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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야 영향력이 있습니다(마5:3)

가난해야 영향력이 있습니다(마5:3)

 

 

 

 

 

가난해야 영향력이 있습니다(마5:3)

 

소금과 빛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누군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소금과 빛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소금과 빛이다라고 하지 않고

소금과 빛이 어떤 모습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하심으로 상태를 통해 너희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신 것은

 

 

  1. 너희가 누군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놓고 가장 먼저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너희가 누구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빛과 소금>입니다.

 

그런데 빛과 소금을 이상하게 풀어갑니다.

빛과 소금이라면 반드시 복을 받는데 복이 세상과 다른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생각하는 복과 하나님이 정의하는 복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정체성을 설명하고 정체성의 현상을 설명하면서 그래서 너희가 복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있는 사람은 바로 너희가 <빛과 소금>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데 빛과 소금이라는 정의를 빛과 소금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설명하시는 것이 팔복이라는 내용입니다.

 

빛과 소금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생각하는 복과는 전혀 다른 복입니다.

천국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이 아니라 다른 복을 받는데 복이 어떤 복인지를 먼저 설명합니다. 그것이 팔복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영향을 주는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자, 높음, , 권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는 삶이 소금과 빛입니다.

 

  1. 소금과 빛의 맛과 영향력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짠맛을 빛은 영향력을 줍니다.

그런데 짠맛과 영향력이 뭔가가 바로 팔복입니다.

빛과 소금은 세상에 영향을 주는 존재인데 영향을 어떻게 주는가?

 

바로 <가난한 마음> 되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가난한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이 바로 복이고 복이 바로

소금의 짠맛이고 빛의 영향력의 <본질>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 칭함을 받은 것은

그가 가진 부로 인하여,

그가 가진 장자권의 능력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도 놓치지 않는 그의 마음의 상태,

반드시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을 해야만 하는 가난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가난한 마음,

자신의 생존 앞에 가진 재산과 가족과 어떤 조건도 의미가 없고

오직 하나님만을 붙들어야 하는 상태가 바로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가 얻은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얻었습니다.

천국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는 이유는

그에게 없던 가족과, 떠나온 나라와, 의지 없는 종과 감옥에서의 ,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삶을 살게합니다.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으로 살게 이유는

그가 가진 총리의 자리와 재주가 아니라

 

<가난한 심령>이었습니다.

 

빛과 소금은 반드시 세상에서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유는 세상은 반드시 빛과 소금인 우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거스리고,

악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대해주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우리와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세상은 우리와 소속이 다릅니다.

세상은 양심이 없습니다.

세상은 의도 없습니다.

세상은 겸손도 없습니다.

세상은 뻔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빛과 소금인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것은

가난한 심령으로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빛과 소금입니다.

우리의 시작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세상에서의 삶은 바로 심령이 가난함입니다.

그래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인 선지자를 비유로 들어 그들도 이같이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5:12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빛과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박해 받는 삶입니다.

먹는 삶이고

거짓말 하는 사람을 만나는 삶이고

거스리는 사람을 만나는 삶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가난한 심령>입니다.

 

바르게 살면 살수록 더더욱 가난한 마음이 되는 것이 빛과 소금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가난에 대해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의 <> 크다고 합니다.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

 

 

소금과 빛의 맛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소금과 빛의 영향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맛과 영향력은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것으로 세상이 나를 통해 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힘과 능력을 가지는 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의 근거는 우리의 가난한 심령입니다.

가난한 마음의 그릇에 하늘의 보화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과 소금이 맞다면

우리는 가난한 마음으로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하는 빛과 소금의 정의 첫번째입니다.

현상으로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심령이 가난해지는 ,

그것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우리가 만나는 가장 번째 나의 모습입니다.

가난한 심령을 만나면

주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선지자도 그랬다고 하십니다.

 

만약 가난한 심령이 아니면

맛을 잃으면, 빛을 비추지 않으면

버리워지게 됩니다.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세상이 우리를 밟지 못하게 하는 ,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법은

우리가 가난한 심령으로 사는 법입니다.

 

세상에 주는 우리의 힘은 가난한 심령입니다.

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가난한 마음이 안에 있을

내가 누구인지 확인할 있고 세상에 소금으로 빛으로 영향력과 맛을 있습니다.

 

가난한 심령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마음이 우리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첫번째 모습입니다.

 

부름 받은 제자의 첫번째 마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부자여야 받은게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야 받은 것입니다.

세상의 복을 부러워하지 말고

마음의 가난을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 울산교회의 임종수원장님 가족입니다.

울산에서 새한치과를 운영하십니다.

어려운 선교사를 무료로 치료해주시고 이목사님 가정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선교현장에 가족이 나가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가족입니다.

저희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이목사님 가정과 나누기 위해 지난 토요일 가덕도를 찾아주셨습니다.

함께함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토요 성경공부 시간도 같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분의 공통점은 분들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인 같습니다.

사업과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Pasto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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