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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영성2- 자격이 아니라 따름이다

십자가의 영성2- 자격이 아니라 따름이다

 

 

 

 

 

십자가의 영성2- 자격이 아니라 따름이다.(10:38-42)

 

운전 면허를 땄다고 면허증만 부여안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학위를 받았다고 학위에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사람이 있다.

의사 면허를 받았다고 환자는 보지 않고 자격자체에 감격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

목사가 되었다고,

선교사가 되었다고,

내가 예수를 믿는 다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

 

십자가의 영성은 <자격> 아니라 <따름>이다.

십자가의 영성 첫번째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한 두려움을 넘어

사람 앞에 하나님을 시인하는 삶이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며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영성 두가지를 말씀하셨다.

두번째는 바로 <자격> 아니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10:38)

 

많은 그리스도인은 내가 그리스도를 모르다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제자가 되고 일군으로 산다는 것에 감격한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이 지기 힘든 십자가를 졌다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내가 이런 목사가 되고

내가 이런 선교사가 되고

내가 이런 일들을 교회를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맡았다는 자체로 감격한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명확하게 경고하신다.

합당치 않은 십자가의 영성!

자격이 아니라 따름이라고!

 

십자가를 진다는 자체는 놀라운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는 것과 따르는 것은 다르다고 하신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문제는 십자가가 없어서가 아니다.

십자가를 자격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따름의 문제이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느냐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따르느냐의 문제를 확인하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영성은 지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을 부르실 ,

제자로 부르실 하신 말씀은 십자가를 지라고 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베드로를 부르실 때도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십자가는 주님의 몫이다.

십자가의 크기와 색깔은 주님의 몫이다.

사람마다 다르고,

형편마다 다르고

사명마다 다르다.

그러나 십자가를 진다는 것과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하늘과 차이만큼 크다.

 

십자가의 자리에 있다고 감격하지 말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에 감격이 있다.

십자가의 길이 기쁨이 되지 못하고

십자가의 길이 평안이 되지 못하는가?

지고만 있고 따르지 않아서이다.

 

따르는 곳에 눈물과 감격이 있다.

것이 없어도,

십자가의 길은 것이 없다.

그런데 하늘의 평강이 안에 충만한 것이 따르는 삶이다.

 

십자가는 지고만 있으면 고통이다.

그런데 따르면 평강이다.

감격이다.

하늘의 영광이다.

 

주님은 오늘 십자가를 지는 것과 따르는 것의 삶을 구분해야하고

지는 것에 그치지 말고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따른다는 말은 무엇인가?

십자가의 영성은 따름이다.

그런데 <따름> <흐름>이다.

 

십자가의 영성은 <흐름> 의미한다.

사람의 본성은 두려움이라 했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형태는

<쌓음>이다.

 

바벨탑이라 했다.

인류의 과거 역사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는 결국 바벨탑의 재현과 반복이다.

그것이 인류다.

하나님이 인류가 쌓지 못하도록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결코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하나되지 못하게 하셨다.

그런데 같은 마음으로 하나되게 하신 것이 있다.

그것이 흐름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

그것이 하늘의 은혜가 땅에도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인류는 이름을 위해 쌓고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흐르게 한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십자가를 졌다는 자기 영광을 쌓고 싶어서이다.

십자가의 자리,

십자가를 지고 있는 자리에 주님의 영광을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을 놓치기 싫어서,

잡고 싶어서 우리는 자꾸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로부터 나를 쳐다보게 한다.

십자가가 따름이 아니라 쌓음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영성은 흐르게 하는 것이다.

안에 받은 부르심의 사명이 흘러 흘러 내가 십자가를 통해 흐를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

 

흘러야 통하고

통해야 말하고

말해야 하나가 된다.

 

세상은 결코 대화가 되지 못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유는 자기의 몫을 쌓기 때문이다.

 

우리와 세상이 다른 것은

세상은 쌓기 위해서 살고

우리는 흐르게 하기 위해서 산다.

 

그런데 십자가를 쌓음의 도구로 사용할

거기에는 썩은 악취가 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썩어질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과 인간적 악취가 나는 것이다.

 

십자가의 존재는 세상에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은혜의 흐름,
용서의 흐름,

생명의 흐름의 마지막 통로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통로에 서서 은혜를 흐르지 못하게 막고 섰으니

세상은 어둠이요 

사람을 두려움과 아픔에 더더욱 쌓아가는 것이다.

 

우리를 통해 흘러가는 은혜,

십자가의 흐르는 생수의 강을 보여줘야한다.

내가 흐르는 생수의 통로가 되고

내가 흐르는 생명수의 시원함을 보여줘야한다.

 

십자가는 지고 있는 쌓음이 아니라

십자가는 따르는 흐름의 삶의 현장에 영광과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교회는 쌓는 곳이 아니다.

