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더한 은혜(행23:11-35)
사명을 받았다고,
하나님의 놀라운 부르심을 받았다고,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편안한 삶이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어려움을 당하지만 환난보다 더 큰 사명을 받습니다.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나의 일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로마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일"입니다.
즉 주의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주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을 증언하고 싶어합니다. 이 1%의 차이가 세상을 이상하게 만듭니다. 나의 인생을 어렵게 만듭니다. 교회를 힘들게합니다.
마지막까지 달려가고 일을 완수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1%인 나의 일을 증언하느냐 주의 일을 증언하느냐가 전부를 다르게합니다.
음식을 하고 마지막 양념을 설탕을 치느냐 소금을 치느냐,
식초를 치느냐 참기름을 치느냐가 음식 맛의 전부를 바꾼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지막 1%를 잘 해야합니다.
그것이 사명의 완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를 위하여 1%를 배려해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명을 받고 가려 하지만 바울을 죽이려는 사 십명의 특공대가 모였습니다. 바울이 죽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23: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흘러가는대로 가면 반드시 바울은 죽게됩니다.
자연스럽게 가면 반드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게됩니다.
그런데 1%의 사람을 준비해주십니다.
바로 바울의 생질입니다.
그가 죽이려는 소식을 듣고 결국 백부장, 천부장을 통해 그가 그들보다 강한 군대에 호위되어 안전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늘 1%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사람 다 죽이려해도 그 죽음을 피해가도록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1%의 은혜의 공간을 하나님은 늘 마련하십니다.
적어도 우리가 마지막 1%,
나의 일이 아니라 주의 일을 증언하기로 작정하고 사는 동안,
하나님은 늘 피할 길을 통하여 바울의 생질과 같은 1%의 은혜가 우리 인생에게 더해집니다.
세상과 우리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주의 일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을 각오하고
세상도 자기의 일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삽니다.
둘다 목숨을 거는 일이있지만
우리의 은혜는 하나님이 세상보다 1% 더한 피할 길과 인도할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 1%가 우리의 전부를 바꾸어 놓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1% 인생입니다.
세상과 다른 1%를 보장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1%를 나의 일이 아니라 주의 일을 살기로 각오했기에
하나님은 늘 1%의 세상보다 더한 은혜로 길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이기는 것은 세상보다 더큰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하나님의 1%의 은혜와 나를 위해 사용하시는 한 사람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힘들 때, 아플 때 어려울 때 하나님은 이 1%의 사람을 보내시고 1%의 가능성을 통해 생명을 열어가시며 세상에게 희망으로 일하십니다.
너무 많은 것이 보장된 길이 아니어도 오직 세상보다 더한 1%의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우리는 오늘도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의 생질의 한 마디가 총독이 그를 지키라는 말로 결론이 납니다.
1%의 은혜는 세상보다 더 큰 축복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 1%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지 101%의 축복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것보다 1%만 하나님이 주시면 그것으로 우리의 마지막은 다릅니다.
요셉은 온 세상의 1%의 희망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유일한 하나님의 1%입니다.
바울은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1%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세상중에 선택된 하나님의 유일한 1%입니다.
적어도 나의 일이 아니라 주의 일을 증언하기로 작정된 삶은 늘 이 1%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1 %!
삶과 죽음의 차이입니다.
* 가덕도 깊은 산을 헤마다 만난 야생화입니다.
이름도 없이 자기의 몫을 다하는 아름다움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향기를 내는 아름다움이 오늘도 나의 삶에 있기를 기도합니다.