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다른 말은 <시선의 변화>입니다(마7:1-12)
죄가 시작되는 모든 시선은 <나>에서 <저> 사람에게입니다.
모든 기준이 나로부터입니다.
죄의 고향은 <비교>입니다. 그 비교는 시선으로 드러납니다.
믿음은 나에게서 나오지 않고 당신에게서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성숙은 나의 시선에서 저 사람의 시선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는 나에서 하나님이 바라보는 나로 바뀌는 것이
믿음이고 성숙이고 신앙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의 시선으로 나의 인생을 보는 것입니다.
그 시선이 멈추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의 끝인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에서 자유하라고 하십니다.
왜 자유하지 못하는가?
내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의 인생을 보면 결국 보이는 것은
먹고 사는 것만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의 입장에서 너의 인생을 보면 먹고 사는 것만 보이는데
그 시선을 하늘의 새를 보라고 하십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시선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새를 보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들의 백합화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선으로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끝까지 그 시선을 잘못가집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자기를 향하여 잘못된 시선의 방향이 결국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조시하라하십니다.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자기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그것은 <비판>입니다.
왜 비판하는가?
바뀌지 않은 시선,
하나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나의 입장에서 너를 보면 결국 비판하게 됩니다 .
나의 시선은 결국 나를 보지 않고 남만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판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나를 보지 못해서입니다.
나의 시선은 나를 보지 못하고 남만보는 것입니다.
비교의 기준은 늘 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변하지 않은 나는
결국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자리에 않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나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다른 사람도 볼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시선이 없으면 우리는 결국 아직 시선이 변화되지 않은 또다른 나와 같은
개와 돼지에게 밟히고 찢기게 됩니다.
믿음은 무엇인가?
시선의 변화입니다.
나에서 하나님으로
나에서 너의 입장에서 보는 시선의 변화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상수훈의 마지막 결론인 12절 말씀을 하시기 전에
너무 놀라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먼저하십니다.
12절의 핵심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는 것이 율법이고 선지자입니다.
그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들이 한 일이고 말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율법을 세우시고 선지자를 보내신 핵심은 그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고 두드리면 열리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를 대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이 바뀌고 우리의 삶이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기를 바라고 대우하기를 바라는 삶이 율법의 핵심 선지자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며 하나님 자신도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메시지의 핵심이 아니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처럼
우리가 나의 입장이 아니라 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그런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는 시선이 믿음이라 했습니다 .
그 믿음의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사는 것이 결국
율법이고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 믿음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선>이 바뀌지 않은 믿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믿음은
결국 우리를 개와 돼지가 되게하고 우리를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되게합니다.
결국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시선의 변화입니다.
나의 시선이 아니라
너의 시선으로
나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인생을 보고
그들의 인생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다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와 새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이
우리에게 있을때 우리는 나의 인생에 갇히지 않고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얻을 수 있고 얻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렇게 구하는 자의 시선에서
찾는 자의 입장에서
두드리는 자의 마음에서 주시는 하나님처럼
모든 세상을 살때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삶을 사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산상수훈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기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시선을 가지지 못한 자,
이 상대방의 입장을 살지 못한 자가 가는 곳이 지옥이 됩니다.
그들이 가는 곳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믿음은 구한다고 다 얻게되는 것이 다가아니라
믿음의 눈인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
하나님의 입장으로의 시선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다른 말은
<시선의 변화>입니다.
시선이 바뀌지 못하면 비판하고
염려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하고
기도도 금식도 구제도 돈도 다 자기가 기준으로 삼는것입니다.
축복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시선의 변화를 가지는 것입니다.
나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의 시선에서 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뀌지 않는 교회,
이것이 바뀌지 않은 사람이 있는 곳은
천국의 이름표를 붙인 지옥이 될 뿐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시선의 변화입니다.
그 변화가 내 안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작점이 바로
눈물입니다.
눈물은 세상을 바라보는 초점이 거꾸로 보이게합니다.
지금까지 나의 시선이 아니라 눈물때문에 그 초점이 거꾸로 보이면서
그 사람들의 시선을 갖게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눈물도 포함이 됩니다.
그러나 그 눈물의 진정한 열매는 시선의 변화입니다.
눈물이 찾아오지만 시선의 변화가 없는 눈물은 그냥 눈물이지만
시선의 변화를 얻는 눈물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구하면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장과 너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이고
그 시선으로 사는 삶이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그분의 시선으로 살아내는 발걸음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입니다.
그 발걸음과 훈련이 모여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시선의 변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
그곳이 천국입니다.
시선이 변하지 않은 내가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천국에서 사시고 싶으십니까?
당신의 시선을 먼저 바꾸십시오.
그러면 천국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
천국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 여기는 남아공입니다. 남아공에 잘 정착을 했습니다.
비운 집을 정리하고 요하네스버그 한인교회에서 보고하고 설교도 했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좋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함께 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사역은 영적인 부담이고,
삶은 지칠수 있지만 함께하는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힘을 얻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의 사랑과 함께함으로 힘을 얻었습니다.
일일이 다 인사를 못드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받은 사랑과 함께한 기쁨으로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요…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이곳에서 또 사랑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인해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또 달려가야 하는 현장이 있습니다.
다음주는 남서울은혜교회 선교팀과 일주일간 선교가 있고
두주 뒤면 남천교회 선교팀이 찾아오시고
집이 계약이 다되어서 다음달까지 이사하고 짐을 싸고 새롭게 정착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함께 기도와 사랑과 격려로 서로가 천국을 만드는 아름다움을 기대합니다.
다시 시작하는 부족한 저희를 위해 맘을 다해 격려와 기도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