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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대로 되는 인생6

믿는 대로 되는 인생6

 

 

 

 

 

 

 

 

 

믿는 대로 되는 인생6 (마9:27-31)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미 보고 나왔습니다.

예수를 보기 전에 예수를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것은 그들의 마음에 찾아온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마음에 믿어진 것을 잡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이미 이루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언이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11:1-2)

 

믿음의 선진들은 보지 못하지만 마음에 보여지는 ,

마음에 믿어지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것이 어떤 일을 증거를 받은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나

마음으로 보는 어떤 사실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마음에 그려지는 ,

아무리 눈으로 보지 못해도 마음에 믿어지는 !

그것을 붙잡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와서 보고 믿는 사람과

이미 예수의 말씀과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이미 믿고 나온 사람은 결과가 다릅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행위로 믿어지면 그것은 이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믿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냥 믿음이 하늘에서 안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냥 믿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행위로 만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냥 선물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오늘 소경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들이 한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에 믿은 바를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9:27)

 

다윗의 자손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소경들이 그리스도로 예수를 믿고 그들에게 구원하여 주기를 바라며 따라온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에 예수님이 고칠수 있는 분으로 믿고 찾아오며

소리를 지르며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가만히 있을 없습니다.

마음에 믿음이 찾아온 사람은 믿음의 때문에 소리치지 않을 없습니다.

 

첫째, 믿음은 나를 끌고 가는 어떤 힘입니다.

 

말씀이 찾아오면 인생 전부를 끌고갈 강력한 어떤 힘이 나를 지배합니다.

아무리 소리 치지 말라해도 소리 밖에 없는 어떤 힘이 있습니다.

힘은 아들을 바치라 해도 바칠 있는 힘입니다.

힘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해도 따르게 되는 힘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릴 있다고 믿는 힘입니다.

 

 

힘은 성경이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만 찾아옵니다.

믿음은 기적을 통해서 찾아오지 않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만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기적을 그들에게 행한적이 없습니다.

다만 말씀하시고 비유하시고 그것을 깨달았는지 확인하셨습니다.

 

말씀이 찾아오면 마음에 저절로 찾아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둘째, 믿음은 마음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림입니다.

 

말씀이 찾아오면 마음에 내가 믿어야지 믿어야지라고 결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려지는 명확한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것이 바라는 것의 형상으로 마음에 찾아옵니다.

그것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진짜 이루어질 일처럼 마음에 실제적 그림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그림이 마음에 그려지는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마음에 그림으로 선명하게 찾아오면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은 말씀과 함께 안에서 강력하게 나를 이끄는 그림이 되어 증언합니다.

 

상징적인 의미로 소경들이 고침을 받는 기적들을 가는 곳마다 행하십니다.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라면 소경들은 제외 되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가는 곳은

반드시 소경들이 고침 받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이유는 눈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려진 믿음을 이루어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믿음은 마음입니다.

마음에 찾아온 하나님이 주신 그림입니다.

그림이 나를 이끌어갑니다.

 

행위를 통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찾아오고

찾아온 믿음이 나의 전부를 걸어도 만큼 강력해서

전부를 던질 있는 실상이 됩니다.

 

셋째, 나를 던지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실상처럼 보이는 그림을 위해 전부를 던지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반드시 전부를 드립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라고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아들을 바치고,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고,

믿음으로 부모는 아이를 숨기고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고

믿음으로 유월절을 지켰고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돌았고

믿음으로 기생라합은 정탐꾼을 숨겼습니다.

 

작은 하나, 생사를 하나도 믿음으로 했습니다.

 

믿음,

마음에 그려지는 실상과 같은 그림인 믿음에

삶을 걸지 않고

삶을 던지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마음에 그려지는 대로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데 그냥 믿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현실보다 선명하게 이루어 일을 보고 걷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이 주실거야라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선명하게 주신 그림을 붙잡고 명확하게 걷는 삶의 현장입니다.

 

막연한 복과 축복을 기대하면서 드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처에게 비는 것이나

부적을 가지고 막연하게 나를 지킬 것이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실상을 잡고 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명확하게 보여지는 것을 잡고 확신하며 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아들 이삭을 바치러 때에 당당하게 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아들을 바치는 것에 갈등을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그는 단숨에 칼을 내리치리만치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갔습니다.

하인에게 반드시 아들과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22:5)

 

 

<우리가> 입니다.

<> 아닙니다.

그는 마음에 주신 실상,

마음에 주신 그림,

마음에 주신 믿음으로 갔습니다.

 

왜요?

그는 이미 영생, 부활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22장전에 21장에서 그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21:33

 

그는 아들을 바치기 전에 이미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영원하시는 하나님,

죽은자를 소생케 하시는 하나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을 바치라는 음성에 그는 믿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활하시는 능력으로 아들을 일으킬 것을 믿었습니다.

