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가장 잘못된 유전(마15:1-20)
참 놀랍습니다.
밥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 제자들을 지적하기 위해
그 멀리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거하시는 곳까지 찾아왔습니다.
수십키로를 달려온 이유가 밥 먹을 때 손 씻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심해야합니다.
잘하는 것,
칭찬 할 일은 인색하면서 잘못한 것 한가지를 지적하기 위해
수십킬로 아니 수백킬로 아니 수천 키로 멀리 있는 사람을 지적합니다.
요즘은 그것이 쉽습니다.
그것이 바로 SNS입니다.
잘하는 것 수십가지는 말하지 않지만
잘 못하는 것,
그것도 하나님이 정한 것을 버리고
사람이 세운 전통과 유전을 어기는 한가지에 죽일듯이 달려드는 것이 우리입니다.
오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인 밥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을 제자들이 어겼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15:2)
밥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 것 때문에
그 먼 예루살렘에서 수십키로를 달려서 온 것입니다.
우리는 늘 그렇습니다.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하는데
우리가 세운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운 유전이 있습니다.
그것 한가지 어기면 사람을 죽이려 하고 매장시켜버립니다.
제가 어릴적에는 파마를 하면 지옥간다고 하고
예배당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면 지옥간다고 직접 들었습니다.
그것도 교회 집사님에게 그것도 안수 집사님 권사님에게…
지금은 어디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정한 말씀이 아니라 사람이 세운 전통,
사람이 세운 규칙에 어긋나면 우리는 그 사람을 죽일듯이 달려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고 하십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15:3)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이나 이어져오던 유전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어긴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그 중에 가장 심한 것이 바로 <부모 공경>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수 많은 잘못된 관습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 한가지를 지적하여
그들의 논리가 잘못되었음을 고쳐주십니다.
그것이 부모공경입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고 어미나 아비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15:4)
그런데 그들은 장로의 유전을 따라 부모를 공경하기보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
하나님께 헌신했으니 부모에게는 잘 못해도 된다는 논리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로되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15:5-6)
한마디로 장로의 유전에 부모 대신에 하나님께 잘하고
그대신 부모에게는 좀 소홀해도 하나님이 봐주신다는 논리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 헌금 많이 하고 돈이 없으면
부모에게 잘 못해도 하나님이 이해해 주실 것이라는 논리라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한다고 일 많이 하고
부모를 챙기지 않고 대접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봐주신다는 것입니다.
수 많은 장로의 잘못된 유전 중에 오늘 그 중에 하나
부모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기에
가장 쉽게 넘어가고 가장 보편적으로 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복음을 위해 부모를 버리고 집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는 자는 하나님이 보상하여 주신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잘못된 그들의 유전을 수정하십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해야함을 말씀합니다.
언제 주님이 하나님께 헌금 해야한다고 부모를 소홀히 하라고 했습니까?
언제 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소홀히 하라 했습니까?
그런데 장로의 유전은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에게 이런 유전이 있습니다.
살포시 들어온 잘못된 현대 교회의 유전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정한 기준 때문에
사람이 세운 전통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아노를 오른쪽에 놓을 것인가 왼쪽에 놓을 것인가?
강대상을 높게 해야 할 것인가 낮은 곳에 세울 것인가?
소풍을 가는데 김밥을 할 것인가 초밥을 할 것인가?
장로석을 만들 것인가 안만들 것인가?
지금까지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바꾸면 문제가 생긴다 등등입니다.
다 사람이 정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는 것들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십니다.
입술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15:8)
마음이 없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지 않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정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시 된다는 말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말씀 말씀하면서
정작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정한 전통과 유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것으로 제한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부모공경>입니다.
마침 추석이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현대교회의 유전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께만 잘하면 다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입니다.
한국교회의 축복은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헌금을 합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교회처럼 헌금을 최선을 다해 하는 아름다운 전통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헌금속에 부모에 대한 의무와 사랑의 섬김은 외면합니다.
자 질문하겠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것과 헌금하는 것 그 비율이 어떻습니까?
부모님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헌금을 턱없이 많이 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세상의 세금은 내지 않고 헌금은, 교회일은 목숨걸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헌금을 많이 하지만
부모를 섬기고 사랑하고
생활력이 없는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는 무시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잘 섬기는데 부모를 돌보고 책임지는 일에는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헌금 많이 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이것이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라는 말씀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는 첫째 계명보다 헌금에 대한 우선순위를 더 많이 두고 있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부모님도 알아서 복을 주시고
자식도 복을 주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를 위해 헌신과 헌금을 아낌없이 드리는 자에게 반드시
복을 허락하시지만
부모를 섬기지 않고 공경하지 않은 죄는 물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고 그것이 말씀이고 그것이 정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명확하게 기록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니라라고 합니다.
겨우 헌금의 반도 안되는 돈으로 생활력이 없는 부모님을 대하는
우리의 잘못된 유전을 반성하고 돌아봐야합니다.
