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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오는 시험 4 - 보편적 상식의 오류

다시 찾아오는 시험 4 - 보편적 상식의 오류

 

 

 

 

 

 

 

 

 

 

 

 

다시 찾아오는 시험 4 - 보편적 상식의 오류 (22:34-23:13)

 

보편적 상식이 오류를 범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사람이 망합니다.

보편적 진리가 문제가 생기면 모든 사람들이 신음합니다.

 

사사시대의 보편적 상식은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편적 상식이 문제를 일으킬 세대는 반드시 아픔을 겪게 됩니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보편적 상식이 있습니다.

상식이 오류가 생기고 사람과 시대가 잘못 생각하면 나라는 망하게 되고

교회는 아픔을 겪습니다.

 

동성애나 동성결혼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기 우리의 시대는

보편적 상식이 오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보편적인 것이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가장 흔한 물이 문제가 생기면 마을을 죽어갑니다

가장 흔한 공기가 문제가 생기면 도시는 죽어갑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보편적 상식이 잘못 정해질 시대와 사람은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무리와 군중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배를 채우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메시야가 군중의 배를 채우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종교적으로 해방자로 인식될 그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향한 세상의 시험 번째는 바로

<보편적 상식> 문제입니다.

 

율법사 사람이 가장 아는 것으로 질문을 합니다.

율법 중에 어는 계명이 가장 계명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율법사입니다.

율법을 가장 알고 가장 상식적으로 알아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상식을 시험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상식입니다.

보편적 상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이 말하는 가장 보편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보편적 상식이 상식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세운 율법,

자신들이 만든 기준을 사랑했습니다.

이웃보다 자신들의 체면이 중요하고

이웃보다 자신들의 높음이 중요했습니다.

 

<보편적 상식의 오류>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상식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자신들의 기준만 남았습니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돌로 죽입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돌로 죽여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기준인 용서는 그들에게 없습니다.

안식일에 배가 고파 음식을 먹으면 죽여야합니다.

재산이 되는 양이 빠져 죽어가면 건져 내면서

배가 고파 죽어가는 형제들의 아픔은 외면합니다.

 

주님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의 보편적 상식을 다시 짚어주십니다.

율법의 보편적 상식은 하나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신앙에 문제가 생기고

우리 시대에 문제가 생깁니다.

보편적 상식의 오류가 모든 사람에게 찾아와서 입니다.

 

예수를 믿는가라는 가장 보편적 상식이 오류가 났습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입니다.

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고

복음이 아니라 나의 출세와 축복과 버는 것이 목적이 되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교회에서도 찾을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 나만 사랑이고

이웃 사랑이 아니라 가족만 사랑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보편적 상식의 오류가 점점더 심해지면

사회적 상식의 오류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개인이 중요시 되면

동성애와 동성결혼은 상식이 됩니다.

상식이 상식이 되고 보편적 진리가 오류를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율법의 정의를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보편적 상식의 오류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살지 않아서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다시 그들에게 질문하심으로 확인하십니다.

바로 바리새인들,

가장 성경을 아는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인가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22:42)

 

주님은 다윗의 자손이 아닙니다.

주님은 다윗의 주님입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22:45)

 

주님이 다윗의 자손이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가장 아는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은

가장 보편적 진리와 상식에 대한 오류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멸망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길입니다.

하나님이 버린 길입니다.

예수를 핍박하고 진리를 버리는 길입니다.

 

 

우리 시대는 보편적 상식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물이 오염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갑니다.

지리산의 마을이 공장 때문에 물이 오염되어 마을 사람들이 암으로 죽어갑니다.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때문에 공기가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어 도시가 멸망을 했습니다.

나라가 위태합니다.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보편적 상식과 보편적 진리가

오염이 되고 오류가 발생하면 그분의 교회와 나라는 망합니다.

 

사사 시대는 다른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개인의 보편적 진리가 사라져서입니다.

 

시대는 가장 보편적인 진리와 복음의 보편적 상식이 오염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보편적 상식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만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간단합니다.

복음은 구원의 감격에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편적 진리가 오류를 일으키면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적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세상의 진리와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식이 교회의 상식이 됩니다.

높아지고 커지고 목소리가 사람이 이기고

잘하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개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안에 오류를 일으키는 보편적 상식을 찾아 그것을

정상적인 보편적 상식으로 바꾸어야합니다.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오류속에서 헤메이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 하시는 보편적 상식의 오류가 무엇일까요?

 

첫째, 가르치기만 하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23:2)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말씀하신 주님이 그것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그들이 무슨 오류속에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가르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하는 말은 행하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직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만

자신은 결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3:4)

결국 말만 하는 인생입니다.

말로 조지는 인생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가장 보편적 상식은 아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는 것을 말할 줄은 알았지 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오류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가진 오류입니다.

가르치려하고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인생입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23:5)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보편적 상식의 오류는 바로

<보이려 하는 인생>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모든 지도자들이

모든 성도들이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크게 써서 옷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옷도 다르게 해서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말입니다.

내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하고

내가 얼마나 복을 받았고

내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잔치이 윗자리에 앉고,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회장의 높은 자리와 머리를 숙이는 것에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23:6-7)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면 조직에서 지위가 높아집니다.

