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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영성4- 떠남의 영성이 십자가의 완성입니다

십자가의 영성4- 떠남의 영성이 십자가의 완성입니다

 

 

 

 

 

 

 

 

십자가의 영성4- 떠남의 영성이 십자가의 완성입니다.(11:1)

 

"하와이 니가 가라"

영화 '친구' 중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친구는 '니가 가라' 하지 않고 내가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신앙의 근본을 흔드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그분의 십자가의 영성 마지막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떠남>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11:1)

 

 

삼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뜻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 누군가가 일을 실제적으로 이루어야합니다.

뜻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용서>입니다.

*참고: 기도와 같은 말은 용서입니다(마6:5-15)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 피를 흘려야합니다.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과 계획입니다.

수천년 전부터입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오셨다는 말은 땅에서 보면 오셨지만

하늘의 입장에서는 <떠났다>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

십자가 영성의 시작은 <떠남>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영성 몇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영성을 자신의 삶으로 다시 보여주십니다.

 

하늘을 떠났듯이 다시 있는 자리를 떠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떠남>입니다.

그러나 떠남의 전제는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예수님의 땅에서의 사역의 시작은 성령의 잉태입니다.

성령이 이끄심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1:20]

 

 

예수님의 떠남의 전제는 성령으로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3:16]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

 

 

 

요단강의 세례에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것도 떠남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떠나는 일이 바로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그런데 떠남의 근본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떠나지 않는 모든 십자가의 영성은 결국 바베탑의 영성으로 바뀝니다.

쌓으려는 것입니다.

이름을 내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생을 십자가의 영성으로 삶을 사셨습니다.

첫번째가 하늘을 떠나신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떠나 죄의 몸을 입으신 것이고

의인의 자리를 떠나 죄인의 자리에 세례를 받으신 것이고

자기를 채움을 떠나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광야 시험의 자리에 서신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열두 제자를 가르치시고 파송하시고

예수님이 스스로 십자가의 영성을 따르십니다.

 

바로 자리를 다시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11:1)

 

 

십자가의 삶은 가르치는 자리,

비판의 자리,

평가의 자리,

손가락질 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내가 친히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은 가르치려하고 떠나려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영성 네가지,

가까운 장벽을 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안았습니다.

자신을 배반한 사람을 안고
자신을
미워한 세상을 안았습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안았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찾아온 병든 자들을 안았습니다.

 

그리고 자격 아니라 따름입니다. 

따름은 흐름이라고 두번째 영성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늘의 뜻이 흘러가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흘러가게 하기 위해 성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냉수 그릇의 삶을 살기 위해 눈에도 띄지 않는 삭개오와

사마리아 여인과 없는 이름 없는 소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일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마침내 주님은 모든 십자가의 영성을 완성하기 위해 한가지 하십니다.

그것은 떠나는 것입니다.

 

하늘을 떠나 땅에 오시듯이

의인의 자리를 떠나 요단강으로 가시듯이 

사는 곳을 떠나 광야로 시험으로 받으러 가시듯이

주님은 이자리를 떠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영성 마지막은 <떠남>입니다.

아니 십자가의 영성의 시작도 떠남입니다.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4:22]

 

말은 이렇게도 가능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따르기 위해 배와 아버지를 <떠나니라>"

 

 

예수님의 입장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와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들은 떠나는 것입니다.

하늘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땅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야할 십자가의 영성은 떠나는 것입니다.

 

그럼 떠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내가 사람들에게 바라고 기대하던 것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와이는 니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면 됩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말하고 가장 많이 불만이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사람들에게 요구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돈에 가장 많이 관심이 가는 사람은 돈을 말합니다.

궁금해서 이것저것 묻지만 결국 돈의 흐름,

얼만지가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 어떤 교회에 대해서 우리는 내가 중요한 것을 묻고 말합니다.

내가 행정을 잘하면 행정을 묻고

내가 윤리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묻고

내가 찬양에 관심이 많으면 찬양에 관한 찬양대나 찬양팀이나 그런 것만 묻습니다.

 

그래서 내가 관심 있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직 주님의 가장 관심있는 ,

주님의 마음을 그들이 행해주기를 기대하면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 하신 그것을 직접 행하러 가십니다.

떠난 다는 것은 결국 내가 말하던 ,

내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던 그것을 행하기 위해 있는 익숙한 자리를 떠난 것을 말합니다.

있는 자리를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그것,

제자들이 행하기를 원했던 그것을 직접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뭡니까?

