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1(마4:1 -10 )
세상이 우리에게 유혹하는 근본 의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는 기준이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돌이 변하여 떡이 되게하여 먹으라고합니다.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오늘 시험의 시작은 <그때에> 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할 때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것을 이용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소리를 발할 때 유혹의 순간이 시작됩니다.
사단은 그렇지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그러니까 돌을 떡이 되게 해서 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돌이 변해서 떡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네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들이니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네가 가진 능력으로 너만 먹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정도의 신분이니까 네가 누리는 혜택을 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네 것을 먼저 채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는 늘 그렇습니다.
내가 이 정도의 사람이니까 이 정도의 대접은 받고 살아야한다고 여깁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이 정도의 수준과 이 정도의 위치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내 아들이라고 말하는 본질과
사단이 말하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의 기초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말하는 아들의 자격은 자기 희생이고, 섬김입니다.
자기가 세상을 대신해 눈물과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말하는 아들의 자격은 자기가 먼저 먹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아들의 능력으로 내 배를 먼저 채우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세상에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사단이 아담에게 시험했던 첫 번째입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가 먼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소중하고 내가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 유혹의 본질입니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내 배만 채우면 된다는 이 마음이 시험의 본질입니다.
시험의 본질은 <내가 더 소중해>입니다.
나를 먼저 채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사십일을 주리고 이 시험을 이길 수 있었나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시험 전에 들었던 하늘의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시험을 이기게 된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서입니다.
이 소리,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의 마음에 새겨져 세상보다 더 큰 소리가 되어서입니다.
사람을 이기게 하는 것,
사람이 세상을 이기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사단의 유혹과 사단의 소리를 이긴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격적인 말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인격적인 말씀은 곧 사랑으로 인식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말씀은 곧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하늘의 음성,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것은
예수님에게 세상을 이기는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유일한 답으로 <사랑>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모든 말씀은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인격적인 만남은 말씀으로 오고 그 말씀은 사랑으로 인식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은
사람과 하나님의 대화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사십일의 금식을 이긴 것은 육체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리, 말씀,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소리를 통해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세상에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더더욱 세상에서 내가 더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세상이 아니라 내가 먼저 떡을 먹어야 하고
세상이 아니라 내가 먼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사단의 유혹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낮아지는 곳에 선 것을 기뻐하지만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네가 먼저 너의 배를 채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의 말에 순종하니까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고 의식을 넣은 것이 사단의 첫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권위를 줄 때 더더욱 낮아지고 세상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역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격을 주니 세상에서 대접 받는 것이 라고 여겼습니다.
내 배가 먼저라고 여깁니다.
하나님이 자리를 주고, 하나님이 힘을 주고,
하나님이 권력을 주니 내 배를 채우고
내가 대접을 먼저 받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닙니다.
사단이 그렇게 찾아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접을 받고 네가 먼저 배를 채우고…
요셉입니다.
요셉이 하늘의 별과 달과 해가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드디어 세상이 그 앞에 절을 하는 위치에 섰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단 한번도 절 받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절받는 인생이 아니라 절하는 인생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단 한번도 절 받는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총리가 되어서도 그는 절하는 인생입니다.
평생을 자기를 위해 산 인생이 아닙니다.
평생 노예로 살면서 자기 배 부르게 살았다면 보디발이 그에게 모든 집의 제반 업무를 맡겼겠습니까?
감옥에서 자기 배만 챙기는 인생이면 감옥의 간수가 그에게 전부를 맡겼겠습니까?
자기 배만 채우는 인생이면 애굽의 왕이 그에게 나라를 맡겼겠습니까?
요셉은 절 받는 자리를 부여 받았지만
절 받는 자리에서 세상을 향해 섬기는 사람으로 산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요셉을 축복하신 이유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먼저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네가 먼저 돌이 변하여 떡이 되게하여 네 배를 먼저 채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세상에서 먼저 내 것을 채우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내가 먼저 잘 되는 복을 달라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맞는 섬김과 낮아짐과 자기 희생으로 교회와 사람과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격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자기포기와 자기 희생으로 세상을 섬기는 마음과 삶에서 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격적 축복>을 요구하게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격적 축복이 아니라
<섬김적 축복>을 향하라고 말합니다.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이어서 세상보다 더 많이 내려가고 낮아지는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해 내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내 사랑하는 자라고,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소리가 있고 내려간 것이 아니라
내려 갔더니 소리가 있습니다.
내려 가십시오. 그러면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들리면 사랑 안에 거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은 자꾸 하나님의 아들에 맞는 멋있어 보이는 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돌이 떡이 되어 내가 먼저 채워지고 내가 대접 받는 길로 유혹합니다.
이 유혹을 이기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것이 사단의 시험을 이기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자격적 축복이 아니라 <섬김적 축복>을 구해야합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당연한 축복이 아니라
아들이기 때문에 더 많이 섬기는 섬김적 축복이 참 복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인생이 되어야합니다.
부족함이 보이면 내가 채우는 것, 그것이 요셉의 원리입니다.
부족하니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니 내가 채워줄 수 있는 섬김적 축복이 길입니다.
사랑의 음성은 섬김적 축복을 살 때 들여오는 하늘의 영광입니다.
내 것을 먼저 채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을 먼저 채울 때 하나님의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약함을 볼 줄 아는 축복의 눈을 축복의 기회로 삼아야지
다른 사람의 약함을 질책하는 악함의 기회로 삼지 않기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의 길입니다.
심김적 축복이 우리 인생의 답입니다.
셋째, 나의 자격을 <받음의 자격>이 아니라 <드림의 자격>으로 방향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을 자기의 것을 채우려는 자리가 아니라
세상을 먼저 구원하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바뀌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아담처럼…
평생 아담처럼 살지 않고
예수님의 삶의 원리처럼 살게 되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 배굉호목사님 어머니입니다.
어제는 정은혜사모님과 배목사님의 어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99세이신데 또렷하신 정신과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오래 사시는 것처럼 자녀에게 복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잘 섬기는 자녀를 가진다는 것도 더 없는 복이란 생각을 합니다.
평생 어머니를 섬기는 배목사님과 사모님의 모습에 또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늘 섬김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보게됩니다.
섬김은 다른 사람을 아름답게 하지만 나의 인생도 아름답게 만드는 축복의 길입니다.
할머니가 늘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배목사님 사모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늘 저희에게 남아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