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어머니(마3:1-12)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하는 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회개>입니다.
천국이 어디에 있는가?
천국이 어떻게 오는가?
세례요한이 외친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예비하는 것이 무엇인가?
<회개>입니다.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천국에 들어가려면 오직 한가지가 필요합니다.
회개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할 일은 그의 길을 준비하고, 길을 곧게하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곧 회개입니다. 회개하게 하는 일입니다.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소리는 회개로 들려야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회개의 길>로 연결되지 않으면
천국은 우리에게 찾아오지 못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는 곳에는 오직 죄를 자복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천국의 임재성은 오직 죄의 자복성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죄의 자복성이란 자복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회개는 열매를 필요로 하는데
그 열매란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관계성 없는 회개는 오는 진노를 피하지 못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천국을 위해서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지만 열매없는 회개로 책망을 받습니다.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 열매는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회개하지 않은 자,
회개의 관계성이 없는 자에게는 천국을 거저 주는 일이 없습니다.
임박한 진노를 피하지 못하게 합니다.
천국은 오직 회개의 관계성을 지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지만
회개 없는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복음이 찾아오면 반드시 문을 여는 회개의 열매,
즉 회개의 관계성을 지나야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회개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세례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된 이유는 오직 한가지라고 말합니다.
천국의 길을 예배하는 자로 선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라고 말합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
그 일을 위해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세례는 회개의 선포입니다.
그러나 회개의 열매는 아닙니다.
회개의 열매는 관계성입니다.
천국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회개의 관계성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계명은 관계성에 대한 기준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관계성에 대한 기준입니다.
1-12절 안에 회개라는 말이 4번이 나옵니다.
그 의미가 포함된 것까지 말하면 8번 이상이 됩니다.
천국의 조건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것은 우리 편에서 오직 <회개>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좋은 것을 늘 누리려합니다.
그곳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독자의 자식이라고 책망을 받았듯이 돌아오는 것은
책망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으냐면 아흔 아홉명의 의인의 어떤 행동보다 이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좋아하십니다.
"[눅15: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세례요한도 이 회개를 위해 왔고,
예수님도 이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천국을 눈물 몇조각과 마음으로 죄송합니다 말할뿐
<회개의 관계성>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세례요한이 말한 것은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회개의 관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회개는 몇 조각 눈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없어도 회개로 인한 관계적 돌이킴이 일어날 때 천국잔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음이 약화된 이유는 눈물 몇 조각으로 만족하고
말로만 예수를 믿는 다고 말하는 그 말에 속아 천국을 난발하는 현상때문입니다.
천국의 거룩성은 회개의 관계성의 깊이입니다.
그 관계성의 깊이는 자격없음에 대한 고백입니다.
집 나간 탕자의 회개의 관계성 첫 번째 모습입니다.
돼지를 먹이면서 마음으로 죄를 고백했습니다.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돌아가서 아들됨이 아니라 품꾼으로 받아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관계성입니다.
회개는 이전에 누리던 그 자리가 아니라 자격의 강등이 요구되는 자리가 관계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첫째, 자리의 낮아짐을 인정하는 것이 회개의 관계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누리고 내가 편하고 내가 좋은 자리를 내어 놓는 고백이 관계적인 측면에서 고백되어져야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눅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천국의 계산법은 이상합니다.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고 자리를 포기하면 그 자리에 떨어져야 하는데 하나님은 도리어 포기한 자리에 나를 앉힐뿐 아니라 내 자리를 회복시키는 회복과 기쁨을 선물로 주십니다.
"15:22-23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회개하는데 자리를 포기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관계성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둘째, 회개의 관계성으로 나아가는 것은 <손해>보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세상적으로 내가 손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천국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손해를 볼 수 있느냐가 회개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손해 보지 않는 회개,
내것을 내 놓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며 회개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회개의 열매로 말하는 나라입니다.
세상은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고 계산하는 나라지만
하나님 나라는 회개의 열매가 무엇이냐로 계산하고
회개 때문에, 복음 때문에 얼마나 손해 보았느냐로 계산하는 나라입니다.
삭개오입니다.
수 많은 선포를 예수님은 가는 곳 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기적이 일어났지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삭개오가 회개할 때 진정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회개의 관계성안으로 그가 들어와서입니니다.
그 관계성은 바로 자신이 손해 보는 것입니다.
"[눅19: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며 만약 토색한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는 자기 손해의 회개의 관계성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회개, 천국의 문입니다.
셋째, 회개의 관계성의 기준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큰 아들이 잊은 것은 자신의 재산이 없어짐에 대한 슬픔이지 아버지의 슬픔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누릴 손해는 슬프지만 하나님의 슬픔은 보이지 않는 것이 큰 아들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삭개오가 돌아오고 잃은 아들이 돌아올 때 기쁨을 말합니다.
잔치를 말합니다.
그래서 천국은 잔치입니다.
기쁨입니다.
늘 하나님의 기쁨이 기준이 되는 삶을 말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관계성의 기준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관계성의 증명을 말합니다.
세례요한이 말한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다른 성경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3:8 세례를 받기 전에 회개하였다는 증거를 행동으로 나타내 보여라."(현대어성경)
회개 했다는 증거를 행동으로 보여야 세례를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회개하면 세상적으로 다 잃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회개하면 세상적으로 자존심도 잃고,
물질도 손해보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하나님이 가락지를 다시 끼워주고
하나님이 다시 신을 신기고,
하나님이 잔치를 베풀고 기쁨을 회복시킬 것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회개는 곧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믿음이 곧 회개를 낳습니다.
회개의 열매는 관계성이지만
회개의 어머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내가 회개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하신다는 믿음이
<회개의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죄가 없어서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용기가 없어서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히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유일한 한가지 이유,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믿음은 <회개의 어머니>입니다.
* 지세포제일교회에서 이야기창고를 방문하셨습니다.
목사님과 여전도회 여러분이 오셔서 저와 함께 귀한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이목사님이 화요일 심방으로 나가시면서 만남의 축복이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가덕도 선교관은 늘 아름다운 이야기로 풍성한 곳입니다.
다들 언제 한번 오세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