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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한 곳이 축복의 장소입니다

피한 곳이 축복의 장소입니다

 

 

 

 

 

 

 

 

 

 

 

피한 곳이 축복의 장소입니다(4:12 -16)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기면 기회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피해 간 곳에서 새로운 기회가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일이 내 인생의 기회가 아니라 도망간 곳이 기회의 장소입니다.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이 사십일을 금식하시고 그 어려운 사단의 시험을 이겼습니다.

이제 막 놀라운 사역을 펼칠 것 같았습니다. 아닙니다.

시험을 통과했다고 놀라운 사역이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통과하니 도망을 가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세례요한이 잡힌 것입니다. 그 일로 예수님이 물러 가게됩니다.

 

"4: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예수님을 예비한 사람인 요한이 잡히게 됩니다.

그 일로 예수님은 물러가십니다.

피해서 한마디로 도망을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도망한 곳인 갈릴리와 사셨던 가버나움이 축복의 장소가 됩니다.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소가 됩니다.

 

모두 그렇게 말합니다.

갈릴리에 무슨 선한 것이 있느냐고, 그곳에 무슨 사람이 나겠느냐고!

예수님도 도망한 곳이 갈릴리입니다.

사람들도 소망이 없는 곳으로 갈릴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곳이 제자들에게 축복의 장소가 됩니다.

 

누군가에게 절망의 장소가 누군가에게 희망의 장소가됩니다.

고기만 잡던 제자들에게 갈릴리는 인생에 의미 없는 그냥 어부였지만

예수님이 피한 갈릴리는 그들에게 소망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야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서 피하고, 아파서 도망하고, 갈수 없어 돌아간 길이 희망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살수 없어 아프리카로 간 사람들이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축복의 통로가 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서워서 도망하고 힘들어서 피한 곳에 축복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다윗입니다.

사울을 피하고 피해 미친척하고 그렇게 도망하여 간곳이 아둘람이라는 굴입니다.

그곳에서 다윗은 희망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왕궁이 아니라 광야에서 말입니다.

 

모세입니다.

궁전에서 기회를 잡으려했는데 그곳에서 절망을 느끼고 도망을 가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입니다.

나라를 가졌을 때보다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의 포로로 갔을 때 차라리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축봅입니다.

 

좋은 일만 우리 인생에 기회가 아니라 아픔도 쓰시고, 연약함도 쓰시고 도망한 장소도 쓰십니다.

하나님은 늘 세상의 길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과 방법으로 우리를 회복하십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그 길을 위해 자신의 잡힘도 사용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잡히자 예수님이 갈릴리 근방으로 도망하고 그 곳에서 제자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라

도망도 쓰시는 하나님,

잡힘도 쓰시는 하나님,

아픔도, 병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기회로 삼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윗에게 피한 아둘람이 일어서는 기회의 장소, 회복하는 회복의 장소가 되고

예수님이 피한 갈릴리가 제자들에게 희망의 빛을 보는 장소가 되는 곳입니다.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빛은 흑암에서 보고,

사망에서 생명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이 밝을 수록 보석을 찾지 못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가질수록

하나님의 좋은 것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이 어둠이고

내가 좋은 것을 놓칠수록 하나님의 좋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잡힘이 열두 제자를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광야에서만 예수님을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서도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위한, 사역을 위한 그분의 사람들 열둘을 준비하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도 쓰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함도 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눈물도 쓰십니다.

 

그 약함과 부족과 눈물을 통해 새로운 열둘의 제자를 부르게 되는 길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남길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기회>는 나와 같은 사람 하나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그의 잡힘으로 새로운 열 둘을 세우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 인생의 기회를 무엇이라 여깁니까?

돈을 잘 버는 것?

좋은 직장을 얻는 것?

좋은 학교를 가는 것?

진급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가지만 생각합니다.

사람을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피한 곳에서도 사람을 얻는 기회를 얻으신 주님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서 절망의 장소가 희망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기회>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세우는 일이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인생의 힘듦으로 피한 곳에서 아둘람의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둘을 만나는 축복이 오늘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 누군가는 포기한 자리,

아무도 생각지 않은 저 높은 자리가

새로운 인생을 사는 희망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밑에는 소망이 없어 그저 묵묵히 빛을 향하여 나아갔는데

그곳에 모두가 이뻐하는 아름다운 장소가 되었습니다.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그곳이 모든 사람이 소망하는 장소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그렇게 세상과 다르게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