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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적 심보와 하나님의 기회

심판적 심보와 하나님의 기회

 

 

 

 

 

 

 

 

 

심판적 심보와 하나님의 기회(28:1-14)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바울 일행이 원주민의 도움으로 초청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뱀이 튀어 나왔습니다.

뱀이 바울을 휘감았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바다에서는 살아왔는데 사람이 살인자여서 정의가 그를 심판했다.

 

"28: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사람들은 어려움이 생기면 사람을 정의가 심판 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아픔을 당하면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일로 바울은 더욱 신처럼 되었습니다.

 

"28:6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일로 추장의 부친을 고쳐주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동안 풍랑을 만나 잃어버린 모든 물건과 대접을 받고 필요한 것을 채우는 기회가 됩니다.

 

"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우리의 마음 속에는

<심판의 심보> 있습니다.

 

죄수 복을 입고 있어서 뱀이 그를 잡으면 그가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런 나쁜 일을 해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단의 생각입니다.

세상을 주고도 하나님의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과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심판합니다.

이미 마음으로 심판하고 영혼으로 범죄합니다.

내가 싫어하고 내가 선입관을 가진 사람이 뱀이 감싸는 것을 보면 심판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길입니다.

세상의 생각입니다.

 

사단은 심판과 정죄로 고통 중에 있게 하고 하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라도

십자가 위에 달려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다고 기회를 주십니다.

상황도 절망인데 심판적 정죄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더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사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일하십니다.

고통중에 있으나 고칠자를 만나게 하시고,

절망 중에 있으나 희망을 보게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뱀을 몸을 감싸고 있는 상황에라도 하나님은 고칠 자를 고치도록 일을 허락하시고

풍랑으로 잃었던 물건과 겨울을 지날 있는 물품을 회복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심판의 심보> 내려야겠습니다.

마음에 있었던 심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겠습니다.

하나님은 불행을 기회로 삼으시고

고통을 회복의 기회로 삼으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임을 사도행전의 마지막을 통해서 보게됩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원리를 심어야겠습니다.

심판의 심보라면 바울처럼 들어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없는 심판이 그를 지나갔습니다.

그가 세상적으로 심판의 심보로 보면 그는 정말 심판을 없이 받은 사람입니다.

옥에는 없이 갇혔고,

매도 없이 맞고

여러분 죽을뻔 했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맞았고

세번 태장을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고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고

강의 위험도 지나고

강도의 위험도 지나고

동족으로부터 협박과 위험을 당했고

이방인들로부터 위험을 당했고

광야에서 바다에서 위험을 당했고

거짓형제들 때문에 없는 위험을 당했고

없는 날을 자지 못했고

주렸고

목말랐고

굶는 날은 수도 없고 춥고 헐벗었던 날도 부지기 수였던 것이 바울이었다.

 

 

바울은 사단의 심판적 심보로 보면 그는 거의 하나님께 버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하나님은 회복의 길로 나아가게하시고

그를 통해 세상이 구원을 알게되는 소망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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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졌던 마음과 하나님이 가졌던 마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를 향한 마음입니다.

 

"고후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마음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많은 심판적 환란처럼 보이는 고통중에서 그를 지키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든 교회를 위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우리되게 하고 우리를 소망중에 살게하는 가장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에 유일한 희망으로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상에 세우려는 하나님의 마음, 그리스도의 고난, 바울의 눈물을 기억해야합니다.

 

나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지키려는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래서 세상이, 사단이 심판적 심보로 우리를 정죄해도

우리가 희망의 마음으로 자리에 있을 있는 이유입니다.

 

바울이 지난 사도행전의 역사동안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바울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당하는 고난의 골과 등성이를 지난 이유는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그의 삶과 땀과 수고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의 바톤이 지금 우리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교회를 위한 삶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희망이 바로 당신과 나입니다.

 

 

 

 * 최재영 박진희 부부입니다.

요환이 윤서입니다.

남아공 의료 선교에 동참했던 만남으로 지금껏 아름다운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덕을 방문했습니다.

공도차고 쑥도 캐고 낚시도 하고 바다에서 고동도 캤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만남과 대화도 가졌습니다.

이런 만남을 통해 바울이 힘을 얻은 것처럼 나도 많은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지체들을 통해 힘을 얻고 교회를 든든히 세워감을 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입니다.

축복하고 축복합니다.

 

 

 

 

 

 

 

 

 

 

 

 

 

 

 

 

 

 

Pastor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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