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소리(마3:13-15)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자신이 회개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세상이 문제여서 세상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을 향하여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심판의 자리에 먼저 올려 놓는 것이 의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세상을 심판의 자리에 두고 욕하고 질책하기 위함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그 심판의 자리에 서서 심판을 받고
자신이 먼저 회개의 자리에 서는 것이 먼저여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의 상징인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먼저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고
회개의 자리에서 먼저 회개하고
높아지는 자리가 아니라 낮아지는 자리,
추하고 더러운 자리에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요단강으로 내려갔고
심판의 자리에서 세례를 받고
회개의 상징인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늘에서 소리가 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잘 말하는 것,
판단을 잘하는 것,
분석을 잘하는 것을 우리는 의로 여기는 착각에 살아갑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회개와 낮아짐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대신 심판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곳에 설 때 성령이 하늘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의 자리를 우리가 대신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예수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우리는 예수님이 사신 영적인 원리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 원리는 세상을 대신해서 <내려가고>
회개의 자리에 서고
하나님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심판 받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고 기뻐하는 자가 되는 길입니다.
이 소리는 십자기 바로 직전 변화산에서 들은 소리와 같습니다.
두번의 하늘로부터 소리는 스스로 낮아지는 자리인 요단강에서와
세상을 위한 십자가를 지기로 확정한 변화산에서였습니다.
세상을 책임지는,
세상을 대신해 그 아픔과 슬픔을 대신 지는 자리에 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은
오직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일입니다.
"[마5: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화평케하는 일을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화평으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화평을 위한 자기포기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에 화평을 위한 자기희생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기쁜지 하나님은 성령의 음성으로 소리를 내십니다.
<내 기뻐하는 자라…>
<내 아들이라…>
화평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평은 누군가 심판을 대신받고
회개를 대신하고
십자가에 대신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그 사람이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화평케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롬14:19]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히12: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화평을 위한 예수님의 일은 자신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화평케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는 화평을 이루기보다
나의 의를 이루려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의 정당성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잘못됨을 기대합니다.
내 행동의 정당성을 위해 심판의 자리에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약함과 부족함이 보이면
내가 세례(화평)의 자리와 십자가(화평)의 자리에 서야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익을 보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손해보고 내가 낮아지고 내가 피를 흘리는 자리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놀라우면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겠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세상과 싸우는 일보다 요단강으로 내려가는 화평의 발걸음을 하나님은 기뻐합니다.
기적을 이루는 일보다 화평을 이루는 것이 먼저입니다.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화평의 사람이 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삶에 기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화평을 위한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바꾸는 발걸음이 먼저입니다.
십자가를 가기전에 요단강으로 내려가는 마음과 발걸음이 먼저입니다.
내 인생에 놀라운 기적을 기대하기 전에
내 인생에 나 스스로 놀라는 내려가는 걸음이 먼저입니다.
세상이 다 네가 변하라고 할 때
내가 먼저 변하는 모습,
내가 먼저 요단강의 화평의 자리로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과 걸음이 있는 곳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이 시대는 이 소리가 부재된 시대입니다.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삶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성령의
<깊은 소리>가 먼저 들리는 은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천 수만의 세상의 소리보다
깊은 소리 한마디가 우리 인생을 힘 나게 할 줄 믿습니다.
* 내 몸이 좀 비틀어지고
내 몸이 좀 어그러지고
내 몸이 좀 불편하면 어떻습니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하늘의 생명을 증명해 낼 수만 있다면
그 한 사명으로 내 자리가 넉넉하지 않습니까?
수 만가지 사연
돌아 돌아 내 인생 지나 가지만
그 자리 지키는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냥 넉넉한 웃음으로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맞아 드는 여유가 오늘도 넉넉한 웃음입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이치를
깨달은 그 순간…
꼬여진 내 몸,
내 인생의 이야기가
그제야 감탄으로 웃음이 됩니다.
내 몸에 남은 깊은 골이
수 많은 눈물의 인생들
쉬어가는 그늘인 것을
아는 순간…
내 몸 꼬인 것도
감사가 넘칩니다.
웃음이 활짝입니다.
저절로 내 입가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높은 산,
깊은 골
하나님이 지난 간 흔적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