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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걸림돌 4

믿음의 걸림돌 4

 

 

 

 

 

 

 

 

 

 

 

믿음의 걸림돌 4 (마9:14-17)

 

죄인 의식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교>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내가 가장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소망 없는 자신에게 예수님은 생명 자체입니다.

그런데 죄인 의식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공로>입니다.

 

믿음의 걸림돌 네번째는 바로 <공로> <업적>입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가만히 보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일년에 정해진 금식도 하지 않습니다.

죄인들과 놀고 먹는 예수님과 함께 종교적인 고행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들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래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9:14)

 

같은 제자인데 누구는 금식하고 누구는 금식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말이 많아지는 것은 잘하는 편에 사람들입니다.

 

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하는 편이 말이 많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비교의식에 기초한 공로와 업적입니다.

 

우리를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게하는 가장 먼저 찾아오는 마음은 비교입니다.

 

나와 세상을 비교하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비교하고

자와 작은 자를 비교하고

있는 자와 없는 자를 비교합니다.

 

비교는 사단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사용했던 무기입니다.

사단은 무슨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단지 비교하게 합니다.

그런데 비교에 걸려드는 이유는 바로 공로의식이고 업적의식입니다.

 

가만히 보니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했습니다.

누구보다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에게 세례요한의 수제자, 세례요한의 제자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것이 없습니다.

금식도 없고, 안식일에도 이삭을 잘라먹어 율법을 어깁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누가 불편합니까?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공로가 있고,

내가 업적이 있고,

내가 헌금을 많이 하고,

내가 새벽기도를 많이 하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내가 부엌에 많이 있고,

내가 누구보다 전도를 많이하고…

 

많이 하는 사람들 마음에 불편함이 있습니다.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들,

나보다 열심히 안하는 사람들을 비교하니 하나님께 불만입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불만을 예수님께 솟아 놓는 것입니다.

 

믿음의 걸림돌,

공로와 업적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사단은 없을 때도 우리를 사용하지만

사단은 있을 때도 우리를 사용합니다.

사단은 못할 때도 우리를 이용하지만

사단은 때도 우리를 사용합니다.

 

사단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고

예수님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우리를 살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없을 때는 없기 때문에 가지는 것이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래서 없는 것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로가 있고 업적이 있을 때입니다.

그때는 기준이 나가 됩니다.

돈을 가지면 모든 평가의 기준이 믿음의 본질이신 예수님이 아닙니다.

돈이됩니다.

 

일을 잘하면 모든 평가의 기준이 나의 업적이 됩니다.

나와 같이 하지 않으면 틀린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오 같이 하지 않는 자는 틀리고

문제로 이야기하는 우리의 공로의식이 문제가 됩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입니다.

어제 이야기 했던 주관적 죄인의식이 믿음으로 가는 본질인데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마음에 공로가 자리를 잡고 모든 사람을 평가하는 자리에 있게 됩니다.

 

사단은 주관적 죄인 의식을 없애기 위해 우리에게 모든 축복을 허락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허락한 축복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축복이 마치 나의 공로, 나의 업적으로 된것처럼 생각하게합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을 내면 수록 사단은 공로를 공식화 하라고 말하고

업적을 세상사람들이 알도록 알리라고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의 기준,

모든 평가의 기준이 나의 공로와 업적으로 삼게합니다.

 

이런 분들의 말에 있는 것이 있습니다 .

그것은 "내가 옛날에..."

"왕년에 나는"

"그건 내가 했지"

" 일을 내가 했다"

" 사람 내가 키웠다"

 

모든 말에 바로 "", 아니면 "" 있습니다.

내가 어떤 유명한 사람을 아는 것도 공로가 되고 업적이 됩니다.

비교의식입니다.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바로

<공로의식>으로 예수님께 접근합니다.

 

나는 이렇게 금식하는데 당신들의 제자는 금식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조그마한 공로가 생기고 업적이 생기면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교회를 향하여,

어느 누구를 향하여도 말할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걸림돌입니다.

믿음은 나의 공로도,

나의 업적도,

나의 어떤 것도 구원의 이유,

믿음의 이유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의 길을 가는데 반드시 해야할 일을 가르치칩니다.

 

첫째, 새로운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모든 기준이 나의 어떤 공로와 업적이었습니다.

율법이 그렇습니다.

뭔가를 해야 되었습니다.

모든 법을 지키고,

모든 규례를 지켜야했습니다.

그것은 죄를 깨닫는 기능이었습니다.

법은 지키고 지켜도 지키지 못합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고 더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합니다.

공로와 업적으로 말입니다.

누가누가 잘하나로 좀더 하면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해서 잘난 나를 구원의 이유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낡은 옷과 옷을 같이 깁는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포도는 가죽부대로 담아야한다고 하십니다.

 

이전 기준에서 새로운 기준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고

낡은 천이 찢어지고 낡은 가죽 부대가 터진다는 것입니다.

 

이전 의식,

이전의 공로의식,

이전의 업적의식,

이전의 의인의식,

이전의 율법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기준인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담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금식의 기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금식은 예수님을 잃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9:15)

 

모든 기준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금식하고

그분이 아파하면 금식하고

그분이 안에 명확해지지 않으면 금식하고

그분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금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준이 예수님입니다.

나의 기준에서

나의 공로에서

나의 업적에서 기준이 예수님께로 바뀌어지는 !

기준의 변화가 바로 천국의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로의식으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래서 일등만 만들고

그래서 일등이 아니면 모두 열등아로 만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가장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

돈을 많이 벌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

교회를 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접 받는 교회로 만드니

그곳에는 천국이 없고 오직 갈등과 아픔만 남습니다.

 

모든 공로를 없애야하고

모든 업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고백해야합니다.

옆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갈등을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앞에 스스로 돌아켜야합니다.

스스로 내가 행한 공로와 내가 세운 업적과 내가 이룬 종교적 결과를 내려놓아야합니다.

그것을 내려놓고 그저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곳에

천국의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압니다.

이미 공로가 많고

이룬 것이 많고

뭔가 많이 가진 사람이 글을 읽으면 불편합니다.

이미 가진 것이 많아서입니다.

벌써 공로와 업적으로 얻은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새포도주로 세워진 곳입니다.

그곳에서 낡은 가죽부대로 그것을 담기에는 갈등이 깊고 아픔이 깊습니다.

 

당대의 가장 탁월한 영적인 사람 세례요한의 제자들조차도

이것을 버리기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좁은 길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찾아오는

하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그래서 아무나 찾지 못하는,

공로를 말할래야 없는

죄인과 창기와 세리만 가는

죄인들의 잔칫집이고

죄인들의 천국입니다. 

 

 

 

  * 가장 낮은 자와 함께 자신의 신분과 있고 없음을 내려놓고

그저 함께 손을 잡는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레이스 펠로쉽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남서울 은혜교회 선교팀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갔습니다.

그들의 삶이 잔칫집이고

천국이기를 기도합니다.

한국의 한가운데인 강남에서 사는 그들의 삶에

천국 가운데에서 얻는 하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