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십니까? (마5:6)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먹는 다고 다 배부를 수 없습니다.
참 배부름은 의에 주리고 목마를 때 먹는 것이 배부름이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지 않으면서 먹는 모든 것은 인생의 배부름을 알지 못하는 배부름이 됩니다.
"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시22:26)
문제는 인류는 늘 배부름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배부름이 인생을 배부르게 하지 못했습니다.
출애굽을 하고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배고파서 죽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16: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
그래서 하나님은 배부르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신 것이 만나와 메추라기입니다.
그런데 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원망입니다.
열가지 재앙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체험한 백성이어도 당장 자신의 배고픔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답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먹이고 마시게 하여도 늘 원망하였습니다.
늘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인생은 배고픔이 해결되어도 하나님을 떠나고,
마시우게하여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육신의 먹고 마심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배부름과 마시움을 위한 인생으로 산다면 늘 배고프게 될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역사다.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 살지 말아야한다.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 살면 늘 배고프다.
결코 만족할 수 없다.
배부르지 못할 인생이 왜 생기는가를 레위기에서 설명한다.
왜 배가 고파지는지를 하나님은 설명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뜻을 어긴 백성이 겪는 결과이다.
재앙이다.
배고픔은, 만족함이 없는 인생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어긴 백성의 결과이다.
"[레26:26]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레위기 26:26절 말씀은 열명의 여자가 먹을 것을 주어도 배부르지 않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어겼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레26:3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
레위기 26장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면 얻게되는 복을 설명하다가 그렇지 않으면 일어나는 일을 순차적으로 설명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준행하지 않는 인생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어도 그들이 만족하지 못했고,
열 여인이 불에서 고기를 구워주어도 배부르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당하는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배부른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인생이 아니라
먹으면 배부른 인생으로 복을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언제 배부른가?
언제 먹으면 배부른 인생이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의이다.
의에 주리고 배부를 때에만 인생은 만족한 인생이 되고 갈증 없는 인생이 된다는 말씀이다.
인류가 당한 배고픔,
인류가 당한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목마름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 배부름의 조건은 <의>이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디 않으면서 채우는 모든 먹는 것은 배부름이 되지 못한다.
의가 없이 먹는 모든 것은 채우지 못한 인생이 된다.
그러나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배고픔은 배부름으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선언이 오늘 말씀이다.
(마5: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지 않는 목마름과 배고픔은 결코 먹어도 마셔도 채우지 못한다.
인생은 의에 주려야한다.
그래야 참 배부름이 주어지는 것이 복이 된다.
의에 주리지 않는 목마름은 더 타는 목마름이 되고
의에 주리지 않는 인생은 먹어도 먹어도 채우지 못하는 배가된다.
의를 채워야 인생은 배부름으로 만족한 인생이 될 수 있다.
그럼 이 <의>가 도대체 무엇인가?
의는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게 하는 것이 오직 의입니다.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의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하자 그가 말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고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3:15)
유일한 <의>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 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3장까지 율법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율법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까지 하는 기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 예수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0-22)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왜 인생이 배부르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사라졌고
그 길을 다시 내신 것이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의입니다.
그런데 그 의가 나에게 의로 되어지려면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는 모든 것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에 배부르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인생>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는 인생이 배부르게 되는 인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것,
끝까지 기도하신 내용은 그들의 믿음입니다.
사람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네가 믿느냐"입니다.
믿음으로 행할 때,
믿음으로 사는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을 때 하나님은 배부름으로 반응하시고
마시움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인생은 결국
믿음에 목마르고 믿음으로 사는 인생에게 먹이고 마시움으로 말미암아 배부름이 있음을 알게하십니다.
믿음이 아니면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믿음이 아니면 성령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오병이어도 경험하고
수 많은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도 배부르지 못했습니다.
갈증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의 목마름과 갈증을 해결한 것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행할 때 그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경험한 것입니다.
기적은 더 큰 기적에 목마르고
배부름은 더 배고프게 만드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령의 은혜는 날마다 배부름입니다.
성령의 음성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나가가는 인생에 늘 생수의 상쾌함과 시원함을 경험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인생은,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지키려는 목마름을 말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따라가려는 주린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세상의 답은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 예수님은 오직 성령의 목마름과 주림을 통해 우리 삶에 역사하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인생이 있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음성과 마음을 따라가는 인생이 있습니다.
기억해야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인생,
성령이 원하시는 것을 따르는 인생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아무리 채워도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의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목마른 인생은 늘 배부름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에 배부르십니까?
성령의 음성,
하나님의 마음을 이루려는 목마름과 주림이 있어야합니다.
성령이 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에 목마른 인생이 결국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는 인생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날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메추라기를 먹어도 그들의 배는 채워지지 않았고 더 갈증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원망, 그들이 원하는 것을 채우는 인생이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채우는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목마름입니다.
갈증입니다.
인생의 목마름과 갈증으로 사는 인생은
잘 먹어봐야 목이 곧은 백성이 되고
잘 마셔봐야 갈등으로 사는 인생이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이루는 것에 목이 말라야하고
성령이 원하시는 것에 주려야합니다.
예수님은 사십일을 주리고도 마귀를 이긴 것은 성령이 이끌려 살았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도 성령의 인도에 목이 마르고 배고픈 인생이 되야합니다.
그래야 내 배를 채우는 인생이 아니라 세상의 배를 채우고 마시우게하는 인생이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산상수훈을 통해 천구과 부활과 하나님의 땅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아울러 생수로 마시우고 영원히 배부른 인생을 복으로 주시기 원하십니다.
누가 그런 인생을 살게 됩니까?
누가 그런 복을 경험합니까?
의,
하나님의 의를 따르는자입니다.
그 의는 오직 예수 안에서 성령의 마음과 뜻에 목이 마르고 주린자가 경험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며 무엇에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픕니까?
성령의 음성에 그러해야합니다.
그것이 내 삶에 의가 이루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가시고 성령을 보내신 유일한 일입니다.
의에 주린 인생,
성령의 음성을 따르는 것에 전부를 거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시험을 이긴 비결은
성령의 이끄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승리는 오직 성령의 이끄심 안에 있기 원하는 목마름과 배고픔입니다.
* 정은혜사모님과 남아공의 정은일목사님 김춘애 사모님을 가덕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만남이 있었고 귀한 교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만남은 늘 복된 기쁨이 있고 간증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 성령의 마음을 따라 살았던 삶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목사님 가정과 사역을 나누고 가덕교회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늘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
정목사님과 정은혜사모님의 삶과 사역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배우고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살고자 하는 대로 사는 인생이
늘 생수를 먹고 만나를 먹는 인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