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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니라 <나>

<네>가 아니라 <나>

 

 

 

 

<> 아니라 <>(마2:18-25)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답은 하나님께 오는 길을 여는 것과(죄의 해결)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과 함께(임마누엘)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은 오직 한가지다.

하나님께 가는 <길>을 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실 수 있도록 영원한 길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그 길을 가는 것과 함께 하는 것에 두지 않고

내가 원하는 길을 가든지 혼자 뭔가가 되려는 것에 전부를 사용한다.

 

죄는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이고

지옥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모든 곳이다.

 

길은 그리스도이고

생명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다.

 

우리는 모든 삶의 순간에 그리스도의 길과 하나님이 그 일과 <함께> 하시는가를 물어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서만 일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은 나의 길을 가라하고

세상은 혼자 가는 길을 선택하게 한다.

혼자 살고

혼자 먹고

혼자 잘되는 길을 선택한다.

 

하나님은 함께 하기 위해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셨다.

헤롯은 자신이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아기들을 다 죽였다.

 

하나님은 함께 하게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도 죽이시는 분이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왕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이 살기 위해 아기까지도 죽일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우리는 자기만 잘 되기 위해 자신의 양심과 영혼까지도 포기한다.

자기만 잘 되고 혼자 먹고 살기 위해, 혼자만 높아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고립시킨다.

세상을 버린다.

자기만을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희생시킨다.

자신의 자존심과,

자신의 잘됨과,

자신의 높아짐과,

자신의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그것을 이루려한다.

 

인생의 본질은 <비교>라했다.

그 비교의 끝은 누가 왕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헤롯왕이 유대의 왕이다.

그에게 동방의 박사가 찾아와 유대의 왕이 어디서 나느냐고 묻고 박사들이 찾으면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고 합니다. 경배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배가 아니라 자신의 왕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이 나신 당시의 아이들을 다 죽입니다.

살인을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한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왕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늘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을 경배한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상은 내가 왕으로 내가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내 인생에 어떤 사람도 나보다 높아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원리는 그렇습니다. 내가 높아지는 것을 위해서 다른 사람도 죽이는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 하나님도 버리고 하나님도 죽이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자신도 버리고 자신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세상의 답은 <네>가 죽는 것이 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답은 <내>가 죽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저 사람을 죽이려고 살지 말고

내가 스스로 낮아지고 죽어야 내 인생에 답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보이신 답은 함께입니다.

함께는 내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네가 머리를 숙이고 나에게 오라는 말은 절대 함께로 갈 수 없습니다.

내가 머리를 숙이고,

내 자존심을 죽이고

내 자리를 내 놓고

내 이익을 내 놓아야 함께라는 축복이 찾아옵니다.

 

세상의 답은 <함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고 그래서 성령이 오신 이유입니다.

<함께함>으로 나가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내가 여전히 왕으로 산다는 증거이고

여전히 내 길을 가겠다는 증명입니다.

 

삼위일체의 원리인 함께의 원리를 버리면 그것이 죄이고

그곳이 지옥이고

그것이 어둠입니다.

 

함께가 깨지는 순간 길이 막힙니다.

함께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합니다.

함께를 위해 하나님은 자신을 죽이셨다는 사실을…

 

자신을 죽이지 않는 함께는 이 땅에 없습니다.

함께에 모든 세상의 축복과 영적인 형통을 두셨기에

함께를 위해 자신을 먼저 내려놓고 자아를 죽이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첫 탄생지와 살았던 곳은 베들레햄과 나사렛입니다.

둘 다 작은 곳이고 소망이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난 곳도 마구간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든 자격과 자존심을 죽이고 시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되려는 길은 자신을 먼저 모든 세상적으로 좋은 조건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함께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조건이 좋은 곳에 함께 하는 영광이 있다면 길을 택했겠지만

하나님은 함께를 위해 모든 좋지 않은 조건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함께는 내가 유리한 조건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조건이 힘든 곳에서 피어나는 것이 영적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함께를 위해 예수님은 자신을 모든 불리한 조건에서 인생을 시작합니다.

함께함 만이 축복의 길이기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함께를 위해 전부를 걸고 전부를 포기합니다.

 

하나님 자신도 죽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 길을 가기 때문에 내가 죽지 않고 네가 먼저 죽으라고 말합니다.

아내에게 먼저 죽으라고 말하고

자녀에게 먼저 숙이라고 말하고

동료에게 네가 먼저 낮아지라 말하고

지도자에게 먼저 바뀌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신 길은 네가 아니라 내가 먼저 죽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가 되지 못하는 모든 수고는 결국 내가 헤롯왕으로 사는 길 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 길은 <나를> 살리기 위해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아이들을 <죽이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세상은 나만 살리기 위해 다른 모든 아이를 죽이라고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 자신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세상과 하나님의 길이 다른 유일한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그 원리를 동일하게 나에게도 요구하십니다.

<네>가 아니라 <나>입니다.

 

 

 

 

 

 * 동서대학교 대학교회 청년회에서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귀한 분들을 만나 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교목실장이시며 사회복지과 교수님이신 박진태목사님과 사모님

디자인학부 교수시며 새가족부 담당이신 김수화교수님,

그리고 새가족부 담당자들과 예배를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귀한 만남을 허락하신 주님은 늘 아름다운 길들을 만들어가십니다.

늘 함께 말입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