우리의 인색한 부모공경에 대한 마음을 반성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빙자해서 헌금만 잘하고 교회 봉사만 잘하면
부모에게 좀 잘못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부모는 곧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축복이 부모를 통해서 흘러옵니다.
부모를 빼고 하늘의 축복이 내가 드린 헌금의 액수와
내가 드린 봉사의 정도만큼 온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부모 공경을 무시하는 자들을 예수님은 입술로만 나를 존경하고
마음은 나에게서 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15:8)
한국 교회의 유전과 전통이
<입술신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전통이 교회를 키우지만
버림 받는 부모를 만들고 있습니다.
부모를 외롭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부모를 아프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헌금의 액수보다,
봉사의 시간보다 우리의 부모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더 커야합니다.
개인적으로 헌금의 액수만큼 보모님께 하려합니다.
건축헌금을 하고
특별헌금을 할 때 그것 만큼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않도록 미리 많은 용돈을 드립니다.
경제력이 없는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혹 내가 드리는 헌금과 봉사와 섬김으로 부모님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마음을 전달하고
용돈을 전달하고
부모를 향한 아들의 사랑의 마음을 이해시킵니다.
혹 아프리카에 동역자들의 부모님들이 방문을 하십니다.
그럴 때 마다 1박2일이라도 쉬시도록 숙소를 잡고 식사를 대접합니다.
내 자식이 함께하는 다른 목사가 부모가 왔다고 그렇게 섬기면
그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멀리 한국에서 아프리카까지 와서 좋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잘됨을 보고
자녀의 존경 받고 사랑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것이 주안에서 함께 자녀된 우리의 도리입니다.
작은 식사라도 대접하고
작은 마음의 선물이라도 드리는 것이 주안에서 부모공경의 마음입니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면 몇 일 지나지 가장 먼저 가는 곳이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서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님의 부모님을 찾아 뵙는 것입니다.
작은 선물과 용돈을 챙겨드리고 아드님이 얼마나 사역을 잘하고
귀한 분인지 말씀을 드립니다.
내 부모만 부모가 아니라
함께 주안에 동역자된 사역자들의 부모입니다.
우리의 부모입니다.
우리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분들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주님은 오늘 내 백성이 입술로는 존경한다고 경고합니다.
마음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얼마나 헌신하고
얼마나 헌금 많이 하고
얼마나 봉사 많이 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잘못된 유전입니다.
잘못된 전통입니다.
성경은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하십니다.
그것이 첫 번째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 때문에
우리가 드리는 봉사 때문에
우리가 목숨 걸고 하는 복음 때문에
우리의 부모님이 외면 당하고
외로와지고
눈물 흘리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입술신자>와
예수님이 생각하는 <입술신자>는 다른것 같습니다.
우리의 열심의 근거가 혹 장로들의 유전은 아닙니까?
그래서 안심하고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부모님들이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의 열심으로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잘못된 유전이 잘못된 신앙을 낳습니다.
오늘 주님은 그 잘못된 유전으로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유전이
수 많은 우리의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 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유전,
우리의 잘못된 신앙 때문에 말입니다.
헌금,
전부를 하십시오.
봉사,
목숨 걸고 하십시오.
목회와 선교,
죽음 힘을 다해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부모님이 슬픈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님이 외로운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대신 해서
우리에게 주신 이 땅에서 섬겨야 할 분은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님!
* 70세가 넘으신 어머니입니다.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시고
아들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신 삶입니다.
불러도 불러도 감격스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아들이 늦게 오면 밤을 세며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셨고
나이 35까지 학교를 다녔지만
아들의 아침 식사를 단 한번도 빼 먹은적이 없으셨고
혹 어려운 이야기
혹 힘든 이야기에 아들 마음 상할까 평생 그 아픔을
눈물로 삼켜온 나의 어머니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아들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시는 어머니!
아프리카로 떠나겠다 말씀드릴 때
서슴없이 가라고 하셨던 어머니!
하나님이 사역을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냐고 되려
신앙이 없으시던 어머니가 아들 가는 길을 편히 해주셨던 어머니!
평생에 가장 힘든 시간이 그 때인데
내색 없이
말 없이 묵묵히 그 길에 박수를 보내시던 어머니!
차가 없어 리어카에 친 할머니를 병원까지 모시고 다니시던,
20년 할머니 병수발에 웃음으로 해야 할 도리를 기쁨을 하시던,
20년 일없이 살던 아버지를 지아비로 섬기며 살던 그 지난 세월,
고스란히 내 마음에 눈물로 남아 남아.
내 다시 내 자녀들에게 이런 아비가 되어야지
내 다시 내 자녀들에게 이런 부모가 되어야지 다짐하게 하는 나의 얼굴
나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당신의 삶,
사랑합니다.
당신의 이름,
어머니!
약속 있는 첫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주신 말씀!
평생에 담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