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5- 복음은 십자가입니다. (마12:38-50)
기억해야합니다.
복음은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 세상, 이 세대를 악하고 음란하다 정의합니다.
악하고 음란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악한 것은 죄의 열매이고 얼굴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죄는 믿음 없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안식일 문제로 시작된 복음의 내용을
성령으로 풀어내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그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세가지로 정의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 했습니다. (요16:8)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음>이고
의에 대하여라 함은 예수님이 아버지께 가서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함이고
심판에 대하여는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은 것이라 했습니다.(요16:9-11)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이 세상에 대하여 정의 하시면서 악하고 음란하다 하십니다.
그런데 그 죄에 대한 정의는 바로 <믿지 않음>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이 세대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정의하신 주님께서
악한,
죄로 물든 세상에 줘야하는 정확한 답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답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첫째, <요나의 표적>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특징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믿음 없이 전부를 다 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입니다. 악입니다.
그 세대에 가장 정확한 진단과 답은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한 모든 것은 죄입니다.
믿음 없이 한 모든 것은 하나님과 상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역사는 자기의 것을 남기려는,
자기의 이름을 남기려는,
하나님이 아닌 전부를 구하는 악과 음란입니다.
그 세상에 주님이 주시는 것,
없어서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답으로서의 주님의 선물은
다름 아닌 십자가,
자신의 죽음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12:39-40)
살려고 시작한 이 세상입니다.
더 잘 살려고 시작한 세상입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주인인것을 증명하고
하나님이 주신 전부를 자기 것 인양 살아가는 것이 악이고 음란입니다.
음란은 성적인 것을 말하지만
하나님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다른 것을 구하는 전부가 음란입니다.
이런 세상에 주님의 유일한 답은 오직 <십자가>로 상징되는
자신의 <죽음>입니다.
둘째, 이 세대는 끊임없이 <표적>을 구합니다.
표적을 구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세상은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야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본성으로 시작한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서 사람들의 대화와 관계는 오직 <표적>입니다.
말할 만한 표적,
내 세울만한 뭔가를 내 놓아야 이 세상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꾸 뭔가를 증명할 능력을 좇아가게 됩니다.
자식도 공부를 잘 시켜야 뭔가 할 말이 있고
나도 세상에서 이정도 높다는 것을 말해야 세상이 나를 존중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영, 세상의 자녀입니다.
그 세상에 주님이 주신 답과 약과 치료제는 다름 아닌
이런 세상의 표적을 구하는 본성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방향성과 반대입니다.
세상은 표적을 구하지만 그 표적을 구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믿음,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격은 바로
하나님을 믿기에 자신의 전부를 세상에 대하여 죽는
<십자가> 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세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절대로 가지 못하는 길,
바로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입니다.
세상의 표적을 구하는 <본성>에 대하여 철저히 <죽고 죽어>
오직 하나님이 이끄시는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이 세상을 <살리는> 방법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표적의 하나님입니다.
기적의 하나님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워진 세상은 오직 표적만 보고,
기적만 보고
능력만 보고 하나님의 길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이 구한 것은 오직 겉으로 드러나 원리입니다.
세상이 보는 것은 오직 표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표적은 섬김입니다.
그 표적은 자신의 헌신입니다.
그 표적의 원리는 사랑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인 세상의 표적과 기적과 능력만 보았지
정작 하나님이 그 표적을 만드시고 기적을 보이신 이면의 세상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표적의 이면에 숨겨진 하나님의 본성은
섬김이고 헌신이고 사랑입니다.
표적을 구한 세상이 보지 못한 믿음의 길은 자기를 죽이면서
세상을 세우신 하나님의 원래 마음,
그 마음을 주님은 보여주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표적의 세상에서
그 표적의 원리와 뜻이
자기의 전부를 사람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위임의 마음,
섬김의 마음,
사랑의 마음의 끝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십자가입니다.
복음입니다.
복음은 자기를 죽여서 증명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기를 살려서 자기를 증명하려합니다.
자기의 표적과 기적과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려합니다.
그것이 천지를 창조할 때 표적의 겉만보는 세상의 눈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하늘의 사람들은
자기를 살려서 자기를 증명하지 않고
자기를 죽여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을 가며 요나의 표적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으신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표적의 겉만 따라가는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예수님의 진심이셨습니다.