내가 말하고

내가 관심을 가지고

내가 사람들에게 목사에게 선교사에게 교회에게 원하는 것을

나는 행하지 않고 떠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십자가는 떠남으로 시작되고

떠남으로 완성됩니다.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는 지기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자리를 떠나는 것이 십자가의 영성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떠나기 싫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십자가를 영광은 좋아하지만

십자가의 대가 지불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리는 좋지만 자리를 떠나는 것은 죽기보다 싫습니다.

 

사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과 말이 떠남으로 표현될 나를 통해 나의 십자가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이루고 싶으십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삶에 이루고 싶으십니까?

평소 내가 말하고 말하고 말해서

사람들에게 요구하던 그것을 위해 떠나십시오.

발걸음을 옮기 십시오.

그것 외에 어떤 것도 십자가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떠나지 않고 십자가를 완성하려합니다.

아니 니가 해라고합니다.

주님은 성령을 사람 머리 위에 두셨습니다.

 

사람이 영원이 되어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사람의 ,

사람에게 임한 성령의 몫을 이룰 때입니다.

사람의 몫은 오직 십자가를 지고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십자가의 마지막 영성은 <떠남의 영성>입니다.

세상이 해줄 없고 오직 나만이 있는 것이 있기에

주님은 사람 위에 성령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만 받고,

십자가만 지고

떠나지 않는 자리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떠남의 삶을 사셨습니다.

아니 태어나기도 전에 떠남을 준비했습니다.

 

인류가 죄를 짓는 순간부터

아니 전부터 주님은 떠나기 위해 수천년을 준비했습니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기 위해

우주를 덮을 만큼의 아버지의 사랑이지만

사랑을 떠날 준비를 태초부터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베들레햄에서 애굽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갈릴리로 떠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떠남으로 완성되셨습니다.

떠나셨습니다.

이곳을 떠나,

성에서 떠나,

곳에서 떠나,

그곳을 떠나 가시다가,

거기를 떠나 가실새,

떠나 가시니….

 

십자가는 떠남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떠남이 오늘 내가 있는 제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떠남으로 실현될 십자가를 향한 완성은 더욱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목사에게

내가 선교사에게

내가 평소에 비판하고 침을 튀기면서 말하고

그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던 ,

말을 내가 이루어야합니다.

 

그것이 떠남의 <의미>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말하던

내가 반복적으로 관심을 가지던 그것을 내가 떠남으로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와이 니가 가라'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영성입니다.

 

떠나지 않는,

내가 말하던 그것을 몸소 이루기 위해 행하지 않는 곳에는

떠나지 않는 곳에는

결코 십자가의 은혜와 영광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하늘을 떠난 곳에서 이루어지고

십자가는 있는 곳에서 말하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떠난 사람을 통해 완성됩니다.

 

<떠남> 의미는 <행함>입니다.

내가 늘 말하던 그것…

 

 

높아지고,

자격을 부여받고

능력을 받고

세상이 인정하고 사람이 되고

학위를 받고

세상이 박수 떠나야합니다.

<떠남> 없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 가장한 나의 <바벨탑>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떠남의 역사>입니다.

 

십자가는 <따름>이고

따름은 <떠남>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던 하와이를 내가 가는 ,

내가 행하는

내가 모범을 보이는 ,

그것이 하늘에서 이룬 뜻이 이루어지는 원리입니다.

제자의 일은 아는 것을 행하는 떠남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떠날

누군가가 십자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영성 마지막인 떠남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쌓으려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크루거 네셔날 파크(Kruger National Park) 있는 벅스릴리입니다.(bucks lily)입니다.

선교팀이 오면 어김없이 여기로 가서 스쿠쿠자(Skukuza) 휴게소에 갑니다.

그곳에서만 보는 꽃입니다.

 

꽃의 영광은 꽃이 아닙니다.

꽃의 영광은 씨앗의 떠남입니다.

떠남이 없는 영광은 영광이 아니라 아픔입니다.

꽃의 씨앗들이 떠나야 영광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는 솔로몬의 영광은 하나만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하늘을 떠나는 것이고

있는 곳을 떠나는 것이고

말하던 것을 본인이 직접 행하는 떠남의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떠난 곳에 영광의 비밀을 심으셨습니다.

떠남만이 땅에 영광으로 남습니다.

떠난 곳에서만 오직 새로운 영광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사진:임원아  편집:서대경)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