성도는 쌓는 사람이 아니다.

쌓으려는 곳에 바벨탑의 반복이 있을 뿐이고

흐르게 하는 곳에 오순절의 성령의 충만,

생수의 강이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가 힘이 없고

성도가 힘이 없고

같은 선교사 목사가 힘이 없나?

흐르지 못하게 하는 쌓음의 닫힌 때문이다.

 

십자가의 영성은 흐르는 곳에서 찬란한 고난의 영광이 이루어진다.

 

세상은 자격을 따려한다.

세상은 자격에 목숨을 건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자격에 목숨 거는 사람이 많아진다.

 

은혜의 세계는 자격이 아니라 흐름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어느 한사람 일군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 없다.

자격은 그저 주어지는 은혜다.

그런데 우리는 자격을 얻었음에도 평생 자격을 운운하며 주님께 더한 자격을 달라고 매달린다.

주님은 이미 자격을 주셨다.

그래서 일군의 첫번째 자격은 불려진 사람이다.

이미 자격으로 부르셨다.

자격이 있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부르셔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려진 사람으로 십자가를 지고도

자격을 십자가를 지고 따려한다.

 

학위를 따려하고

많은 돈을 벌려하고

많은 자격을 따려하고

많은 능력과 열매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자격>자체를 따려한다.

좋은 자격을 따고 많이 흐르게 하는 사람을 못지 못했다.

가끔 그런 귀한 분들을 만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자격 자체에 목숨을 걸지

자격을 통해 많이 흘러가게하고

자격을 얻고 많이 십자가가 흘러가게 하는 은혜의 삶을 살지 못한다.

 

이유는 자격이 쌓음의 방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영성은 자격이 아니라 흐름이다.

돈을 벌고

자격을 따고

학위를 따는 모든 것은

많은 흐름을 위한 도구이다.

 

많은 자격을 가지면 가질 수록

우리의 본성은 쌓으려는 마음이 강하다.

많은 자격을 가질 수록

많이 흐르게 하는 은혜가 있어야한다.

 

 

예수를 믿을수록,

인생의 경륜과 자리가 높아질수록

쌓음이 아니라 흐름이 많은

십자가의 사람이 되어야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자격을 주고

자리를 주고

힘을 주고 물질을 주는 것을

하늘의 뜻이 땅에도 흐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복음을 막고 있는 것은

세상의 죽어가는 영혼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고

십자가를 지고 그대로 있는

자격을 이미 얻은 우리들이다.

 

자격에 목숨을 걸지 말고

흐름에 목숨을 걸어야한다.

그것이 십자가의 영성이다.

 

하루를 살며

평생을 달려가며

무엇을 흘러가게 하고

어떤 것을 흐르게 할지 결정하고 살아야한다.

 

쌓고만 있고 흐르지 않는 !

십자가를 지고 그냥 서있는 합당치 않은 일군이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며 십자가의 영성을 요구하신다.

쌓지 말고 흐르게 하라.

그것이 십자가라고!

 

주님을 따르는 !

시간이 저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

용서가 저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

나의 물질이 저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

나의 마음과 정성과 뜻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영성,

그것은 <흐름의 법칙>입니다.

 

 

  *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은혜를 흐르게 실수 하는 것은

은혜를 흐르게 자격 있는 자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받은 은혜인데도 자꾸 은혜를 흐르게 자격 있는 자를 찾습니다.

나도 그저 받았는데 은혜를 자격 있는 자를 찾아 주려합니다.

아닙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야합니다.

죄인 같고

말이 통하지 않고

용서할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람이 어쩌면 내가 받은 은혜를 받을 자격 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에게 십자가입니다.

눈물입니다. 아픔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라고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흐름의 법칙>입니다.

자격 없는 곳에 십자가의 은혜가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대하고 다른 사람을 대해도 자격으로 대하지 않고

다만 흐름의 시각으로 대할 십자가의 은혜가 풍성할 것입니다.

 

선교지는 자격을 찾는 곳이 아니라 그저 흐름이 있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자격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흘러온 은혜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자격없는 저들에게 나누는 !

그것이 선교입니다.

그래서 나의 선교 현장은 나와 같은 사람 한사람에 전부를 거는 것입니다.

눈물이고

아픔이고

외로움이지만

그저 묵묵히 나의 받은 십자가의 사명을

흘러 흘러

생수의 강을 저들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오기스교회에서 장로 5명과 안수집사 3명을 임직했습니다.

일의 주역인 토고자니 목사입니다.

나의 십자가의 은혜가 흘러가는 새로운 십자가의 현장입니다.

그가 또한 새로운 은혜의 강으로 인도하는 십자가를 주님의 일군

십자가의 사람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