십자가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입니다.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표적 이면에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를 증명하고 싶은 예수님의 죽음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인 주님이 죽음으로 이 원리를 증명해도
그 악함이 심하여 돌이키지 않습니다.
요나의 전도를 듣고 돌이킨 니느웨가 있는데 그요나보다 큰 사람이 이렇게 해도 모릅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12:41)
남방여왕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12:42)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대는 전보다 더 악하여 이것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일곱 귀신이 나갔다가 있을 곳이 없자 다시 돌아와
정리된 그곳에 더 악한 모습으로 산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12:45)
이 세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악해집니다.
정리하고 치워도 다시 돌아와 악해지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선지자가 와서 돌이키고
주님의 사람들이 와서 회복을 해도
더 악한 자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를 아프게 하고
악하게 하고 음란하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이고
이 세상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 세대와 세상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갑자기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이 왔다고 하자
주님은 급기야 이런 말씀까지합니다.
누가 내 형제고 자매고 어머니인가?
그것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그들이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12:50)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세상의 원리와 표적을 구하는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미련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3]
왜냐하면 복음은 자기를 살려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죽여서 믿음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롬11:33-34)
표적을 구하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의
결정체는 바로 <십자가 복음>입니다.
복음을 믿는 것은
바로 이 자기를 죽여서 세상에 믿음을 증명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도 그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자꾸 표적을 구할 것입니다.
세상은 자꾸 우리의 능력을 구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표적이 아니라 표적 이면에 숨은 원리
섬김과 헌신과 사랑과 자기 부인을 보라하십니다.
능력을 구하고 힘을 증명하라는 세상에 대하여
오직 십자가의 이 원리,
자기를 드림으로 다른 사람을 세우는 오직
이 원리가 하나님의 지혜라고 믿는 사람만 가는
유일한 구원의 길!
바로 복음,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
자기를 표적이 아니라 섬김과 헌신과 드림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사람에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의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십자가는 우리를 살게하고
십자가는 우리를 회복시키며
십자가는 기뻐하게 하고
십자가는 부요의 길을 얻게하고
십자가는 아무것도 아닌 자로 세상 전부를 가진 마음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의 길은
세상에서 전부를 잃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길입니다.
세상에 소망이 없을 때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가난한 자,
보지 못하는 자,
듣지 못하며 저는 자,
이 세상에 아무 의지 할 것이 없는 죄인과 세리와 창기들에게 유일한 길입니다.
저와 같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 만이 답으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답.
복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새롭게 개척하는 이라크(IRAQ)에 구바네(Ngubane) 전도사가 미리 들어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양철로 집을 짓고 살다가 가족 4명이 지내기가 너무 어려워 별돌 방 한칸을 지어서 사는데
몇일전에 집에 불이 났습니다.
집안의 모든 가구와 물건들이 다 탔습니다.
감사한 것은 4달된 아이와 5살된 아이는 무사하게 살아나와서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겨울이라 집안에 피워놓은 난로가 옆으로 불이 번져서 이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전부를 잃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잃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당장 잠 잘곳도 공부할 책도 다 날라갔지만
더 감사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들을 봅니다.
또 기대합니다.
이곳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이 일하실지,
하나님은 늘 하나님의 사람들을 그렇게 전부를 가져가시고
광야와 같은 그곳에서
복음의 영광과 꽃을 피우시는 은혜를 기대합니다.
늘 그렇습니다.
개척을 하고 건축을 하면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어느 교회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구바네 전도사님에게 그렇게 위로를 했습니다.
"고난은 당신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복음의 사람이 아니면 가지 못하는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감사하게 지난해 한인교회 정지경집사님께서 침대와 이불과 커텐등을
이사하시면서 선교에 써달라고 보내주셔서 사역자들에게 보내고 남은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대치를 하고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성도의 섬김은 늘 어려울 때 그 섬김이 빛이 납니다.
어려움 중에서 하나님의 뜻안에서 기뻐하는 구바네 전도사와
토고자니(Rev. Togzani Thwala) 목사님,
그리고 살림 살이를 미리 보내주신 정지경집사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