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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안에 계십니까?

울타리 안에 계십니까?

 

 

 

 

 

 

 

 

 

 

 

 

 

 

울타리 안에 계십니까? (15:29-39)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랑의 울타리가 잘못되어서입니다.

사랑의 방향이 잘못되어서입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이 있고 사람이 원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사랑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사랑이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언제> 일어났습니까?

칠병이어의 기적은 <언제>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일어났습니다.

천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를 남긴 사건이나 

천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를 남긴 사건의 공통점은

 

첫째, 그들이 말씀을 들으러 나아왔습니다.

 

영적인 위대한 세례요한이 죽자 사람들은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주님의 음성,

목자를 갈망하는 무리의 마음입니다.

 

말씀의 선포가 있는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곳에도 이런 기적은 없습니다.

무리들이 함께 나아온 자리,

말씀을 듣고 주님을 만나러 자리에 이런 기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울타리>입니다.

주님이 있는 안에 있어야합니다.

주님은 울타리를 치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무리를 제한하셨고

비유를 풀어주는 제자들을 제한하셨고

기적을 베푸는 사람들을 그분이 임재한 울타리 안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있는 사람이어도 은혜의 울타리 안에 있지 않으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허락한 나의 울타리는 어디입니까?

주님이 만들어 주신 울타리는 무엇입니까?

 

방황을 해도 은혜의 울타리 안에서 해야합니다.

방황은 교회 안에서 해야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은 약속 장소에 기다리고

사람은 다른 곳에 아무리 열심히 기다리고 이벤를 만들고

선물을 엄청나게 준비해도 같은 울타리 안에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둘째,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이것을 실수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한 것은 우리를 이끌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과 하나되고 다시 이끄심에 맡기지 않고

나의 열심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은 주체적으로 우리의 구원과 그분의 나라를 위해 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 아이 같이 내가 보기에 좋은 대로 사랑합니다.

일합니다.

열심히 합니다.

 

아닙니다.

 

오병이어, 칠병이어, 병자들은

주님의 마음이 있는 장소,

주님이 놓은 울타리,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있는 곳에서만 일어나게 됩니다.

 

두로와 시돈에서는 결코 일하지 않습니다.

시간적,

순차적 일하심의 계획속에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주님은 마음이 있는 ,

주님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십니다.

오늘 여기에 마음이 있다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칠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15:32)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내가 원하는 두로와 시돈으로 가려합니다.

그곳에 마음을 두고 갑니다.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나를 통해서만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의 장소로 가야합니다.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의 사람을 찾아가야합니다.

 

우리는 자꾸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으로 사랑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내가 불쌍히 여기는 사람에게 기적을 달라고합니다.

내가 원하는 장소와 사람과 때에 기적을 달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사람을 위해 작은 오병이어,
칠병이어를 드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것에 다윗도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직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마음도 두고 그것을 위해

오병이어든지 칠병이어든지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기초>입니다.

 

사랑은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마음이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원하는 사람,

주님이 원하는 장소,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거기에 열두 광주리가 남고 일곱 광주리가 남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있는 사람과 장소에 있어야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평생 수고한 대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내가 주인을 살았던 허망한 나의 인생만 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끄시기 원합니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이유는

나를 통해서 그분의 일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지

나를 그분의 일을 주도적으로 대신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착각합니다.

 

이미 설계도가 나오고 건축의 방법과 길은 성령께서 정하셔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설게도를 무시하고 건축주의 의도를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사로

내가 세우고 싶은 것을 세우고

내가 원하는 사람을 통해 일을 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불법입니다.

불법을 행한 자들입니다.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지만

불법입니다.

성령의 법을 따라야 하는데 법을 따라서입니다.

 

 

오병이어가 손쉽게 역사를 일으키고

칠병이어가 아무일 아닌 것처럼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입니다.

 

주님의 불쌍히 여김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고 장소여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없는 장소,

주님의 때가 아닌 그곳은 오병이어는 그냥 오병이어이고

칠병이어는 그냥 칠병이어입니다.

 

우리에게 오병이어가 없나요?

우리에게 칠병이어가 없나요?

 

오병이어나 칠병이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없는 시간과 때와 사람이어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누구인지,

주님의 불쌍히 여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먼저 알아야합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고 일하는 모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벤트 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셋째, 아무리 작은 것이어도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드리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은혜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비결입니다.

주님은 오늘 당신과 만나는 5분을 원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다른 곳에 가고 싶어합니다.

교회를 위해 목숨 바치고 순교하려고 각오한다면 가짜입니다.

주님은 오늘 당신과 만나는 5분이 주님이 정한 오늘의 울타리이고

주님이 원하는 마음이고

주님이 가지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통로입니다.

 

 

불쌍히 여김에 맞는 한번의 손짓이 기적을 만듭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주님의 불쌍히 여김의 현장이었습니다.

 

모세를 부르시는 떨기나무 앞에서 그의 지팡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울타리입니다.

 

그래서 그가 잡은 지팡이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의 기적의 통로입니다.

