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고백 위대한 타락(마16:13-28)
가장 높이 올라갈 때 가장 많이 추락합니다.
가장 위대한 고백을 할 때 가장 많이 타락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입니다.
그가 사단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16:23)
언제입니까?
그가 처음으로 주를 그리스도라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입니다.
놀라운 고백입니다. 위대한 고백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위대한 고백은 위대한 위임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베드로(반석)를 통해 반석 위에 세운다 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그리고 주님은 이 말씀을 하고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금방 위대한 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주님을 엄중히 호통을 칩니다.
안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고난도 죽음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16:22)
항변합니다.
그 말은 책망한다는 말입니다.
주객이 전도 되었습니다.
위임을 받은 사람이 위임한 자를 책망합니다.
꾸짖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어떻게 된겁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하느냐라고 묻고
제자들에게도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러자 예수님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하셨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몇가지 생각을 해야합니다.
첫째, 베드로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누가 알게 했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
주는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복이 있다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 선택하셔서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반석 위에 누가 교회를 세우십니까?
예수님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6:18)
주님이 주님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베드로가 아닙니다.
주님입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입니다.
셋째, 천국 열쇠를 누가 주십니까?
예수님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16:19)
모든 것이 하나님이 알게 하고,
예수님이 세우고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은 받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된다 안된다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이미 구약에서 기적과 기사로 보여준 내용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것을 안된다고 합니다.
교회의 기초를 몰라서입니다.
반석의 의미를 몰라서입니다.
왜 반석 위에 세웁니까?
왜 반석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하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물을 내시는 방법,
영생을 내시는 방법
생명의 길을 내시는 방법은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석에서 물을 내실 때 하나님은 반석 위에 서고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심판하셔서 죽이셔서 영생, 생명의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길을 보여준 것입니다.
반석은 한마디로 하나님 자신의 심판이고
자기 희생이고
자기 스스로를 우리 대신 심판의 자리에서 죽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것인데
베드로는 안되겠다고 합니다.
절대 안된다고 꾸짖습니다.
사단의 짓입니다.
사단의 놀음입니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고백 후에 가장 위대한 추락이 있었습니다.
반석을 잘못 이해하면,
교회의 기초를 잘못 이해하면 우리는 바로 사단이 됩니다.
사단은 절대 스스로 반석을 깨지 못하게합니다.
절대 자기 스스로 심판의 자리에 앉고
회개의 자리에 앉고
낮아지고 깨어지는 자리에 앉지 못하게합니다.
반석은,
교회는 자기 희생의 피 위에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자기를 희생해서 나오는 생명의 피로 공급되는 생명입니다.
교회가 반석 위에 세워졌는데
베드로는 결코 깨어지지 않으려고합니다.
베드로는 결코 죽지 않으려합니다.
베드로는 반석의 의미도 모르고
베드로는 왜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이 서신 반석을 쳐서 생수가 나오는지 모릅니다.
반석에서 샘이 흐르고
반석에서 생명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그 반석이 깨지고
그 반석이 죽어지고
그 반석이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용서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과 심판의 죄를 당해야하는데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를 모릅니다.
그러니 사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을 꾸짖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이룬다는 것은 반석입니다.
반석을 깨는 시간을 지나야합니다.
주님이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반석을 깨고 생수를 내듯이
우리도 그 고백과 그리스도의 삶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깨지 않고 죽지 않고 부인하지 않고
자꾸 교회를 세우려고 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베드로의 꾸짖음을 당하고 온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향하여 한마디를 더 던지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5)
목숨을 내 놓아야합니다.
그것이 반석의 의미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시작입니다.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했습니다.
사람의 일은 죽지 않고 살려 하고
하나님의 일은 죽어야 살리는 일입니다.
반석을 깨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이름이 반석입니다.
그 이름이 깨져야 하는데 베드로는 자기도 안 깨지고 주님도 못 깨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집니다.
사람의 일로 온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16:25)
사람의 일로 천하도 얻고 영광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깨어지지 않은 천하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생명은 반석을 깨야 생명이 됩니다.
생명은 반석을 깨고 나온 성령을 세워집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세우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반석을 깨지 않으려합니다.
주님처럼 반석을 깨야합니다.
죽음으로 생명을 열어야하는데 사람의 일은 자꾸 반석을 깨지 않고
교회를 세우려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천하를 얻는 방편은 되지만
생명을 얻는 생명수의 강가는 되지 못합니다.
반석처럼 자기가 깨어지는 자기 부인이 있고
반석처럼 자기 반성과 자기 심판이 있고
반석처럼 자기를 깨서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되야합니다.
반석이 깨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수 많은 영혼을 봐야합니다.
베드로는 오늘 위대한 고백을 했지만
주님의 위대한 깨어짐을 알지 못했습니다.
꿈만 있습니다.
좋은 교회,
멋진 교회를 세우려는 주님을 꾸짖는 꿈만 남았습니다.
그곳에는 천하를 얻는 세상의 영광은 있지만
온 세상을 살리는 생명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우리 담임목사님이 아닙니다.
우리 장로님이 아닙니다.
아내도 아니고 남편도 아닙니다.
아무도 아니고 오직 <자기>입니다.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질 때 교회는 생명수가 넘치는 곳이 되며
생명이 자라는 곳이 됩니다.
반석을 이해하지 못하면
반석을 쳐서 생수를 내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위대한 꿈, 위대한 고백만 있고
여전히 주님을 꾸짖는 위대한 타락만 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입니다.
* 오기스교회 임직식을 지난 남천교회 선교팀이 왔을 때 가졌습니다.
교회는 철저히 자기를 깨는 희생과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통해서 세워집니다.
오기스교회는 2003년에 세워져서 토고자니목사님과 천준혁선교사님이 개척을 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토고자니목사님은 조그마한 양철집에서 수 많은 고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인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반석이 깨어지는 자기 희생의 시간을 통해 이번에 5명의 장로와 3명의 안수집사권사를 세웠습니다.
놀라운 영광입니다. 기쁨입니다.
자기를 넘어 다른 사람을 세운다는 것은 교회의 축복입니다.
베드로처럼 교회를 천하를 얻는 방편으로 이용하려면 더 없이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기 영혼의 구원은 없습니다.
반석이 깨어져야 생수가 나오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도 교회는 세워집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종교단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반드시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지나야 세워집니다.
주님의 제자는 하나같이 자기의 목숨을 깨서 교회를 세우고 지켰습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이 이미 지셨다고 나는 그것을 누리면 된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에게 적용이 될 때 우리는 반석위에 함께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천하를 얻기 위해 표적을 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십니까?
교회는 반석,
깨어진 반석 위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