그런데 그것을 즐기고

높은 자리에 앉지 못하면 잠을 못자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고

인사를 못받으면 괘씸죄로 죽을 고생을 시키고

우리의 인생이 보이는 것에 전부를 거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이제는 보이는 것에 전부를 걸고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되고

남들보다 받고

남들보다 높아지는 !

그것이 예수를 믿는 전부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잘되고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따라 살면 하나님이 덤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높아지고

개인의 신앙과 인격이 갖추어지면 자연스럽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뭐가 문제입니까?

높아지려는 것이 목표인 인생,

보이는 것이 목적인 인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보편적 상식을 교정하십니다.

선생이라 칭함 받지 말고

지도자라 칭함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한가지 대안을 주시는데 그것은

 

셋째, 섬기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23:11-12)

 

 

한마디로 보편적 상식의 오류

세번째는 <섬기는 사람이 없어진다> 것입니다.

 

시대의 오류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섬김을 받고 싶지 섬기는 것은 점점 희미해진 세대라는 것입니다.

 

오직 ,

오직 가족 외에는 돈을 쓸줄 모르고

대접하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마음과 물질을 나누며

종의 자세로 그들을 섬기는 마음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에 대한

보편적 상식의 오류에 대한 진단과 명확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가르치지 말고

보이는 인생이 되지 말고

오직 <섬기는 인생> 복음의

<보편적 상식>이라는 것입니다. 

 

 

보편적 상식에 오류를 일으킨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하여

오늘 말씀 이후에 얼마나 많은 욕과 저주를 하시는지 읽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보편적 상식이 없는 사람들,

가장 성경을 알고 가장 가르치고

율법을 맡아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오류를 일으키는 순간

예수님의 저주와 욕과 화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상식,

복음의 보편적 진리는 너무 간단합니다.

오직 <섬기는 >입니다.

자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붙이십니다.

욕을 하십니다.

섬기지 않는 너희들 때문에 천국 앞에서 사람들을 막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 싶은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23:13)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핵심은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이고 선지자가 전하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상식이 오류를 났습니다.

복음의 보편적 상식이 오류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있을진저라고 욕을 하십니다.

 

섬기지 않는 인생이 사람을 망하게 하고

교회를 망하게 하고

천국을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는 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큰 명분을 붙잡고 있어서 이렇게 작은 진리처럼 보이는

섬기는 인생은 하찮고 귀찮다 여깁니다.

 

아닙니다.

주님은 보편적 상식이 오류를 낳을 이들이 천국도 막고 사람이라 하십니다.

 

 

무엇을 찾아 복음을 따라가십니까?

높아 지는 것이 상식입니까?

인사 받고 싶어서 복음을 믿고 교회를 다니십니까?

높아 진것을 보이고 싶어서 예수를 믿으십니까?

오류입니다.

보편적 상식의 오류입니다

 

복음의 보편적 상식은 오직 <섬기는 >입니다.

오류가 인생에 찾아올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있을진저라고 하시며 지옥 자식이 된다고 하십니다.

섬김이 오류가 나면 <천국과 지옥> 왔다 갔다 하는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시대에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삶이 남았습니다.

 

오류를 수정해야합니다.

잘못된 복음의 상식을 교정해야합니다.

 

나라가

교회가

성도가 잘못된 보편적 상식의 오류에서 진리로 돌아서도록

진리를 아는 당신으로부터

<섬김의 상식>으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이루어보지 않으렵니까?

복음의 상식이 세상에 편만하도록

주님은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 지금 가덕도에 있는 가덕교회는 은혜가 풍성합니다.

이유는 교회는 섬김의 상식이 상식이 교회여서입니다.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가덕도에 가덕교회가 안식관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3개월을 허락을 했습니다. 선교사를 섬기고 싶은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3개월은 교회의 입장에서입니다.

일년을 안식년을 나오는 선교사가 3개월마다 거처를 옮겨야 하는 문제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있고 싶은 대로 있게 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한달, 어떤 선교사님은 일년,

지금 사진에 있는 김모세 천혜경선교사님은 이집트에서 오셔서 제주 열방 대학을 섬기시다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가덕교회에서 있고 싶은 대로 있으라 해서 지금 4년째 안식관에서 살고 계십니다.

두분의 섬김과 삶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을 선교사의 입장에서 있고 싶은 만큼 있으라고 허락해준 교회가

복음의 상식으로 섬김을 행한 교회입니다.

 

후에 교회는 너무 귀하게 성장하고 기독교 방송과 신문에 소개가 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나의 입장이 아니라 강도 만나 자의 입장에서 이웃이 누군지를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 상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강도 만난 자의 입장이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보편적 진리와 보편적 상식을 찾습니다.

그것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가덕교회는 지금 국제 DTS 예수전도단 주관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것을 진행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김모세 천혜경선교사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무모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몇년째 안식관을 사용하는 선교사님을 통해서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가덕도로 오십니다.

사람들은 안된다고 교회는 시간을 제한하지 않고 섬기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통해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DTS 열리고 있습니다.

있을 없는 일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기적이 기적일까요?

아닙니다.

보편적 상식인 섬김의 삶을 사는 교회는 기적이 상식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주님을 말씀하십니다.

섬김의 보편적 상식을 회복하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율법과 선지자가 말한 핵심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이런 작은 진리가 성경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한 보편적 상식인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는 ,

그것을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기적은 상식이 되고

축복은 흘러가는 강물이 되는 것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