버렸던 생수의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권세가 목이 마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리가 보입니다.

아닙니다.

권세를 받아서가 아닙니다.

높아져서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미련한 말을 통해 성령께서 생기로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복음입니다.

 

 

셋째,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 겨우 <사람>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알아서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고 가라 하십니다.

왜요?

 

주님이 하늘과 땅의 권세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주님이 잃은 것은 사람의 <영생>입니다.

사람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사람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만드실 직접 일대일로 만드셨습니다.

인격적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말씀을 잃은 인간이 다시 영원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말씀>으로 <생기> 들어갑니다.

 

말씀 만이 잃었던 생기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물질로,

세상의 어떤 것으로 생기를 넣는 일이 가능하다면

단번에 일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가라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라하십니다.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십니다.

 

주님이 없는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입니다.

 

잔칫집에 음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잔치할 집이 없고 각양 아름다운 보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잔치에 참여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너희가 가서 새로운 생기가 들어가도록

다리가 되라는 것입니다.

도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능력은 내가 있으니 너희는 다만 말씀을 전하는 다리로서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권세를 목말라합니다.

그래서 내가 영생을 주고

내가 생기를 주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권세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주님의 택한 사람에게 생기를 주셔서

영생을 회복하여 사람을 잔 집에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전하는 것입니다.

다만 증거하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나의 힘과 상관없이

나의 있고 없고

알고 모름에 상관없이

다만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증언을 통해 주님이 전한 말씀을 전하는 간단한 일을 통해

주님의 택한 자가 다시 성령의 생기를 받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뭔가 대단한 일을 하라고 합니다.

선교 현장을 만들고

사람들이 ~ 업적을 만들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

말씀의 고리타분한 것을 통해

변하지 않고 세상의 풍조에 비해 세련되지 않는

천년 동안 사용한 낡고 낡은 복음을 통해

다만 생기를 넣으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제발 능력을 구하지 말아야합니다.

복음 자체가 능력입니다.

입에서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경험한

안의 생기,

안의 영생,

안의 성령이

내가 전하는 간단한 복음으로 일하시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것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간단한 일입니다.

 

우리는 간단한 일을 우습게 여깁니다.

너무 간단하고 너무 미미해서 내가 높아질수 없다 여깁니다.

내가 높아지기 위하는 사람은 결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론과 논리와 세상의 근사한 말은 하지만

사람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

안에 찾아온 생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높아지려는 사람일수록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말하지 않고

부활을 말하지 않고

말씀을 배운 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내가 높아질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나를 높이려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전도의 미련함을 미련하다 생각합니다.

나를 증명하려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성령을 구하지

성령이 주신 생기를 통해 일을 <가서> <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기적만 보이고

기적을 베푸는 베드로

천명을 회개시키는 베드로

귀신을 쫓아내며 앉은 뱅이를 일으키는 일들만 보입니다.

능력을 내게 달라고 합니다.

 

제발 아닙니다.

< 사람>,

생기가 없어 영원한 생명 없이 죽어가는

그들을 향한 목마름과 안타까움으로 몸부림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 전도의 미련한 <외에>

전부를 다하고 사는 우리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전도의 미련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미련한 짓이라고 여깁니다.

생기는 우리가 전하는 미련한 것으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전하는 미련한 것으로 죽어가는 영혼이 <영생>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면 인격으로 생기를 불어넣으시듯

우리의 인격을 통해 다시 새로운 영혼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은 바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라>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을 <가르치라> 하십니다.

 

 

가라는 말의 원어는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라는 명령입니다.

날마다 만나는 새로운 사람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지 않습니다.

다만 하늘에서 권세가 떨어지도록 < 자리>에서 앉아 있습니다.

 

복음을 안다면 가야 합니다.

집으로,

친구에게

내가 아는 어떤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일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마지막 사명> 입니다.

 

아직도 당신 일에 바쁘십니까?

나를 증명하는 일입니다.

 

안에 생기가 있고 생명의 성령이 있는데

아직도 세상의 것에 목마르십니까?

나를 높이는데 주린 것입니다.

 

아직도 앉아 계십니까?

용기가 없으십니까?

 

주님이 약속합니다.

"내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 말고 우리에게 뭐가 필요합니까?

어디든 가십시오.

그리고 입을 여십시오.

주님이 생기를 불어넣어줄 기회를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고 임무이고 종의 사명입니다.

 

평생 가장 행복한 순간은

3 동안 버스터미널에 전도를 다닌 일입니다.

18,19,20살을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사상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에 매주 노방 전도를 다녔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어눌한 말과 논리적이지 않은 전도에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 들이고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합니다.

 

매주 나가면 적어도 4-5명씩 영접기도를 합니다.

일을 년을 다했습니다.

저는 평생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나에게 목사라는 타이틀도 없었습니다.

나에게 선교사라는 이름도 없었습니다.

겨우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신분이었습니다.

논리도 내세울 열매도 세상이 알아주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때 나와 함께 하심을 느꼈습니다.

내가 전하는 전도의 미련함으로 사람들에게 영생이 회복되고

생기가 들어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함께 함을 원하지만

함께하시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주님이 원하는 일을 위해 함께 하겠다 하시는데

그래서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하늘과 땅의 권세로 함께하셔서 생기의 역사를 보게 하시는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 > 주님이 함께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주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마지막으로 주시는 명령입니다.

 

<함께함!>

주님의 일을 때입니다.

 

 

 

 

 * 전도를 다녔습니다.

명의 아이들이 함께 다녔습니다.

행복입니다.

내가 땅에서 주를 위해 있는,

그분이 가장 원하고 기뻐하는 일을 하는 <행복!>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면 행복하십니까?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주님이 원하는 것을 해드리는

<종의 > 벗을 진정한 행복이 우리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복 것은 하늘과 땅의 권세가 아니라

종의 형상입니다.

그분을 전하고 말하는 <종의 형상> 말입니다.

종이라 말하면서 주인처럼 사는 우리!

나를 말하면서 주님은 말하지 않는 우리!

 

선교지를 가야 하는 아침에 눈물입니다.

아픔입니다.

자꾸 주님의 아픈 마음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가서>

<전하는> !

행복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