 

 

이미 그에게 현실보다 선명한 믿음,

실상으로 찾아온 마음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았기에 그는 이삭을 갈등 없이 바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갈등했다면 믿음의 조상이라 말할 있습니까?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실상보다 선명한 그림을 마음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따라간 것입니다.

 

가다보면 하나님이 주실거야가 아닙니다.

믿음의 세계는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영생을 실상으로 믿고,

믿음은 먹고 사는 문제는 절대적으로 믿고,

믿음은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선명하게 마음에 주시는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데 던지는 것은 바보입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데 걷는 것은 길없는 사막을 걷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이 와야합니다.

먼저 예수를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

말씀이 오면 우리 안에 믿음이 옵니다.

구체적으로 소망없는 문제를 가지고 가면 주님은 말씀과 함께 믿음, 그림을 주십니다.

그것을 잡고 걸음을 걷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실수 하는 것이 있습니다.

넷째, 뭔가를 해서 믿음을 얻으려합니다.

 

아닙니다.

믿음의 길은 가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얻고 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실히 믿어지는 ,

그것을 잡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보이고

성령이 안에 찾아오시면 명확하게 보고 가는 길이 믿음의 길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가지가 없습니다.

 

십가가가 안에 없든지

성령이 안에 없든지!

 

아브라함은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십자가와 영생입니다.

 

영생이 믿어지면 세상에 믿음으로 걷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믿어지면 세상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성령이 안에 오시면 마음속에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나고,

성령이 안에 머물게 해야합니다.

가지가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외에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 짐이 됩니다.

뭔가 해서 믿음이 오지 않습니다.

모든 기도는 예수를 향하고

모든 신앙은 성령을 통합니다.

 

믿음의 길은 십자가와 영생 성령입니다.

흙이 세상을 따라가면 흙입니다.

영생인 사람이 흙이 것은 세상을 따라서입니다.

그곳에 다시는 하나님의 영이 있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영생이 되었다 다시 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6:3)

 

그런데 흙이 다시 영생이 되려면 하나님의 영이 와야합니다.

영이 와야 믿음의 길을 다시 걷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소통된 언어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영이 떠나자 믿음의 대화, 믿음의 눈이 사라졌습니다.

,

성령의 영이 와야 영생이 됩니다.

흙이 영생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
성령은 오직 십자가를 지나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늘로 가시고 성령이 사람에게 임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사람,

흙이 영생이 되는 것은 사람을 떠난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십자가를 지나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니 영생이 왔고

영생이 왔으니 영원의 존재가 되었고

영원의 존재가 되었으니 믿음으로만 사는 존재가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영생의 존재만 나누는 대화가 믿음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나지 않고,

성령을 지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성령이 원하시는 대화를 들어야합니다.

성령의 호흡을 가져야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성령과 호흡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께 묻고

그분이 보여주시고 그려주시는 그림을 잡고 담대히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걸음은 바로 성령께서 그림을 주시는 대로 자취입니다.

성령이 일한 흔적이 사도행전입니다.

 

가다보면 믿음의 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안에서 사는 것은 선명하고 명확하여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가기에 충분한 길입니다.

마음을 성령께서 믿음이라는 실상으로 우리 마음에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

그림이 안에 찾아오면

우리는 전부를 거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전부를 거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으로 가지 못하나?

아직 내가 믿을 것이 있어서

성령의 음성이 아니라 다른 어떤 믿을것을 붙잡아서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해서입니다.

 

들리면 갑니다.

보이면 갑니다.

문제는 들리지 못하게

보이지 못하게 하는 내가 믿을 것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소경도,

죽은 딸을 관리도,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도 모두

세상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만이 성령의 음성,

복음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소망 없는 사람들과만 믿음으로 대화하십니다.

선명한 믿음의 실상을 보여주십니다.

 

오늘도 자꾸 가지는 훈련이 아니라 버리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진짜 그림이 보입니다.

너무 많이 가지면 영원의 호흡을 하기 어렵고

육체의 호흡,

흙의 호흡만 무성할 뿐입니다.

 

믿음은 놀라운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흔드는 것입니다.

믿음을 세상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실상으로 찾아오기를 기도합니다.

 

 

  * 연꽃입니다.

작은 씨앗입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어떤 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저 씨앗,

모든 자랄 것과 아름다움을 품은 씨앗입니다.

작은 씨앗이라도 그림을 그리는 생명의 씨앗이 이런 아름다운 영광을 만듭니다.

 

우리 안에 이런 영광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은 작은 믿음의 실상의 그림이 있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하늘의 영광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