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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적 불편함이 하나님의 동행이다

의지적 불편함이 하나님의 동행이다

 

 

 

 

 

 

 

 

 

 

 

의지적 불편함이 하나님의 동행이다(25:1-27)

 

 

사명은 불편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당장 예루살렘에서 풀려날 있지만 그는 로마에 가려고합니다.

새로온 유대총독 베스도는 탁월한 행정가여서 바울을 풀어주려 하지만 그는 로마에 가겠다고합니다.

놓임을 받을 있지만 불편해도 죄인으로 로마에 가려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사명으로 로마에서도 주의 일을 증언하는 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위해 갇힌 것도 잡힌 것도 감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법이 편한 것만을 찾아 다닙니다.

그래서 좀더 나은 직장 좀더 나은 월급 좀더 나은 환경을 찾아 다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위대한 역사는 편한 것이 아니라 사명 때문에 불편한 것을 선택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보게됩니다.

 

사울이 선택할 있는 길은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유로움입니다.

죄인에서 자유함을 얻는 길입니다.

그런데 길은 당장은 죄인의 옷을 벗지만 결국 세상은 우리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는 길입니다.

 

"25: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바울은 죄인의 누명을 벗는 순간 결국 죽은 목숨입니다.

그것을 알든 모르든 바울은 죄인의 누명을 벗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사명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것이 우리가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확보하고 사는 길입니다.

 

둘째는 의지적 불편함입니다.

 

바울은 어떤 누구도 죄를 찾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로마에 가기를 원합니다. 가이사에게 상소를 해서입니다. 상소의 이유는 자신의 죄없음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복음을 로마에서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이용합니다. 세상이 자신을 고발해서 얻은 죄인의 누명을 이용합니다.

 

바울과 우리의 다른 점은 우리는 우리의 형편을 편안함을 얻는 기회로 삼고 바울은 자신의 형편을 복음을 위한 <의지적 불편함> 택한다는 것입니다.

 

자유함을 택함으로 자신의 신분은 자유를 얻지만 결구 세상 사람에게 죽음을 당하는 길과

신분은 죄인이지만 사명을 이루는 길에서 바울은 갈등 없이 로마를 택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삶의 모든 순간에 택한 그의 선택 방법입니다.

 

 

우리는 가지 길에서 갈등합니다.

나의 무죄를 입증하는 길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나의 무죄, 나의 자유함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있다는 것을 당장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축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일반적인 축복을 넘어 축복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나의 불편한 형편, 나의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증명해 내는 길입니다.

결국 주의 일을 증명하는 길이라면 나의 모든 불편함도 죄인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 인생이 안전할까를 생각합니다.

언제 우리 인생이 가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언제 우리 인생이 의미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당장의 불편함을 넘어 자유함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불편해도 당장 오해를 받아도

당장 욕을 먹어도

하나님의 일을 증명하는 일에 불편을 감수하는 삶이

가장 안전하고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미 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보게됩니다.

 

바울에게 로마로 가는 길은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동행> 보장 받는 길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의 동행을 만들려고합니다.

그래서 당장의 자유함과 당장의 편안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안목을 가져서 가장 보장된 하나님의 동행을 따라야합니다.

그것은 삶이라는 불편의 감옥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사명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불편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만날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기쁨입니다.

불편해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불편을 기쁨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

나의 편안을 위해 당장의 자유가 아니라 사명으로 인해 불편의 기쁨을 따라가는 위대한 사람들을 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며 기쁨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가덕도에서 흥덕에서 울산에서 부산에서 그리고 각자의 삶의 구석구석에서 불편의 영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위대한 사람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행복한 하루입니다.

나에게는 시대의 하나님의 동행을 얻어내는 불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그들의 하나님의 동행의 흔적을 듣고 보고 만진다는 !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가슴벅찬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 김동훈강도사 부부입니다. 어제 가덕도에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편안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행을 위해 코소보로 선교를 떠나는 위대한 용사들입니다.

남천교회 청년사역을 하던 시절 20명의 전임 사역자를 위한 기도 하나님은 38명의 사역자를 주셨습니다.

두명의 선교사를 위해 기도했는데 다음으로 두번째 선교사가 되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동행의 축복이 어디에서든 변함없기를 간절해 기도합니다.

 

 

Pastor Seo

Pastor 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