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대로 되는 인생7 (마9:35-38)
복음의 핵심이 뭡니까?
예수를 따르는 삶의 핵심이 뭡니까?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까?
오늘 성경은 마태복음 5장부터 9장에 이르는 수 많은 복음의 진수와
예수님의 하신 일을 정리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
어느 상황에 갑자기 들어온 사람은 지금의 상황이 좋은지 않좋은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 남아공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자유는 있는데 사는 것이 더 악화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가 날아온 여행자들은 남아공은 지상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의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
원래 창조된 세상을 아는 하나님은 지금 이 세상이 얼마나 아프고 병들고 고통하는지 아십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미다 일을 하셨는데 그 일이 다른 일이 압니다.
그 일은 모든 병과 약한 것과 천국의 원래 아름다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시며 예수님께서 마지막을 우리에게 던지 숙제는 바로 일꾼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일꾼을 보내 달라고 요청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일군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일군은 하나님이 주셔야합니다.
위대한 일군은 위대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위대한 일군을 위해,
추수할 일군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9:38)
예수님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일군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을 정해서 부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람을 받으신 것입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17:9]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권한을 하나님께 맡겼다.
자기가 데리고 훈련한 자신의 제자들 조차도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고백이 먼저 있어야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람!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군조차도 하나님이 주셔야한다고 믿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요청하라고하신다.
우리는 착각한다.
세상의 것도,
제자도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작은 일군 하나도 하나님이 주셔야한다.
작은 물건 하나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한다.
머리털도 헤아리시고 참새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지지 아니할만큼
하나님은 철저히 우리의 삶을 아시고 주관하신다.
그런 하나님 앞에 우리는 사람 하나도 하나님의 일군으로 얻도록 기도해야한다
우리는 실패한다.
사람에 대해서.
그것이 가장 큰 실패다.
내가 보기에 좋은면,
내가 생각한 조건에 맞으면 그 사람을 선택한다.
그런데 늘 실패다.
왜?
잘못된 그리스도의 관점,
잘못된 예수님의 관점을 가진 상태에서 보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늘
힘의 논리,
세상의 논리로 선택하게 된다.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
능력이 뛰어난 사람,
뭔가 일을 잘 해낼 사람을 고른다.
그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그런데 늘 그렇게 접근하면 실패한다.
하나님의 일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이 정답이다.
<내게 주신> 사람이 정답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말한다.
우리의 일그러진 세상의 관점의 일군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하나님의 기준의 사람을
보내주시기를 구하라는 것이다.
기도의 기준이 다르다.
우리의 기도는 늘 우리가 정한 기준이다.
그래서 늘 실패다.
그 기도의 기준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내도, 남편도,
일을 할 때 만나는 파트너도 우리는 늘 내가 보기에 좋은 대로 정하고 고른다 .
그래서 망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어떤 일을 해야할지를 보여주시고 그 마지막으로
요구한 것이 바로 <일꾼>이다 .
그 일꾼을 찾으라 하지 않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참 믿음은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내게 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아담이 하와를 얻은 것은 찾아 다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어주셨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우리가 구하고 요청하면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내게 오게 하신다.
그리고 이 사람이다라는 마음을 주신다.
그래서 기도는 <기다림>이다.
내게 주신이 이루어질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기도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기다리지 못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기준이 일을 한다.
그러면 늘 망한다.
사람 때문에 평생을 고생하고,
사람 때문에 늘 눈물의 이유가 된다.
<내게 주신>이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의 길이다.
사람들이 가장 고생하는 것,
바로 일꾼,
바로 사람이다.
하나님의 내게 주신을 따라가면 우리는 늘 가장 평안하게 간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간다.
그런데 우리의 방법,
나의 기준으로 일꾼을 선택하면
그 사람 때문에 평생을 골치 아프다 .
내가 선택하고 내가 아프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길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간다.
나를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아니다.
그건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는 방법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나의 기준의 결과다.
이런 경우 답은 하나다.
허다한 눈물을 쏟아야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시간을 기다려야한다.
눈물로 회개하면서….
한번 잘못된 선택은 평생을 눈물로 보내게되는 것이 이 세상이다.
한번의 손,
한번의 선악과를 먹은 것이 인류 대대로 아픔을 주듯이
하나님 보다 앞선 일꾼의 선택은 긴 시간 동안 후회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의 관점을 다시 생각해야한다.
셋째, 우리의 믿음의 목표는 병을 고치고 약한 것을 고치고 귀신을 쫓는 능력이 아니다.
자칫 우리는 일꾼에 초점을 두고 산다.
왜?
믿음의 일속에 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서이다.
나를 증명하고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나의 힘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보다 앞서서 내 보기에 일 잘하고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을 선택한다
그것이 무덤이다.
그것이 생각의 무덤이다.
그것이 인간사의 무덤이다.
