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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대로 되는 인생1

믿는 대로 되는 인생1

 

 

 

 

 

 

 

 

 

믿는 대로 되는 인생1(마8:1-4)

 

인생은 사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는 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믿는 대로 되는 인생입니다.

<믿음>입니다.

 

산상수훈의 내용은 믿음을 전제로 한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8장부터 그 믿음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장 불가능한 일부터 보여주십니다.

나병환자입니다.

당시 나병환자는 가장 불결하고 중한 병이어서 사람들과도 격리하고 함께할 수 없는 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자 수 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 중에 나병환자가 가장 먼저 나아와 절하며 주님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깨끗하게 될 수 있다고 고쳐주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주님은 내가 믿는바 대로 대우한다는 것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8:2)

 

나의 사이즈는 믿음의 사이즈입니다.

내가 주님을 어떤 사이즈로 대하느냐는 믿음이 결국 내가 경험하는 믿음의 사이즈가 됩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환경이 어려울수록 믿음은 빛을 발합니다.

나병환자는 무리 중에 올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그는 예수님께 가장 먼저 나아옵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면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나의 환경에 매여,

사람들의 시선에 매여 자신을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장 악한 일이 무엇인가?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일은 무엇입니까?

나의 모습에도,

환경의 어려움에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환경을 초월하는 <나아감>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8:2)

 

<믿음>의 다른 말은 <나아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으로 일하지 않고 믿음에 근거해 대우하십니다.

그럼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나아감>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믿음은 나아감의 과정을 지나게합니다.

나아감이 없는 믿음은 군중입니다.

무리입니다.

나아감의 의미는 믿음을 전제합니다.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힘은 나아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부터 예수님께서 죽어가는 세상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는 분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그 구원자 예수님이 구원자로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마음에서 나아감의 삶을 보여주는 사람에게만 나타나십니다.

 

나병환가가 그렇고,

하인을 고치려는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그렇고,

베드로의 장모의 집에서 귀신 들리고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온 자들에게 한 것이 그렇습니다.

 

믿음은 나아감을 증명됩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수 많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아온 자들만이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되심을 경험했습니다.

 

믿는 자는 반드시 나아감의 발걸음이 있어야합니다.

내가 열심히 사는 것으로 증명되지 않고 믿는 것으로 인한 주님께 나아감의 발걸음으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는 겸손입니다.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8:2)

 

나병환자는 믿음에 근거한 나아감을 지나 자신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면>입니다.

 

믿음은 인격입니다.

믿음은 막무가내가 아닙니다.

믿음은 철저히 인격의 터 위에 일합니다.

 

나병환자지만 그는 오랜 병중에도 그의 인간적인 무너짐이 없습니다.

그가 가진 믿음이 비록 무리 중에 가장 먼저 나아오게 했지만

그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인격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원하시면>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대목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인격으로 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무슨 우상이나 인격이 없는 주문만 외면 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님은 철저히 우리와 대화하고 인격적으로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으나 주님이 계획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고 기다리고 의중을 알아보는 인격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비록 오랜 세월 나병으로 고통 받는 그지만

그는 주님의 <원하시면>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어려운 세월을 오래 겪은 사람은 막무가내가 됩니다.

비인격적인 언행과 사람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적 사고와 대화와 행동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기도와 신앙과 믿음은 늘 일방적입니다.

 

내가 원하는 ,

내가 바라는 것만 구하고 찾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의 주님되심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격>이신 주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병환자만 그런것이 아닙니다.

내일 나올 백부장도 그러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집에 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주인이 하인에게 하듯 명령만 하라고 그를 주인으로 인격적으로 대우합니다.

그에게 이런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칭찬하는 대목까지 나옵니다.

 

신앙은 막무가네 기도가 아닙니다.

믿음은 막무가내 바람이 아닙니다.

 

<나아감>의 수고와

<원하시면>의 인격적 결정권을 주님께 드리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이모든 것은 <믿음>이라는 본질에서 나온

믿음의 <얼굴>과 믿음의 <발걸음>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사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는바 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는 대로 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사는 대로 대우하지 않고 믿는 대로 대우하십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살아서 왕이된 이야기가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해서 천국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에게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내 맘에 믿는 바가 나를 만들어갑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찾아와야 한다는 숙제가 남습니다.

믿음이 나를 이끌어야 한다는 숙제가 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에 믿음이 어떻게 찾아오는가?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도의 제목입니다.

내일 계속합니다.

 

 

 

 * 믿음은 아무리 거친 곳을 가도 믿음의 길이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타고가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험산계곡이라도 믿음의 길을 가면

그곳의 경치는 아름답게보이고 천국처럼 느껴집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

그것이 우리의 삶이어야합니다.

그 믿음의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의 숙제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