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상 받을 일입니까?(마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1-12)
우리는 우리가 잘해서 상을 받으려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해서 복을 받으려합니다.
아닙니다.
뭘 해서 복받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해도 복을 받습니다.
아니 욕을 먹고 반대를 당하고 거짓으로 악한 말을 들으면 상을 받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상받는 일이 무엇일까요?
첫째, 무례함을 당하는 것입니다.
11절의 욕을 당하다는 원어적으로 무례함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살려면 조롱하고 무례하게 대합니다.
아무리 잘해도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조롱을 당하는 대상입니다.
무례하게 대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이상히 여기고 그것을 힘들어하면 안됩니다.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것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둘째, 박해를 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늘 하나님의 아들들을 박해합니다.
이 세상나라가 자기의 나라인데 우리가 그 나라를 뺏으려 왔으니,
세상 나라에 하나님 나라를 심으려 왔으니 박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두 나라의 싸움입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입니다.
세상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자기들의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사람들을 박해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사람은 세상 나라에서 하나니 나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그래서 나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일들입니다.
"나로 말미암아"(5:11)
우리는 나 때문에 살면 세상은 아무일도 안합니다.
무례하지도 않습니다 .
박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살면 세상은 무례하고 박해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셋째, 거짓으로 악한 말을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분명히 거짓말인데 세상은 거짓말을 당연히 합니다.
거짓말을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습니다.
거짓말을 할 뿐 아니라 악한 말도 합니다.
그것이 세상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의 원리는 거짓과 악입니다.
거기까지면 다행입니다.
박해도 하고 무례하게도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사는 법입니다.
이유는 이 세상은 거짓으로 시작이 되어서입니다.
거짓말이 기초가 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세상 나라의 법은 <거짓>입니다.
세상의 얼굴은 <악>입니다.
넷째, 세상 나라의 방향은 <반대>입니다.
"너희를 거스려"
원어적으로 반대입니다.
against 입니다.
세상 나라는 무조건 우리가 하는 일에 반대합니다.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 일하는 곳에는 무조건 반대입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입니다.
말이 안되는데, 논리가 맞지도 않는데 무조건 반대입니다.
이유는 반대를 위한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 나라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대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하십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 할일은 우리가 잘되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꿈을 이뤄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업적을 이뤄서가 아닙니다.
세상이 이런 일,
무례하게 하고,
박해하고,
거짓을 말하고,
악하게 하고,
반대를 하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의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무례한 일을 당하고 박해하고 거짓 말을 당하고 악한 일을 당하고
반대를 당하면 상 받고 기뻐하고 즐거워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의 빛과 소금은 나 때문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 당하는 이 일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상 받을 일입니다.
아무것도 안해도,
열매가 없어도
뭔가 드릴 내 손의 열매가 없어도
주님 때문에 당하는 이런 일이라면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상 받게됩니다.
세상은 그게 무슨 상 받을 일이냐고 웃습니다.
세상은 그게 무슨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하늘에서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2)
이 땅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이 땅이 전부인 사람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늘입니다.
하늘에서 상이 큽니다.
하늘을 믿는 사람만,
하늘 때문에 사는 사람만 그렇게 살수 있습니다.
하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지 못하면 절대로 살지 못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보았고,
하늘을 믿었고,
하늘을 소망하는 사람은 다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2)
선지자는 하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것을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무례와 박해와 반대와 거짓과 악함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사람들이 당하는 일을 이상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사는 법,
세상 나라가 사는 기초 위에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갑니다.
하늘의 삶을 사는 것이,
하늘의 삶을 살기로 작정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이 크다고 말씀합니다.
쉽다면 어디 상이겠습니까?
당연하다면 어디 복이겠습니까?
세상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산다는 것이 어렵기에
눈물도 복이고
애통도 복이고
청결도 복입니다.
나아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세상이 오늘도 무례하고 대하고 거짓으로 대하고 악하게 대하고 반대를 하면…
우리의 상이 클 것입니다.
* 사직동교회 청년회가 가독교회에 와서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저녁에 말씀으로 섬겼습니다.
교회 청년들을 본다는 것 만으로 저는 설렙니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
교회의 미래가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울며 웃으며 감격해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살 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세상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당해야하는 눈물이 있고,
당해야하는 아픔이 있고,
세상 나라로부터 선지자들이 당했던 그 일들을 똑같이 그들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들이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상이 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서 영광의 나라가 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