지팡이를 홍해를 갈라지고

지팡이를 반석에서 물이 나고

지팡이를 움직이는 것은 주님의 불쌍히 여김의 이유입니다.

 

 

우리는 자꾸 불쌍히 여김이 없는 곳에서

자꾸 지팡이를 휘두릅니다.

주님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주님의 증인입니다.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있는 곳에서 내미는 지팡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마음이 있는 곳에 지팡이를 휘두릅니다.

그래서 기적은 커녕 허무함만 더합니다.

 

주님이 함께 있고 싶은 사람,

주님이 불쌍히 여김이 있는 장소와 사람을 알아야합니다.

그것이 은혜를 위한 우리의 가장 번째 일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다녔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전염 되는 것입니다.

 

 

 

넷째, 그래서 주님의 일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정하고 내가 계획을 세워서 일을 합니다.

그것은 일이되지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을 다하고 내것을 자랑합니다.

일을 다하고 주님이 하신일이라고 하면서 결국 내가 주인되는 짓을합니다.

 

내가 이만큼 일했고

내가 이런 일을 이루었고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어느 순간 주님은 없고 주인된 나만 사람들에게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숨겨야합니다.

자신이 아니라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좇아갔기에

주님의 일하심을 말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증인>이지 <주인> 아닙니다.

 

 

다섯째, 정말 기적이 무엇입니까?

 

무리들은 먹고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한번 뭔가 얻는 것이 기적입니까

아니면 평생 넘치도록 먹는 것이 기적인가?

 

한번 교통사고에서 사는 것이 기적입니까

아니면 별일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 기적입니까?

 

 

우리는 자꾸 한번 뭔가 놀라운 것이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한번 만나를 먹는 것이 기적입니까 40 동안 만나를 먹는 것이 기적입니까?

 

우리는 자꾸 착각합니다.

한번의 기적을 구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로 인도하셨고

영원히 먹는 만나로 인도하셨습니다.

 

한번 오병이어를 경험하고

한번 칠병이어를 경험한 것으로 진짜 기적이라고 말하면 아직

비밀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의 기적을 추구한다고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이 아니라 우리는 없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먹고,

날마다 풍성하고

날마다 끊이지 않는 은혜로 살고 있는 것이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겨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진짜 기적은 한번 죽다 것이 아니라

평생 평범하게 사는 자체가 기적입니다.

기적의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데

그것이 기적인지 모르고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주님이 정한 울타리,

주님이 불쌍히 여김을 가진 사람과 장소에 있으면

그것이 기적 같은 삶으로 이어집니다.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없는 곳에 살면서

주를 위해 살겠다고 하고

주를 위해 일한다고 하고

목숨을 다해 충성하겠다고 말하면

예수를 믿으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기적의 울타리 안에 계십시오.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있는 사람과 장소에 계십시오.

그것이 없는 두로와 시돈에서 목숨걸고 살아도

그곳에는 말씀과 이상이 희귀한 땅입니다.

 

주님의 울타리 안에서 기적은 일상이 되고 비범은 평범이 됩니다.

세상은 특별하나

우리는 날마다 기적의 증인이 되는

그것이 바로

주님의 불쌍히 여김의 울타리 안에 사는 성도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곁에서의 은혜입니다.

 

 

 

 

 

 * 한인교회 구역에서 교회를 방문하시면 반드시

지역을 다니면서 집집마다 들어가서 전도를합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전도지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여의치 않으면 교회라도 알려주고 사역자와 연결을 합니다.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지…

그러나 우리에게 맡기신 지역,

우리에게 맡기신 사람들이 주님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

주님의 은혜의 울타리 안에 거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자꾸 주님이 이미 주신 우리의 울타리에 집중하지 않고

자꾸 이론과 이성적인 논쟁을 통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교회 안에서 자꾸 말을 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이 있는 현장으로 나와야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속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습니다.

변화가 있습니다.

기쁨과 회복과 감동과 감사가 회복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하는 하늘의 기적이

우리를 기다리는데

우리는 자꾸 안에 갇혀서 은혜의 울타리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이 오병이어가 일어나는 기적의 현장이 됩니다.

교회 안이 아닙니다.

개인의 생각,

개인의 마음 속에 갇혀서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있는 것만이

주님의 마음을 느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세우기 위해

주님의 마음이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

훈련도 하게하시고

양육도 받게 하시고

은혜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받았는데 여전히 자기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은혜를 달라고

주님을 보여 달라고

주님의 뜻을 보여 달라고 기도한다면

주님은 이렇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치아라 ~~"

 

그렇게 은혜를 받고도 은혜를 달라고 하는

우리의 신앙!

주님이 외면하실 것입니다.

 

언제까지 책만 파실 겁니까? 

언제까지 성경공부만 하실 겁니까?

언제까지 이론만 배우실 겁니까?

죽어가는 많은 영혼,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는 많은 영혼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앉아계십니까?

아직도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한국교회라는 배가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아

기우뚱 거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무슨 은혜가 필요하십니까???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