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장난이 아닙니다.(마13:36-52)
우리는 천국을 거꾸로 생각합니다.
천국 비유를 거꾸로 생각합니다.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감추인 것을 들을 사람만 듣게 하십니다.
천국은 마치…라고 하시는 비유가 6개가 나옵니다.
그 첫 번째가 가라지 비유입니다.
정확하게 천국은 좋은 씨를 뿌린 사람 같으니라고합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13:24)
여기서 예수님은 씨를 뿌리는 자를 인자라고 설명하십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13:37)
그럼 천국은 바로 예수님되신 인자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가라지 비유의 핵심은 인자가 선인과 악인을 마지막에 구분하겠다는
천국의 입장,
천국을 이루어가시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기록합니다.
둘째, 여섯개의 비유 중에 마지막 비유는 그물 비유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13:47)
여기서 그물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갈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13:49)
여기서 주님은 천국의 주인되신 주님께서 마지막에 심판하심을 의미합니다.
천국의 입장,
주님의 입장에서 천국의 성격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셋째, 두번째 비유인 겨자씨 비유입니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13:31)
천국은 겨자씨와 같습니다.
여기서부터 잘 봐야합니다.
첫번째 비유의 주인공은 주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유의 주인공도 천국의 확장성에서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럼 겨자씨의 비유,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인 겨자씨는 누구를 말하겠습니까?
물론 세상에서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질그릇같은 사람을 부르시는 천국의 성질을
이해해야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하려고 하시는 천국의 가장 기초적인
시작과 성질은 누구를 말하겠습니까?
바로 주님입니다.
겨자씨는 바로 주님 자신을 말씀합니다.
주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탄생과 삶과
지위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어떻게 천국이 확장되어 가면 세워가는지를 친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넷째, 세번째 비유인 누룩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13:33)
천국은 마치 누룩과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누룩은 누구를 말합니까?
천국 백성을 의미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원래 천국의 시작, 천국의 의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하십니다.
한사람의 죽으심으로 세상에 구원이 오게되며
천국이 임하게 되는 자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려고 했던 의미일 것입니다.
다섯째, 진주 장사입니다.
진주 장사가 가장 값진 진주를 발견해서 그것을 위해 전부를 다 팔았다고 합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13:45)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우리를 말합니까 예수님을 말합니까?
앞서 예수님이 비유한 다른 비유는 다 천국의 확장성에서 자신을 의미합니다.
씨를 뿌린 사람,
겨자씨,
누룩,
그물,
그리고 진주 장사입니다.
무엇을 말하려합니까?
예수님은 천국 비유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되어지는 천국도 시대가 가면서 우리가 적용을 하지만
그러나 원래 천국은 예수님의 자신의 죽음과 헌신과 사랑의 작은 한가지를 통해
온 세상에 천국이 확장되는 것을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진주 장사는 자신의 전부를 팔아 그 값진 진주를 사게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전부를 다 주시고 천국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삶과 사역을 다하시는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주석을 뒤져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다 우리가 뭔가를 해야 천국이 이루어진다라는 의미로 설명을 합니다.
물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주를 향한 최선의 삶을 통해 그렇게 확장 되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의 비유,
창세로부터 감추인 비밀이 우리보고 다 팔아서 천국을 만들어가라는 것을 의미할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두고 창세로부터 감추인 비밀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
주님 한 사람의 완전한 죽으심과 순종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신의 삶과 죽음을 의미하며 제자들에게 천국 비유를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뭔가를 팔아 천국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부르신 부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전부를 다 팔아,
다 드려 그 천국의 시작을 열고 계심을 설명하고 계신것입니다.
천국을 세워가시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드리는 피와 생명,
예수님 자신이 곧 천국입니다.
주님은 창세로부터 감추인 자신을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번째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13:44)
<보화>입니다.
비유의 이중성입니다.
천국은 보화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천국을 위해 우리의 전부를 팔아야합니다.
밭을 발견한 사람처럼 <다> 걸어야합니다.
