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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기초(마5:7)

관계의 기초(마5:7)

 

 

 

 

 

 

 

 

 

 

 

 

 

 

관계의 기초(5:7)

 


하나님은 우리를 복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행위(doing)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상태(being)로 인해 복을 주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상태부터 오늘 말씀인 긍휼히 여기는 5가지는 모두 상태입니다.

무엇을 해서 복을 주신다기 보다 우리의 마음 상태, 마음이 어떠한지를 통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어도 하나님은 그저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것으로도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상태가 아니라 행위로 복을 평가합니다.

줄까 말까를 결정합니다.

내가 잘 하면 많이 받고 못하면 적게 받는 것이 세상의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저 우리의 마음 상태만으로도 복을 주십니다.

이유는 <마음>이 곧 그 사람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한 것이 곧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복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믿는 것이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어떤 결과를 얻는다 믿습니다.

그것이 세상이 주는 이치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것을 해서 복을 얻기 전에 마음의 상태를 통해 복을 주기로 작정하십니다.

마음이 곧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마음이 생명이라고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이 생명이고 마음을 보고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정하십니다.

오늘 긍휼, 자비가 그렇습니다.

산산수훈은 빛과 소금된 우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으로 이미 부르신 제자들을 향한 복의 선포입니다.

복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긍휼이어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긍휼입니다. 

자비입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마음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천국을 받고,

애통하는 자는 부활을 받고,

온유한 자는 땅을 받고,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는 하나님의 채우심을 받는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섯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의 복을 말씀합니다.

 

1-4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복입니다.

5번째부터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복을 설명합니다.

번째가 긍휼입니다.

 

 

빛과 소금으로서의 ,

하나님의 나라의 제자와 백성으로서의 삶은 마음을 말합니다.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나 삶은 사람과의 관계를 근거한 마음이 어떠해야함을 말씀하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긍휼> 다른 사람과의 관계적인 측면의 <시작>입니다.

 

성경은 긍휼에 대하여 가지를 교훈합니다.

 

번째는 긍휼이 여기지 말라는 것이고

번째는 긍휼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지 말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신7:16]

 

 

같은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지 말라고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오직 한가지 였습니다.

하나님이 붙이신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붙이신 사람들에게 대하여 긍휼히 여기지 말라 하십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 사는 삶의 방식과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 관해서 긍휼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반대되는 것은 어떤 것도 긍휼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나아가 죽이라고 가지 하십니다.

진멸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상에서 우리를 지키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으십니다.

그분의 성품을 보여주고 싶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고 싶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인 빛과 소금인 우리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냥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자비를 보여주고 긍휼을 베풀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관계적인 측면에서 바로 긍휼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9]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이 긍휼입니다.

모든 선함의 시작은 긍휼입니다.

 

430 애굽의 노예 생활의 마침의 이유가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출2:24]

 

하나님의 사역의 기초는 긍휼입니다.

그래서 오늘 빛과 소금된 우리의 관계적 측면에서

사역의 시작과 삶의 기초는 긍휼이어야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이 빛과 소금으로 사는 우리 삶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일만 달란트 진자에게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무입니다.

자세입니다.

마음입니다.

 

은혜의 시작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하여 긍휼을 보여주라고 하십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가지는 긍휼의 <정도> <>라는 것입니다.

 

많이 탕감을 받은 자가 많은 사랑을 받은 자라고 느낍니다.

많이 긍휼을 받은 자라고 느낄 많은 긍휼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긍휼로 시작했습니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긍휼, 자비는 자격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빛과 소금은 우리의 밝음과 맛으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빛은 주어졌고 맛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그것을 긍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우리에게 긍휼이 있어서 긍휼히 여기라 하지않고

하나님이 창조때, 세상을 만들고 우리를 부르실 이미 긍휼로 시작하셨기에

긍휼을 아는 사람은 긍휼히 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을 아는 자는 긍휼을 베풀고 베푼 긍휼에 근거해서

하나님은 다시 은혜의 사이클을 돌리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긍휼을 받지 않으면서 긍휼을 여기라 하지 않습니다.

긍휼을 받았기에 긍휼히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과의 관계의 <기초> 긍휼입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은 빛과 소금은 긍휼로 그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탕감 받은 빚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받을 빚의 무게로 세상 사람이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복의 기초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받은 자만 아는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세상을 향하여 긍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 받은 사람만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가르치실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사람을 용서함 같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한 이유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 긍휼로 대우받았기 때문입니다.

 

긍휼을 먼저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합니다.

우리가 먼저 긍휼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나에게 먼저 임해서입니다.

받지 못한 자는 주지 못합니다.

받은 것이 깨달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지 못하는 이유는 긍휼을 존재론적으로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완악함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완악함> 그저 <존재론적 긍휼> 깨닫지 못함입니다.

 

축복은 긍휼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긍휼을 내가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과 소금이 되는 맛의 근거입니다.

 

긍휼!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세상에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원리로 하나님의 형상을 알게 하십니다.

 

오늘도 긍휼을 깨닫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 산에 들에 꽃의 화려함은 씨가 흘린 긍휼의 열매입니다.

오늘 꽃은 시리디 시린 겨울날 날려진 씨앗의 열매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날린 씨앗들의 열매가 올해 아름다운 열매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긍휼은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숨을 긍휼의 씨앗으로

오늘 우리 인생에 꽃을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이 나의 시대가 아니라 영원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긍휼의 씨앗을 다시 세상을 향하여 뿌리라 하십니다.

그래야 나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시린 겨울이어도 내가 뿌리는 긍휼의 열매가 인생의 꽃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