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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적 삶에서 형제 중심적 삶으로

자기중심적 삶에서 형제 중심적 삶으로

 

 

 

자기중심적 삶에서 형제 중심적 삶으로 (마5:21-48)


최고의 자리에 <내가> 아니라 <형제>를 올려 놓아야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신앙의 의는 오직 자기입니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신앙이 그들의 의입니다.

예수님이 그들보다 나은 의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0)

 

지금까지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종교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최고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천국을 가지 못한답니다.

천국을 어떻게 들어가는 것입니까?

 

천국은 한마디로 <내>가 최고인 인생에서

<네>가 최고인 인생으로 인식하고 사는 삶을 말합니다.

 

오늘 빛과 소금의 존재가 사는 삶의 방식에서

이전은 율법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 율법의 울타리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법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율법의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사람들이 법을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위한 법으로 이해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방어와 자기를 높이기 위한 법이 아니라

형제를 방어하고 형제를 세우는 법으로 그 정신을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율법인 살인을 설명합니다.

살인은 남을 죽여야 살인이고 심판을 받는 다고 생각합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21)

 

그런데 심판의 개념이 죽여야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이지 않고 욕하고 말로 힘들게 것도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22)

 

살인이 받는 심판이 아니라

노하고,

라가라 하고

미련한 놈이라고만 해도 심판받고 공회에 잡히고 지옥 불에 간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 삶에서 형제 중심적 삶으로 바뀌지 않으면 결코 할수 없는 일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는 무엇이고 빛과 소금의 의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형제 중심적 삶을 말합니다.

이전 율법은 최고한의 자기 방어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의 최고의 삶을 형제 중심적 삶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인이 아니라 예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릴 때도 중심이 형제여야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말인가?

예물을 드릴때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생기면 먼저 가서 화해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23-24)

 

말은 형제의 입장에서 원망들을 일입니다.

입장에서가 아니라 형제의 입장에서입니다.

 

율법의 의에서 빛과 소금의 의로 나아가는 것은

자기 중심적에서 형제 중심적 삶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의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을 내가 아니라 형제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위해 죽는 삶이 최고의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자기 중심적인 삶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걸림돌입니다.

천국은 자기 중심적 삶에서 형제 중심적 삶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빛과 소금의 존재론적 변화입니다.

 

예수님은 나아가 말합니다.

 

간음도 그렇습니다.

실제 간음이 아니라 음욕을 품는 것이 간음이고 그것을 설명하면서

아내를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장가가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합니다.

법은 이혼 증서만으로 아내를 버리라고 하였지만,

간음을 설명하면서 아내를 보호하시고 아내의 입장에서 법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세를 말하면서 자기에 대해서는 그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입니다.

것은 예하고 아니라고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자기를 가자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37)

 

나를 너무 보호하려하고

너무 과한 것을 가지려면 우리는 더한 맹세를 하게 됩니다.

하늘을 향하여

땅을 향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리고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아야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삶이기에 맹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에는 , 눈에는 눈의 법을 설명합니다.

 

자기 중심적 삶은 내가 받은 대로 갚는 것입니다.

나의 눈을 상하게 하면 눈을 빼고,

이를 상하게 하면 이를 빼는 것이 자기 중심적 삶이지만

이제는 형제를 향하여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리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원하면 속옷도 주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 삶에서 형제 중심적 삶으로의 변화를 말합니다.

 

결국 말씀들이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의 성품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으로 갑니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45)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시고 공평하십니다.

그래서 악인이나 선인에게 해를 비치시고 비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받은 아들의 자격을

하나님처럼 세상 모두에게 주기를 원하시고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십니다.

세상을 향한 다리로 우리를 삼으셨는데

우리는 자기 중심적 삶으로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유일하게 먼저 하나님의 아들된 나를 통해서만 보게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된 자격을 세상 세리와 달라야한다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6)

 

 

세상의 법으로 사는 사람들,

대표인 세리와 같은 삶이 아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됨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함을 보여줘야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

 

욥기입니다.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의심한 사단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을 욕하고 비방하고 조롱한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는 ,

위하여 축복하는 것으로 증명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안되는 ,

하나님의 아들들이 해야하는 ,

의입니다.

 

의는 자기 중심적 삶이 아니라

형제 중심적 삶일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주여주여 한다고,

귀신을 쫓아 냈다고

권능을 행했다고,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기 중심적 삶은 망하는 지름길,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빛과 소금이 세상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를 원하십니다.

세상과 다른 ,

그것이 우리의 삶에 온전하게 드러나야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함은 악인이어도 죄인이어도 해와 비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이 빛과 소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자기 중심적> 삶에서 <형제 중심적> 삶으로 바뀌면 좋겠습니다.

삶의 전부를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형제를 위해

하나님이 채우시는 복을 세워 있기를 기대합니다.

복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만 아는 하늘의 복입니다.

천국의 복입니다.

평안의 복입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믿어지면 세상의 것이 미련이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됨을 가진 것으로 중심적으로 증명하지 말고

형제 중심적으로 증명할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에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 청주의 김영윤선교사님을 방문했습니다.

귀한 마음을 나누어주시는 선교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에는 세분의 따님도 같이 보았습니다.

귀하게 아이들을 보며 우리집 딸들이 어떻게 자랄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나이지리아에서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총을든 수십명의 떼강도를 몇차례 만나고 어려운 환경에 귀한 사역을 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우연찮은 만남으로 깊은 관계로 사랑해 주시는 마음이 감사입니다.

 

지금은 교단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의 원장이십니다.

5500 밭에 손수 농사를 지으십니다.

한번도 농사를 지은적이 없는데 수고와 일하심에 역시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덕분에 야채를 많이 얻어왔습니다.

나누고 베풀고 섬기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어떤 분이 나눈 고가의 신발 2000컬레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었습니다.

그중 1000컬레는 명성교회에서 사회적 공동체인 북한새터민 사업에 기증을 했는데

명성교회 김삼환목사님이 그러더랍니다.

주기는 했는데 받기는 처음이라고…

선교사님이 그런 분입니다.

자기 중심적 삶이 아니라 형제 중심적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아들의 ,

온전함을 세워가는 천국의 삶입니다.

가진 나누고

얻은 베푸는 ,

그래서 자기의 것이 없어도

넉넉하고 당당한 ,

그런 삶을 보고 만남의 시간이 아름다운 축복입니다.

그런 삶을 따라 간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축복하고 축복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