우리의 사역속에,
우리의 삶속에 이런 일들을 기대한다.
병이 낫고 약한 것이 회복되고 귀신이 쫓겨나고..
천국 복음이 전파되고…
그래서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위해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오는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꾼>이다.
그 일꾼은 나도 포함이 된다.
나 자신이 그런 일꾼이 되기를 기도한다 .
그런데 이 모든 일꾼의 조건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생각하지 못한다.
약한것과 병든것을 회복하는 능력,
귀신을 쫓는 능력,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의 기초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넷째,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마음이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9:36)
그 예수님의 마음은
첫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능력을 구하는,
천국 복음을 전하는,
능력 있는 일꾼이 되고,
능력 있는 일꾼을 구하는 기초는 바로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예수님 사역의 기초,
성육신의 기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모든 마음의 근거는 바로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 마음을 빼고 다 본다.
우리는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빼고 능력을 보고
조건을 보고, 사람을 보고, 일꾼을 본다 .
예수님의 사역의 핵심은 바로 이 불쌍히 여김이다.
우리는 이 마음을 빼고 다 구한다.
우리는 이 마음을 빼고 모든 조건을 보고 일꾼을 본다 .
그래서 일꾼을 뽑고 사람을 구하면 늘 실패한다.
이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가진 모든 능력은
자신의 것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어떤 좋은 조건을 가져도 일꾼이 될 수 없다.
아니 일꾼에서 삯꾼이다 .
양에 대한 불쌍한 마음 없는 일꾼을 삯꾼이 된다.
일꾼의 첫째 조건은 바로 이 영혼에 대한 불쌍히 여김이다.
그래서 영혼을 붙잡고 안타까움과 아품에 눈물 흘리지 못하는 사람은 일꾼이 되지 못한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만이 일꾼이 되는 것이다.
둘째, 목자 없는 양으로 보는 마음이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9:36)
그들의 능력이 보이는 순간 일꾼이 될 수 없다 .
그들의 힘이 보이는 순간 참 목자가 될 수 없다 .
그들의 <고생>하며
<기진함>이 보여야한다.
그것이 일꾼의 조건이다.
구역장으로, 목장으로, 각종 모임의 리더로 일을 할 때 우리가 놓치는 것은
영혼의 고생과 영혼의 기진이 보여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목자의 조건이다.
그것이 일꾼의 조건이다.
이것이 예수님 사역의 핵심 마음이다.
이 마음 없이 사람을 보고
이 마음 없이 일을 하면 일을 할 수록 사람을 힘들게하고
이 마음 없이 사람을 대하고 일하면 갈수록 <고생>과 <기진함>이 더해진다.
일꾼의 기초는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목자 없는 양들을 보는 목자의 마음이다.
이 마음 위에 병을 고치고 능력을 보여주고 천국복음을 전파할 때
복음 안에 거하게 된다.
이 마음 없는 모든 일과 사람은 오직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방편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내 목적을 위한 도구가되고
그래서 일은 내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직 한가지에 초점을 가지고 일하셨다.
하나님의 마음 즉 목자 없는 양이다.
믿음의 방향이 어디이어야 하는가?
영혼이다.
내가 보는 영혼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시는 불쌍히 여기심과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상태의 영혼들이다.
이것이 믿음이 찾아온 이유고
우리가 일꾼이 되고 일꾼을 요청하는 이유다.
믿음을 구하며
이 마음을 구하지 않고
이 방향을 구하지 않는 모든 믿음은 결국 가짜라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바라는가?
오직 영혼이다.
이 영혼에 대한 아픔과 눈물과 가슴 저리는 통회가 없는
믿음은 결국
나의 성을 쌓기 위한 방편으로 믿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일꾼이 되기 전에 이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일꾼을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이 마음을 가진 자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비록,
실력은 없고
비록 능력은 없고
비록 가진 재주는 없지만
하나님은 영혼에 대한 이 마음을 가진 자에게
결국 실력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재주도 주신다.
실력도 안주시고 능력도 안주시고 재주도 안주시면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을 <옆에> 두게 하신다.
제자들은 이 모든 능력을 다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초대교회를 빛낼 사람들,
예수님을 수없이 섬긴 이름 모를 여인들과,
예수님을 장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초대교회의 부흥을 이끈 순교자 스데반과
죄인 중에 괴수 사도 바울까지…
이 마음을 가진 사람들,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불쌍히 여김과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고생과 기진함을 보는 사람.
그 사람이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주여 우리로 이 마음을 갖게 하소서!
* 많은 사람들이 선교지를 오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일들을 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기대하고 내가 바라는 신앙의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아닙니다.
선교의 시작은 그들의 마음,
그들의 아픔을 보면서
예수님의 그 마음,
불쌍히 여기심과 고생과 기진함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선교의 시작,
사역의 시작,
인생의 시작은 이 예수님의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 인생과 사역의 시작이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