그런데 왜 다 걸어야합니까?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주님이 <다> 거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천국은 마치라는 비유는 이중적 비유의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
천국의 백성들이 어떻게 천국을 세워가는지를 설명하지만
원래 비유의 의미는
예수님 자신이 천국을 위해 자신을 어떻게 드리는지를 먼저 생각해야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먼저 천국을 위해 전부를 다 드리는 것을 제자들에게 먼저 알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이 천국을 위해 다 드리는 모습을 제자들이 알기를 원하고
그리고 그것을 아는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보화를 발견한 제자들이
천국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마치'라는 천국 비유는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의 주인공입니다.
그가 씨를 뿌리는 자이고,
겨자씨이고
누룩이고
밭의 보화이고
진주 장사이고
그리고 그물입니다.
천국이 주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설명한 비유가
천국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무엇을 봐야합니까?
무엇을 들어야합니까?
주님이 전부를 <다> 걸었던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이 비유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은
<심판>과
<전부>입니다
심판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 즉 가라지비유입니다.
그리고 그물 비유입니다.
시작과 끝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중간에 나오는 것
겨자씨와 누룩과 진주 장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직접 의미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천국은 보화입니다.
그것을 위해 <전부>를 거신 예수님을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전부를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부를 걸었습니다.
성부 하나님도,
성자 예수님도,
성령 하나님도 이 천국에 전부를 걸었습니다.
오늘 비유는 그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이 천국에 전부를 걸고
삼위 하나님이 일하시는지 그것을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그것이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열심히 다 드리면 된다는 우리의 입장에서 천국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이 천국을 위해,
잃어버린 천국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다 드린
삼위 하나님,
죽음으로 이 모든 것을 회복하시려는 예수님의 간절함과
애절함과 천국의 비밀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사람의 하고 하지 않고에 상관없이
주님은 직접 그 일들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직접 자신의 몸으로 영으로 이루십니다.
심판도 있고
천국도 있고
하나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겨자씨 같고
누룩 같은 초라한 그분이 반드시 이루시고 반드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비유로 지금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하고 하지 않고에 달린 천국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이 주님께서 다 드린 삶처럼
이 길에 전부를 걸고 드리는 삶이 영광임을 아는 것입니다.
들리고
보이는 것이 축복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전부를 다 드리는 천국을 위한 삶 이전에
예수님이 자신의 전부를 <다> 드리는 이 비밀을 알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다 드린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천국이 내 안에서는 전부를 드리는 예수님과 같은 삶을 통해
다시 누군가에게 확장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통해 태어나고
천국은 천국을 아는 자를 통해 전해집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 천국,
자신의 전부를 드림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천국….
우리는 너무 쉽게 이 천국을 먹으려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 천국을 전하려합니다.
너무 쉽게 말입니다.
천국은 장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전부를 건고 얻은 세상에 유일한 보화입니다.
<전부>인데
<다> 인데 말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13:44)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13:46)
주님은 <전부>를 팔아 우리에게 천국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 얼마전 사택이 다 타버린 구바네 전도사(가운데)입니다.
땅은 받았지만 펜스도 쳐야하고 양철교회도 세워야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큰 일이지만 그런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려면 한 사람의 사역자와 그 가정이
얼마나 전부를 다 쏟아 부어야하는지 모릅니다.
한지역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려면
누군가는 겨자씨로 죽어야하고
누룩이 되어 밟혀야하고
자신의 전부를 다 팔아 그 한가지를 사야하는 수 없는 눈물과 아픔과
외로움의 시간을 지나야합니다.
우리는 가끔 쉽게 먹고 싶어합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그냥 열린것 쉽게 따먹으려합니다.
그것이 선악과입니다.
그것이 악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내 안에 천국도,
내 가정에 천국도,
내 교회에 천국도 전부를 걸어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어떤 것을 다 주어도 가치가 있는
보화입니다.
값진 진주입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전부를 거셨습니다.
다 드렸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주님의 주님되셨으니
이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