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걸림돌1(마8:28-34)
무엇이 믿음에 걸림이 됩니까?
그것은 <관점>입니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자 두 명에게 명하여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 귀신들이 돼지떼에게 들어가 돼지 이천을 물에 빠뜨려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보고 간구합니다.
"떠나주십시오"
예수님의 관점은 두 사람의 삶과 영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점은 귀신들린 두 사람의 삶과 영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손해 보는 것 뿐입니다.
두 사람이 귀신에서 벗어나자 돼지 이천 마리가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관점은 오직 하나입니다.
얼마나 손해보고 얼마나 이익을 보느냐입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믿음의 걸림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이익을 따지는 존재 아니면 손해를 끼치는 존재로 구분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익을 주는지 그 사람이 나에게 손해를 주는지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에 자유한지 그렇지 못한지로 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으로 대하십니다.
우리의 존재는 영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를 영원으로 보지 않고 이익이냐 손해냐로 봅니다.
세상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귀신이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익을 따지는 사람들에게,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사람들의 토양에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믿음이 자리지 못하고 오직 물질적 계산만 있습니다.
복음의 상식은 그 영혼이 귀신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그의 인생이 얼마나 아픈지를 생각하고
그것에서 자유하기 위해 모든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상식은 그 영혼이 얼마나 아픈지
그 영혼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보는지만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상식입니다.
그곳에는 예수님이 거할 곳이 없습니다.
이익만 따지고 손해만 따지는 곳에는 영혼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삶을 더욱 이익이 생기게 하고 더욱 장사가 잘되게 하고
우리의 인생이 더욱 빛나게 만드는 축복의 예수님이 필요할 뿐입니다.
두 사람의 인생, 두 사람의 영혼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돼지 이천마리가 중요합니까?
말도 되지 않고 질문도 되지 않는 이 말이
말이 되고 질문이 되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아니 교회입니다.
그 목사가 돈이 되는지,
그 목사가 얼마나 사람을 끌어 모으는지
그 목사가 얼마나 이익이 되고
그 목사가 얼마나 이익을 남기는지를 계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성도가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는지,
그 성도가 얼마나 전도를 많이 하는지,
그 성도가 얼마나 교회에 이익을 주는지만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자녀가 얼마나 좋은 직장을 다니는지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목사가 얼마나 영혼을 사랑하는지
성도가 얼마나 영혼을 아끼는지
우리의 부모님의 영혼이 얼마나 존귀한지는 보지 않습니다.
친구를 대할 때,
사람을 대할 때 그런 영혼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은 이미 진부하고
재미없는 시대입니다.
본질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기능이 됩니다.
기능으로 사람을 대하고 기능으로 교회를 대하고 기능으로 믿음을 계산합니다.
그곳에는 오직 예수님이 떠나야 하는 일만 남습니다.
모든 것이 돈이 되고 이익이 되고
모든 것이 계산대 위에서 계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고
귀신보다 더 악한 세상입니다.
귀신을 쫓고
영혼을 자유하게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면 더 많은 귀신을 쫓아 내면 더 많은 손해가 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그곳에 예수님을 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계산의 신앙을 버려야합니다.
우리의 이익의 믿음을 버려야합니다.
그것은 신앙도
그것은 믿음도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영혼의 자유와 기쁨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걸림돌은 바로 계산입니다.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되는 것을 절대 하지 않는 우리의 약삭빠름입니다.
돈이 되고 이익이 되면 하고
손해가 되면 철저히 무시하고 포기하는 신앙과 교회는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기를 간구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자유케하기 위해서
돼지 이천이 아니라 소 칠천도 아깝지 않을 분입니다.
아니 온 세상을 다 주어서도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돼지와 비교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소와 비교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개와 같이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세상보다 귀하게 여기고
주님은 온 우주보다 존귀하게 여깁니다.
우리의 자유함은
그런 주님의 관점,
그런 주님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자유케하는 우리의 영혼은 돼지 이천이 아니라 세상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나를 향한 주님의 그 관점과 마음으로
형제를 보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주님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이고 그것이 천국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이익을 보려고 예수를 믿느냐?
영혼의 자유함을 위해 예수를 믿느냐?
너도 가서 나와 같이 하라!
믿음은 이익을 따지지 않고 세상보다 소중한 영혼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기꺼이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 남서울 은혜교회 청년회에서 아프리카 코스타를 섬기고
저희 선교지에서 성경캠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첫날 오기스에서 캠프를 하고 개척지인 이라크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선교지에 가는 돈으로 더 멋진 일을 하지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선교지를 가느냐고!
그들은 두 사람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돼지 이천을 죽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한 영혼을 위해 세상을 다 버린 주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돼지 이천이 아니라 소 칠천도 한 영혼을 위해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선교의 본질입니다.
한 영혼 살리기 위해 이슬람지역에서 선교사님들은 평생을 바쳐 헌신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얼마나 손해냐고!
그들은 세상의 관점으로 이익고 손해를 따지지만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 돼지 이천을 기꺼이 죽이시는 주님의 마음을…
남서울 은혜교회 청년들이 그런 마음으로 오늘 여기 선교현장에 섰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더 많은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예수님을 떠나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익의 관점이 아니라
평생 주님의 두 영혼을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